[PRESS] 만화의 역사로 다시 쓰는 예술사 - 만화미학 아는 척하기

글 입력 2021.06.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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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신과 함께>로 교과서에 등재되고, 대통령상을 받고, 쌍 천만 영화의 원작 작가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갖게 된 웹툰 작가 주호민은 이제 스트리머로도 잘 알려졌다.

 

그는 2020년 3월경, ‘위펄래쉬’라는 콘텐츠를 새로 시작했다. ‘위펄래쉬’는 음악대학 신입생 앤드류과 그를 극한으로 몰고 가 최고의 드러머로 만들려는 플래처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착안해, 웹툰 작가 지망생들에게 투고를 받아 실시간 방송으로 첨삭을 해주는 콘텐츠다.


주호민 작가는 “스토리와 소재는 온전히 작가의 영역이니 내용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웹툰’이라는 형식과 웹툰 플랫폼의 특성에 맞게 연재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 라고 말했다. 흔한 조언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한 <위펄래쉬>는 생각보다 웹툰의 문법과 미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위펄래쉬>를 통해 가볍게 즐기는 ‘스낵 컬쳐’로 분류되는 만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의 고민과 기획이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매일 누리며 익숙하게 여겼던 장르임에도 창작자에게는 칸의 크기, 말풍선의 모양까지도 의도적인 선택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나니 만화에 관해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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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미학 아는 척하기>는 이렇게 문화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은 익숙했지만,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는 낯선 만화를 예술사와 미학적 관점에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책은 만화와 관련된 85가지 키워드를 역사, 미학, 트랜스미디어라는 세 가지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각 키워드는 익살스러운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두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정도에 걸쳐 짧게 서술되어 있다. ‘아는 척하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쉽고 가볍지만, 해당 키워드와 관련한 중요한 이론은 충분히 다루고 있는 분량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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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 장인 ‘만화, 역사로 탐색하기’에서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자주 접했던 동굴 벽화에서부터 만화의 기원을 찾는다.

 

동굴 벽화가 회화처럼 정지된 순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그렸다는 점에서 회화보다는 만화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만화는 단순히 여러 프레임의 회화를 합쳐 놓은 예술이 아니라, 칸들이 이어져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든 독창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책에서는 만화가 아름다움보다 기괴함을 표현하고,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죽음을 다룬 중세 그로테스크 회화와 사실적인 묘사보다 특징을 과장하고 강조해 사람의 내면까지 표현하려 한 16세기 이탈리아의 캐리커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각기 다른 만화의 역사와 특징으로 장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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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 ‘만화, 미학으로 이야기하기’에서는 캐릭터, 알레고리, 카타르시스와 같은 만화의 스토리와 관련된 키워드와 아르누보, 조형 심리학, 기호학 등 만화의 형식과 관련된 키워드를 철학자와 문화 비평가의 이론으로 풀어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현대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에 관한 담론에서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와 형식에 관해 다룬다.


마지막 장 ‘웹툰, 트랜스미디어로 읽기’에서는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산업으로 당당히 자리잡은 웹툰을 트랜스미디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란, 콘텐츠들이 미디어 간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생산, 향유되는 것뿐만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미디어와 콘텐츠의 경계도 모호해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콘텐츠의 생산, 소비, 유통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네이버 웹툰에서 독자가 직접 컷 자르기 기능을 통해 컷에 새로운 대사를 덧붙여 ‘겟!짤’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 OSMU (One Source Multi Use) 원천콘텐츠로서 웹툰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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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OSMU 스토리텔링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OSMU 스토리텔링이 같은 이야기를 미디어의 종류를 달리해 변주하는 것이라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스토리가 아닌 세계관만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사형의 구조를 기초로 한다. 어떤 쪽이든 웹툰 형식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원천콘텐츠로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화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점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적은 창작자들이 비례나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는 점도 다른 콘텐츠와는 차별화된 점이다.

 

이러한 만화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예술사와 미학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만화 미학 아는 척하기>는 출판 만화를 넘어 디지털 미디어에서 핵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만화를 다방면으로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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