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넘버로 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근데 이제 덕질을 곁들인 ②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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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2막부터 시작하므로 1막을 다룬 넘버로 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근데 이제 덕질을 곁들인 ①과 이어집니다.
9.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성탄절은 축복과 사랑의 축제다. 그러나 대파업으로 투쟁하고 있는 광부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대처 수상이 죽을 날이 하루 다가온 날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깊어진 겨울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이 풍자 가득한 축제를 즐긴다.
빌리 엘리어트 첫 넘버 The Stars Look Down에서 모든 앙상블 배우들이 노래 부르며 막을 올렸듯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에서는 모든 앙상블의 화음으로 2막을 시작을 알린다. 이 축제에서는 모든 성인배우와 아역배우들까지 함께 노래하며 절묘한 화음과 관객이 박수로 참여하며 뮤지컬의 뜨거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축제 속 연극 및 거대 대처 수상의 인형이 등장하는 무대를 보면 실제로 크리스마스 축제 한가운데 와있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필자가 특히 앙상블의 화음이 가득한 넘버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빌리엘리어트는 앙상블의 모든 캐릭터들까지 소비되지 않고 제각각의 역할을 다한다. 그래서 이 뮤지컬에 애정이 더 간다.
10. Deep Into The Ground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빌리의 아빠 잭키 엘리어트는 아내의 3주기를 맞아 그녀가 좋아했던 곡을 부른다. 꿈을 갖고 있었던 잭키와 그가 광부가 된 모습, 이 검은 언덕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약속을 했던 모습이 그려진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관객들은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빌리는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는 아빠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잭키는 아내의 죽음을 노래할 때 부르지 못하고 눈물을 훔친다. 평소에 그토록 무뚝뚝한 아빠가 눈물을 보이다니. 아빠의 진심을 느낀 것일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빌리는 아빠를 대신해 노래를 마무리한다.
"겨울의 찬바람이 살을 파고들어도 여름의 태양에 몸이 녹아내려도 나 이 검은 언덕을 영원히 사랑하리 안 떠나리 죽는 날까지."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 "메리 크리스마스 아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빌리 뿐만 아니라 아빠도 많이 힘들었음을 보여준다. 빌리가 그런 아빠를 이해하게 되며 그를 토닥여주는 감성 짙은 넘버다.
축제가 끝나고 체육관에서 만난 빌리와 마이클. 여자 옷 입기가 취미인 마이클은 빌리에게서 튜튜를 받는다. 신나서 빨간 바지 위에 바로 튜튜를 입어보고는 빌리에게 발레를 좀 해보라며 상큼 발랄한 애교를 부린다. 마이클의 개구쟁이 같은 귀여운 모습에 온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그러나 빌리는 발레를 포기한 이후로 절대로 남 앞에서 발레를 하지 않는다.
Dream Ballet
마이클이 가고 빌리는 체육관에 혼자 남았다. 오디션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 라디오에서 음악을 튼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흘러나오고 발레를 하기 시작한다. 윌킨슨과 연습했던 의자 돌리기 안무가 시작된다. 꿈꾸던 미래의 성인이 된 자신과 함께 파드되(2인무)를 춘다.
성인빌리와 빌리가 합을 맞춘 아름다운 안무는 관객이 단번에 발레의 우아함에 빠져들게 한다. 차이콥스키의 웅장한 노래는 빌리와 성인빌리의 감정선을 고조시킨다. 성인 무용수는 백조 대신 빌리를 들어 올렸고 그들의 힘찬 날개짓은 빌리의 비상으로 이어졌다.
성인빌리는 어린 빌리를 응원하듯이 하늘 높이 날려준다. 빌리는 꿈을 꾸듯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성인빌리와 빌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무를 이어간다. 그들의 아름다운 비상 씬에 마음이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발레를 할 때 가장 행복한 빌리의 감정이 관객석에 잔잔히 퍼진다. 드림발레는 고난이도의 와이어 연기와 발레 능력을 요한다.
발레와 스트릿댄스의 안무는 기본이고, 와이어를 달고 몸을 일직선으로 피며 자세를 유지하고 높은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실제로 와이어씬 후 눈을 감고 호흡하며 어지러움을 참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빌리들의 노력에 감동하고 노력으로 탄생한 황홀한 장면에 감동하게 된다.
