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팬데믹을 마주한 독일 교환학생 1)Racism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5.0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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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한 불씨를 불거진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미국 내 인종 혐오를 규탄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지난 22일 미국 상원은 94 대 1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소셜미디어엔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코로나를 계기로 19세기 말 황화론이 다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팬데믹을 감수하고 현재 독일에서 교환학생 중인 나 또한 인종 혐오 범죄의 위험 아래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StopAsianHate 운동 이후 아시안은 차별에 침묵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대항으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나와 나의 아시안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각자의 인종차별 썰을 풀며 "맞서야 한다 vs 그냥 피해야 한다" 사이에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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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에게 후추 스프레이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한 뉴욕의 단체

 

 

독일에 온 후 10일 만에 (마이크로 레이시즘을 제외한) 4번의 명백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이는 유럽에 입성한 동양인 여성에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이를 전혀 숨길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다. '유럽에 입성한 걸 축하해', '넌 여기를 사랑하게 될 거야.' 서양권 국가를 갈 때마다 이곳이 당연히 동양인인 나의 나라보다 만족스러울 것이고, 내가 당연히 이곳에 소속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모든 말들이 못마땅해서, 그리고 어쩌면 그대들이 가진 선민의식을 조금은 깨부술 수 있을까 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


*불필요한 인종/성별 언급을 하고 싶진 않으나 맥락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하겠다.

 

백인 여성 교수님 두 분과 함께하는 한 수업에서 네이티브 아메리칸 인종차별을 다룬 영상 작품에 대해 토론하던 중 나는 자연스럽게 내 인종차별 경험에 빗대어 의견을 전했다. 교수님 두 분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의 힘들었던 경험을 용기 있게 발언해 준 것에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난 대단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에게 독일에서의 인종차별은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으며,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전혀 상상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는 교수님들의 반응이 조금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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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루는 나의 스크린 라이프를 담은 미디어 과제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나는 2분 남짓의 영상을 준비했고 거기엔 일기장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Today's racism moment'라는 이름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장면이 짧게 삽입되어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이 자리에서 당신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었고, 동시에 인종차별은 결코 나에게 인스타그램 소재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가 경험한 레이시즘은 분명 분노해야 할 사건이긴 하나 그것이 나를 움추려들게 하거나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 영상을 본 중국계 미국인 남자 교수님은 자신은 이곳에 4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양인 남자인 교수님은 4년 동안 단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인종차별을 나는 10일 만에 4번을 당했다는 것에서 이건 완벽하게 성차별과도 결부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수업이 끝난 후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는 내용의 사려 깊은 개인 메일을 보내셨다.

 

두 번에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은 나는 조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빈도와 강도는 줄일 수 있어도 완전히 제거될 수는 없다고 여기는 인종차별, 성차별, 약자 차별이 어느덧 나에게 크게 통감하지 않아도 될 일들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연시되어선 안되는 일들을 결국 어떻게든 당하게 될 것이란 걸 나는 이곳에 발을 딛기 전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미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에 대해 유럽 경험자들과 여러 번 얘기를 나눴으며,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떤 인종차별을 겪게 될까?'를 마치 시한부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가장 손쉬운 표적이었기에 이 현실에 무뎌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뉴스에 등장하는 끔찍한 사건들에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린 나의 기대는 ‘뭐 날 총으로 쏘지만 않으면 됐지', '안 때린 게 어디냐'와 같은 더 소름 끼치는 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다.

   

안타깝게도 동양인 여성은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밑 바닥의 약자가 될 것임을 필요 이상으로 자각하고 있다. 백인 혹은 유색인종이라 할지라도 남성인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에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처절한 일들을 우리는 지나치게 자신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국으로 돌아가면 호신술을 배워야겠다고 말한다. 그냥 공원을 산책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상에서조차 위협을 의식하며 전기 충격기, 페퍼 스프레이 등을 지니고 다니고, 친절한 남성들은 Yellow Fever로, 길거리에 사람들은 예비 범죄자로 의심해야 하는 현실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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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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