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마지막이 당신에게 꽉찬 하루를 보태길 - 도서 '죽음의 춤'

글 입력 2021.04.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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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니 제도 출신의 바이킹 전사 ‘무적의 시구르드’를 죽인 것은 적군 수장 마일 브릭테의 목 잘린 머리였다. 시구르드는 전투에서 이긴 후, 브릭테의 머리를 안장에 매달고 우쭐해서 말을 타다가 브릭테의 이빨에 찔렸다. 그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군 복무 때문에 2년 정도 소방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나는 주로 구급차를 탔다. 1000여 건이 조금 넘는 출동을 다니며 숱한 사고와 사건들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삶과 죽음이 갈라서는 그 경계에서 누군가는 태어났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으며, 누군가는 죽었다.


어느 날엔 교통사고 현장을 나갔다. 차체 윗부분이 칼로 자른 듯 깔끔하게 날아가 버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출동이 될 거라는 직감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안고 환자들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환자들이 멀쩡하게 보도블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할 외상도 없었다.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또 어떤 날에는 13층에서 떨어진 남자를 구조하러 간 적도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그는 우리에게 살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온몸이 부서졌지만, 기어코 자신 앞에 놓인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를 우린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했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몇 개월 후, 우리에겐 그가 무사히 퇴원을 했다는 식이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며 우리를 부른 남자가 불과 30분 만에 사망한 적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하게 함께 술을 마시고, TV를 보며 웃던 남편이 다음날 아침 싸늘한 주검이 되었던 한 여자의 절규에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삶과 죽음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온몸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하고도 누군가는 살아남지만, 다른 누군가는 고작 코피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늘 궁금했다. 이해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살아남는 이유를. 사람들이 죽는 이유를. 삶과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운명을 가르는 얄팍하고 허무한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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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이 출신의 훌륭한 입법관 드라콘은 아이기나에서 연설한 직후 시민들이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던진 옷 무더기에 깔려 숨졌다.”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부르에서 약 400명의 군중이 아무런 이유 없이 밤낮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달도 넘게 춤추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아니면 그저 기진맥진해서 죽었다."

 


<죽음의 춤>은 저자 세실리아 루이스의 두 번째 동화책이다. 들판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위로 떠오른 제목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토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서 죽음의 춤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잠깐. 동화라고 하지 않았어? 맞다. 동화다. 책의 소개에 따르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다. 뭐, 동화를 꼭 아이들만 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동화의 핵심은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교훈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교훈을 찾아 헤매는 데에는 어른도, 아이도 없다. 그냥 간절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죽음의 춤> 역시 동화가 될 자질은 충분하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는 철학자, 왕, 예술가 같은 위대한 위인들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죽음들이 담겨 있다. 환호하는 군중들이 던진 옷에 깔려 숨진 입법관의 이야기부터, 환영의 의미로 쏜 대포에 맞아 죽은 선장, 먹다가 죽은 왕, 하늘에서 떨어진 거북이에 맞아 죽은 예술가 등. 많은 이들의 아이러니한 마지막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이 마냥 어두울 거라고 지레짐작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쥐구멍에도 볕뜰 날이 있듯,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도 나름의 재미는 있다.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있고, 때로는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의외의 웃음 포인트도 있다. 책의 분량도 8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아서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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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생도 보았고 죽음도 보았는데 그 둘이 다른 줄만 알았다. - T.S. 엘리엇”


 

“벌거벗고 서서 바람을 맞이하고 태양에 녹아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 칼릴 지브란”

 


무릇 살아있는 존재라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먼 옛날부터 불멸을 얻기 위해 세상을 떠돌던 영웅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 방증이다. 하물며 영웅조차도 두려워한 죽음을 평범한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리가 없나. 오죽하면 타나토포비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이 우리의 생각만큼 그리 엄숙하고 비장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히려 유치하고 시시해서 허무할 정도다. 이렇듯 저자 세실리아 루이스는 누군가의 아이러니한 마지막 순간을 통해 죽음의 지위를 저 높은 곳에서 우리의 옆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나아가 이러한 죽음의 이야기들이 때로는 삶의 내밀한 동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인간은 억세지만 동시에 연약하다. 내가 만난 환자들이 그랬듯, 책 속의 사람들이 그랬듯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들이닥칠 수 있다. 그 위대한 바이킹 전사 시구르드도 자신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수많은 전장을 넘나들면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그가, 자신이 베어 죽인 적장의 이빨에 찔려 죽을 거라는 걸 누가 알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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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이다.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잘 되기를 바라며, 바람에 실어 가볍게 날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둘은 이어져 있다. 어떤 이야기든지 반드시 끝을 맺기 마련이고, 죽음은 그런 삶의 마침표 역할을 한다.  그 마침표에 여운을 더할지, 감동을 더할지, 슬픔을 더할지 등은 우리가 메꾸는 하루에 달려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 이동진, <밤은 책이다>

 

 

아직 <죽음의 춤>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옆에 다이어리를 끼고 읽기를 권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의 다이어리를 펼치기를 권한다. 그 안에 내일 여러분들이 해야 할,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을 적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다음날엔 꽉 들어찬 하루를 여러분의 이야기에 보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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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

 

 

원제 : The Book of Extraordinary Deaths


지은이 : 세실리아 루이스

 

옮긴이 : 권예리

 

출판사 : 바다는기다란섬


분야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역사

 

규격

216*140 / 양장본

 

쪽 수: 80쪽

 

발행일

2021년 4월 16일

 

정가: 16,000원

 

ISBN

979-11-961389-4-3 (0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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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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