빌리는 미래의 자신과 만나 행복과 자유의 춤을 추는 자신을 보고 있던 아빠와 마주친다. 그러나 빌리는 예전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피날레 자세를 잡고 눈을 맞춘다. 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빠일지라도 빌리의 춤을 보고 느낀 바가 있는 듯 재키는 생각에 잠긴다.
11. He Could Be A Star
빌리의 재능과 꿈에 대한 열정을 두 눈으로 확인한 잭키는 빌리에게 훨훨 날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구하기 위해 1년간 함께 싸워온 노동조합을 저버리고 광산에 일을 하러 들어간다. 빌리의 형 토니는 그런 아버지를 막아서며 빌리는 철부지 어린애라고 한다. 잭키는 빌리의 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장차 큰 스타가 될 수도 있어, 얼마큼 성공할지 아무도 몰라. 나만이 걔한테 기회를 줄 수 있어." 결국 잭키의 의지와 빌리라는 미래의 가능성에 토니와 노동조합원들은 빌리를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한다. 미래가 걸린 투쟁의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의 부성애가 돋보이는 넘버다.
1년간 파업을 한 광부들이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던 중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배신자 광부가 찾아와서 빌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거액의 돈을 주고 간다. 대립을 벽을 허물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아이의 힘을 볼 수 있다.
12. Electricity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 빌리.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들지?" "어떻게 설명해요. 잘 모르겠어요."
춤을 출 때면 나를 잊어버리다가도 나 자신이 완전해지는 느낌이죠. 귓가에 음악이 들려오고 그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사라져요.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올라요. 전기가 흐른 듯 자유를 얻죠.
춤을 출 때는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쳐 오른다는 빌리. 빌리는 자신이 춤을 출 때 느꼈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작은 몸으로 무대 곳곳을 누비며 파워풀하면서도 우아하고 또 절도 있는 동작을 구사한다. 발레, 아크로바틱, 힙합, 무술, 스트릿 댄스 등 갖가지의 춤이 합쳐져 장르를 넘나들며 빌리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몸짓이 된다.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24회의 턴과 12회의 턴을 멈추지 않고 도는 안무다. 24회의 턴을 마치고 숨을 고르며 '전기가 흘러 자유를 얻죠!'를 노래한 후에 고난도 아크로바틱과 턴이 다시 이어진다. 빌리가 느꼈던 전기가 흐르는 그 감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 듯 무대를 보고 전율이 흘렀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을까. 빌리들의 2년이 넘는 훈련 기간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 안무를 안정적으로 끝내는 10~12세의 소년 배우들이 누구보다 커 보였다. 기적을 두 눈으로 보게 된 필자는 팔이 떨어져라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만들어내는 기적은 어느 것보다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빌리는 발레 스쿨에 합격한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불행한 소식. 파업은 끝났고 노동조합은 졌다. 거대한 세계의 흐름을 그들이 막을 순 없었다. 빌리는 합격 우편을 손에 쥔 채로 이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 겁난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너 방 세놨다며 담담하게 떠나야한다고 말한다. 가끔 위로보다 투박한 말 한마디가 더 용기를 주는 법이다.
빌리는 재능을 알아봐 주고 말없이 빌리를 도와줬던 윌킨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간다. 그러나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둘은 엄청난 결과 앞에서도 쿨하다. "감사해요." "이미 알고 있었어." "저 갈게요." 이렇게 무미건조한 대화를 나눈다.
그대로 떠나려던 빌리는 소리친다. "보고 싶을 거예요!" 집에 올 때마다 찾아오겠다고 하는 빌리에게 윌킨슨은 여길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라며 매정한 듯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그러곤 빌리에게 말한다. "넌 X나게 특별한 아이야. 빌리"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에서 발레 교습소를 하며 소위 실패한 인생을 살던 윌킨슨에게 빌리는 흙 속에 진주처럼 빛나고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또한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을 여는 법을 알려준 존재 또한 빌리였다. "그리고 빌리, 행운을 빈다." "선생님도 행운을 빌어요." 윌킨슨은 그 말에 눈물을 훔친다. 빌리는 존재 자체로 윌킨슨의 인생을 위로한다.
13. Once we Were Kings
파업은 끝났다. 그러나 더럼 마을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 빌리는 로얄발레스쿨로 떠나기 위해 아빠와 함께 짐을 싼다. 옷을 개며 투닥투닥 하는 모습이 천상 부자지간으로 웃음이 지어진다. 짐을 다 싸고 빌리와 아빠가 눈이 마주친다. 빌리는 이제 솔직하게 표현한다. 아빠에게 먼저 달려가서 안긴다.
