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지가 떠오르는 노래 [음악]

낯선 일상에 더하는 음악 한 조각
글 입력 2021.05.20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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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해서, 멜로디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우리를 어떤 시공간으로 데려다준다. 봄이 되면 이 계절에 푹 빠져서 들었던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 것만 같고, 어린 시절 좋아했던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난다. 알바를 하던 곳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왔던 음악은 제목도 가수도 모르면서 멜로디와 가사는 반사적으로 따라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는 내 모습이 웃길 때도 있다.

 

여행을 중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는 것 역시 그 시간을 추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낯선 곳을 누비며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만나는 '여행'에 '음악'을 더하는 행위는 때때로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과한 착각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보는 풍경은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요, 귓가에 흐르는 음악은 OST라고 믿어버리게 되니까.

 

창고에 몰래 숨겨 두었다가 이따금 꺼내 먹으며 행복해하는, 나에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새겨진 여행지와 얽힌 음악을 몇 곡 소개하려 한다.

 

 

 

The Alan Parsons Project - Eye in the sky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떠낸 여행이었다. 동생이 수능을 치르고 나서 다섯이 어렵게 시간을 맞춰 떠났다. 우리 가족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꼼꼼하게 계획하고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이 여행도 늘 그렇듯 우당탕탕 떠났다. 엄마가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말했던 통영을 여행지로 정하고, 가는 길에 일정과 숙소를 잡았다.

 

어설펐던 출발에 비하면 즐거운 기억이 참으로 많이 남은 여행이었다. 달아 공원에서 본 노을도, 모두가 성인이 된 기념으로 온 가족이 다 같이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는데 동생이 '맛없어!'라고 외치며 찡그리던 표정도, 원래 가려던 섬의 배편이 없어 우연히 찾은 장사도라는 섬의 멋진 자연 경관도.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좋았다.

 

 

여행지 음악 (3).jpg

 

 

그중에서도 양옆으로 나무가 쭉 늘어선 숲길을 드라이브하면서 'eye in the sky'라는 노래를 들었던 장면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풍경과 음악이 찰떡같이 잘 어우러지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온몸으로 행복함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앞으로도 가족들과 더 많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순간을 영상으로 찍어둬서 나중에 다시 이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드라이브에 잘 어울리는 노래 추천을 부탁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곡을 말하겠노라 다짐할 수 있을만큼 묘하게 들뜨고 설레는 기분을 안겨주는 곡이다.

 

 

 

 

 

Maximilian Hecker - Silly Lily, Funny Bunny


 

앞만 보고 달렸던 2년의 대학 생활을 잠시 멈추고 1년간 휴학 기간을 보냈다. 이 시간만큼은 지금껏 내가 하고 싶었던 다양한 것을 시도해리라 마음 먹었다. 학교 밖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고, 지금껏 몰랐던 '나'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휴학을 계획하면서 1순위 계획으로 세웠던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이를 잊을 수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느리고 잔잔한 삶을 보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스탭으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안에서 사람들과 밥을 해 먹고, 웃고 떠들다가 잠드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온 힘을 다해 '이 하루를 즐기는 것'에만 집중했던 그 한 달은 또 다른 의미의 '느린 삶' 이었다.

 

 

여행지 음악 (1).jpg

 

 

이 날도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살을 찌를듯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5월의 어느 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가, 숙소에 돌아와 음악을 틀어두고 마당의 청보리밭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러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저녁을 해먹고, 날이 좋길래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로 나가 노을을 봤다. 이때 마당에 앉아서 들었던 노래가 바로 'Silly Lily, Funny Bunny' 이다.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걱정은 고이 접어두고, 잠시나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언니네 이발관 -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



여행지가 떠오르는 노래들은 우연히 듣게 된 경우가 많다. 의도하고 어떤 노래를 틀기보다는 원래 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그 노래가 나왔는데 마침 눈앞의 장면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거나,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이 들려준 노래가 마음에 와닿는다거나.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 음악은 좀 신기하게도 어떤 장면을 바라보다가 내 머릿속에 멜로디가 스쳐 지나가서 찾아서 듣게 된 노래였다.

 

베네치아에서 부라노 섬으로 이동하는 수상 버스를 타던 중이었다. 바닷속으로 잠기는 해를 보다가 불현듯 언니네 이발관의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이 떠올랐다. 최근에 들었던 노래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염없이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면서 바다를 바라봤다.

 

생각이 많아지다가 또 생각을 떨쳐내고 가사에 집중하기를 반복했다. 이날 이후로 일렁이는 바다를 볼 때마다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오른다.

 

 

여행지 음악 (2).jpg

 

 

사람들은 여름이 더 잘 어울리는 베네치아라고 하지만, 나는 삭막한 기운이 가득한 겨울에 그 도시를 찾았다. 활기찬 축제 분위기는 없었고, 해가 떨어지면 주위를 감싸는 공기가 사뭇 차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낭만적인 곳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아쉬운 마음이나, 추억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 베네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유일한 여행지다.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있는 내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노을을 볼 수 있었던 맑은 날씨까지.

 

그 여행은 그렇게 노래 제목과는 다르게 나에게 '영원히 그리운 시간'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각각의 노래를 다시 듣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그때의 그 장면 속에 잠시 잠기게 된다. 잊어버리면 섭섭한 나의 추억 한 조각을 이렇게 음악으로 담아둘 수 있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누군가에게도 이 글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게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보며, 음악과 함께 떠나는 추억여행을 마친다.



 

[박혜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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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장경윤
    • 너무 좋은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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