무대 양옆에선 광부들의 노래가 오버랩된다. "우리는 한때 평등한 세상 꿈꿨지. 그 때 우린 영웅이고 모두 왕이었지."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고 영광도 몰락하는 법이다. 오늘은 캄캄한 땅 밑으로 들어가도 언젠간 다시 힘차게 솟아오르리. 끝이 보이는 이야기 앞에서 더럼 마을 광부들은 주저앉지 않는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 가리라는 공동체의식을 보여준다.
당당하게 걸어나가.
우리 하나 되어 앞으로 차갑고 텅 빈 이 땅에서 우리 끝까지 함께 하리라.
토니는 빌리에게 랜턴을 이별 선물로 준다. 빛이란 어두운 굴 안에서 일하는 광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 빛을 빌리에게 선물함으로써 빌리가 더 빛나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빌리는 스스로가 빛이 되어 쓰고 있던 헤드 랜턴으로 관객석을 비춘다. 빌리와 함께 있던 광부들은 빌리를 스쳐 지나가 광산으로 향했다. 이제 빌리는 아빠의 얼굴을 비춘다. 그들의 영광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이.
광부들은 어둠에 가려지고 헤드랜턴의 빛만 보인다. 그리고 빌리는 묵묵히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목도한다.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노래 부르며 떠나는 그들을 지켜본다. 빌리 엘리어트 재연 공연 당시 마지막 공연 때 땅 밑으로 내려가는 광부들을 바라보며 급히 눈물을 훔쳤던 현서빌리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광부들은 지하로 내려가고 빌리는 빛을 내며 더욱 높이 올라갈 것이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빌리가 상승할 수 있었던 데에는 땅 밑으로 내려가는 광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빌리를 가르친 윌킨슨, 기회를 주고자 자신을 희생한 아빠 잭키, 모금활동을 도운 형 토니, 용기를 준 할머니까지. 빌리 주위의 어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빌리의 비상이 가능했다.
14. The Letter - Reprise
빌리는 환상으로 보는 엄마를 만난다. 이젠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서로에게 말한다. 빌리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썼던 내용과 같이 엄마의 모든 것이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무슨 일을 하든지 너 자신으로 살기로, 늘 나 자신에게 진실할 것을 약속한다. "영원히 널 사랑해." 엄마의 목소리 위에 빌리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빌리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엄마와 완전한 이별을 했다. 빌리의 성장이 보이는 시점이다. 엄마 죽음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고 그녀의 말을 마음속에 품고 건강한 이별을 해낸 것이다.
빌리는 이제 더럼마을을 떠난다. 아빠와 함께 쌌던 캐리어를 들고 관객석 중앙 복도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때 마이클이 빌리를 부른다. "어이 댄싱 보이!" 빌리는 마이클을 향해 뛰어간다. 빌리는 마이클에게 볼 뽀뽀를 하고 떠난다. 빌리는 여자 옷을 입는 마이클을 이상하게 봤지만, Expressing Youeself를 함께 부르며 마이클에게 개성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 용기로 발레에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남자가 발레'하는 빌리의 꿈은 놀림당하던 것에서 모두의 도움으로 촉망받는 미래가 되었다. 존중과 개성으로 꿈을 이룬 빌리는 이제 마이클을 완전히 존중한다. 그리고 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마움 표시를 한다. "안녕 마이클" "그래 안녕 빌리"
이들의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에, 소년의 기적 같은 이야기에, 희생이 담긴 가족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전율이 흘렀다. 비극을 맡게 될 더럼 마을과 빌리의 밝은 미래가 함께 그려지며 먹먹한 감동이 느껴진다.
15. Finale
그러나 이 뮤지컬은 유머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나는 극이다. 절대 이런 먹먹한 마음으로 관객들을 집에 돌려보낼 리 없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웃음을 머금고 관객들이 떠날 수 있게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뮤지컬의 세계에서 현실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고나 할까? 발레 걸들과 더럼 광부들이 빌리와 함께 절도 있는 탭댄스를 하며 다시 한번 그들의 축제를 시작한다. 윌킨슨은 이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튜튜를 입었고 더럼 마을 사람들은 모두 튜튜를 입고 등장한다. 모든 앙상블과 빌리는 하이파이브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무탈히 잘 끝냈음을 서로에게 인사한다. 참 예의 바른 뮤지컬이라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고 넘버를 다시 부르며 이 극의 대표 주제를 상기시킨다.
"일이 좀 꼬이면 어때 때가 되면 다 풀리는 법. 괜찮아. 당당하게 뽐내봐 자신감만 있으면 돼."
"세상 사람 하나하나 모두 달라 그건 다 아는 사실. 이 세상은 너무나 재미없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성!"
더럼 마을의 희망과 미래가 된 빌리는 더럼 마을 사람들이 들고 있는 의자에 앉아 외친다.
"FINISH!"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대파업이라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아름다운 판타지다. 감동 스토리에 감성을 더해주는 엘튼 존의 음악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오랜 시간 동안 여운을 준다. 지금까지 넘버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훑어보았다.
빌리 엘리어트의 의의
2000년 '빌리 엘리어트' 영화 개봉 당시 빌리는 사회적 편견을 깨트리는 개혁적인 이미지였다. 빌리는 남자가 하는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 고급문화부터 성공하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빌리 엘리어트는 더욱 가치를 갖는다.
극 안에서는 악역이나 선함으로 분명히 나눌 수 있는 인물은 정해져있지 않다. 빌리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따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소년에게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이 지어져있는가. 또한 극의 결말이 꿈을 찾아 떠난 빌리의 희극일지, 더럼 마을의 비극일지, 아버지 잭키의 사랑을 찾은 이야기일지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의 매력
뮤지컬의 캐릭터는 사람이 연기한다. 그렇기에 배우의 특성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다. 2018년도에 5회의 빌리 엘리어트 재연 공연을 봤다. 주변인은 똑같은 극을 몇 번이나 보는 거냐며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뮤덕(뮤지컬 덕후)들은 같은 극을 여러 번 본다는 뜻의 '회전문 돈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회전문은 극 자체가 좋아서 한 번 더 보는 이유도 담겨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매력이 있어서 돌게 되는 것이다.
같은 뮤지컬을 한 번만 더 보면 왜 회전문을 돌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뮤지컬은 매일매일이 다른 공연이다. 같은 ‘빌리’캐릭터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결이 달라지고 빌리와 합을 맞추는 배역의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배우라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애드리브도 연기도 모두 달라진다. 거대한 서사라는 물줄기 안에서 매번 다른 잔물결로 각자의 개성에 따라 바뀌는 것이 뮤지컬의 매력이다. 빌리엘리어트에 캐스팅된 다섯 빌리들도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였다.
필자가 본 2대 빌리(천우진, 김현준, 성지환, 심현서, 에릭 테일러)의 주관적인 매력을 소개하겠다. 우진빌리는 고운 선을 갖고 있는 부드러운 빌리를, 매력이 현준빌리는 '드릴턴'을 겸비한 단단하고 파워풀한 에너지를 갖고 있고 유머 있는 동시에 고독감이 묻어있는 의젓한 빌리를, 지환빌리는 작고 소중한 매력 속에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빌리를, 현서빌리는 어렸을 적부터 발레를 했기에우아한 춤선과 함께 감수성이 풍부한 섬세한 빌리를, 에릭빌리는 개구쟁이 천진난만하고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해맑은 빌리를 연기한다. 따라서 같은 뮤지컬이지만 다섯 빌리들이 표현하는 <빌리 엘리어트>는 모두 다른 느낌이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빌리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들은 약 1년간 3차로 진행되는 오디션에서 선발된다. 장기 오디션으로 지켜보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의 잠재력과 개성을 보기 위함이라 한다. 또한 무대를 올리기까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빌리스쿨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렇기에 소년들은 더욱 완벽해지고 극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빌리 엘리어트를 보기 전 아역배우에 대한 선입견은 잠시 내려놓아도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테니.
그들의 재능을 축복하고 2년간 빌리가 되기 위해 흘린 훈련의 땀방울을 기억하며 박수를 보낸다. 3년 전 2018년 5월 7일 빌리 엘리어트 마지막 공연이 끝나던 디큐브 아트센터 공연장의 온도와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공연예술이 주는 행복과 감동을 향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더럼 마을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다섯 빌리들에게 전한다. 행운을 빌어요!
올해 2021년 8월 31일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빌리엘리어트> 3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3대 빌리들은 어떤 매력과 감동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가득하다. 빌리 엘리어트는 장기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므로 자주 오는 공연이 아니니 한 번쯤은 소년들의 기적의 이야기를 보고 마음의 열정과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성! 당신의 인생에 행운을 빌어요.
[이소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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