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제국을 바라지만 결국 미래를 향하는 어른들을 위해 [영화]

과거에서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마주하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글 입력 2021.04.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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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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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인가 사람들이 유아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며, 혹은 자기 전 어릴 적 봤던 애니메이션이나 TV 프로그램을 찾아 멍하니 바라본다. 최근 선물하기 기능 중 20대 1순위가 요술봉 장난감이라고 한다. SNS에서는 우스운 농담과 장난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그리 우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현실에 지쳐 과거로부터 안식을 찾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뉴트로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TV에서는 과거의 것들이 재창작되어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선물해주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향수에 열광했고, 그리움은 그 자체로 머물러있지 않고 되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반영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짱구는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에 나오는 어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20세기 박물관이라는 곳이 생긴 이후 점점 과거에 머무른 어른들. 짱구의 엄마 봉미선과 아빠 신형만은 20세기 박물관에서 과거의 것들을 반가워하고 향수에 젖는다.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TV 앞에서 자신의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며 즐거워했으나 그들의 즐거움은 어느새 단순한 과거에서 만족하지 못해 현실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고 해방되어 어린아이처럼 과자와 음료수만 입 안 가득 먹어내다가 휴식을 취한다. 짱구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어른들은 어느새 자신을 속박하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현재와 과거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기꺼이 과거로 돌아갔다.


짱구를 포함해 어린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아이들만이 현재에 남아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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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람들에겐 꿈과 희망이 있었어.

그들에게 21세기는 희망 그 자체였지.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어.

다들 더러운 욕망과 돈에 사로잡혀있을 뿐이야.

우리가 꿈꾸던 21세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참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꿈을 품고 희망을 품으라는 말에 대해 처음 인식했을 때는 이제 막 세상이 말갛게 보이던 어린아이였다. 이제 막 세상의 푸르름이 눈에 띄던 시절. 그림책에는 미래의 모습,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들을 그려보라는 말이 자주 있었다. 어른이란 아득한, 살아온 시간의 수십 배가 지난 후의 미래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없었다. 다양한 나의 미래가 흰 도화지에 그려졌다. 의사가 되기도 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도 하고, 화가가 되기도 했다. 하얗던 도화지가 어느새 다채로운 나의 모습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다만 항상 웃고 있었을 뿐이다. 고사리 같은 손에 크레파스를 묻히며 웃는 그 모습 그대로.


어느새 크레파스를 쥐고 웃던 이빨 빠진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몇십 배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가운을 입지도, 우주를 유영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사고 싶은 물건들을 보며 가격을 저울질하고 푸른 하늘 대신 모니터만을 바라본다. 가끔은 돈과 양심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고단한 사회와 후회, 죄책감에 시달리다 지쳐 불편한 마음으로 내내 지내다 이윽고 베갯잇을 눈물로 적신다.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어릴 적과는 이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른이라는 입장에서 사회를 마주하며 외줄 타기를 하듯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지낼 뿐이었다. 주변인들도 비슷했다.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꿈보다는 슬픔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토해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새 불안과 슬픔을 토해내고 한숨을 내쉬다가 읊조리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던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어. 조금 더 멋있고, 대단할 줄 알았는데.


그렇기에 짱구 주변의 어른들도 희망을 품고 미래를 꿈꾸던 시절을 되찾고자 한다. 20세기 박물관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던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도, 그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의 리더 켄도, 미셸도, 짱구 주변의 모든 어른도 젖은 향수 속을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저 그때가 즐거웠고 기뻤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다가온다는 희망 속에서 어둠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유일한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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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20세기에서 멈춰버리겠다는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는 어느새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직전까지 온다. 이제 20세기 박물관의 꼭대기 층에서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면 더는 추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느새 정신이 든 신형만과 봉미선은 곧 현실을 되찾기 위해, 그 프로젝트를 저지시키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뜀박질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는 멈출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편안한 엘리베이터를 거부하고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튼튼한 두 다리로 높은 철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에서 머무르고자 하는 켄과 미셸이 탄 안전한 엘리베이터가 그들의 옆에서 어떤 방해나 고통 없이 위를 향해 올라갔다. 그에 비해 짱구 가족이 달려가야 하는 길은 위험함의 연속이었다. 안전하지 못한, 그 무엇하나 지탱하는 것 없이 철탑 위를 넘어지고 구르면서 피를 흘렸다.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의 조직원들이 그들을 방해하고 위험에 빠트렸다. 봉미선은 앞은 너무 무섭다, 위험하다, 앞으로 가기 싫다며 수없이 울었다. 그렇게 그들이 미래를 위해 달린 길은 무섭고, 위험하고, 가기 싫은, 거부하고 싶은 길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 누가 막아도, 포기하고 싶어도 그들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튼튼한 두 다리로 앞을 향해 달렸을 뿐이다. 가끔은 과거를 뒤돌아보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으면서.


결국 켄과 미셸은 짱구 가족보다 먼저 철제 탑을 올랐다. 그러나 앞으로 과거에만 머물러있겠다는 그들의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미래를 향해 달리는 짱구가족의 모습을 보며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가 구성했던 과거에서만 살아가는 마을, '저녁노을 마을'의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과거에서 고여있는 것이 아닌 앞으로 한걸음 내디딜 용기를 얻기 시작하며 과거에 머무르겠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그들의 프로젝트는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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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살아갈 자신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둘은 그렇게 영원히 자신들의 시간을 멈추려 하지만 비둘기 가족의 방해로 그마저도 방해받는다. 결국, 주저앉아 우는 미셸이 추한 미래를 살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진 않다는 의사를 표현하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짱구가 신형만을 정신 차리게 하고 현실로 되돌렸을 때는 아직도 긴 명장면으로 회자한다. 20세기 박물관으로 사라진 부모님을 찾기 위해 건물을 돌아다니던 짱구는 어느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짱구는 아빠 신형만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에게 자녀가 있음을, 현재를 부정하는 신형만에게 짱구가 그의 신발 냄새를 맡게 해주는 순간 그는 자신이 딛어왔던 길을 회상한다. 아득하게 넓은 부모님의 등을 잡고 자전거를 타던 어린 여름날과 낙엽, 함께 피어오르던 청춘. 어느새 함께 걷던 발자국이 사라지며 서늘했던 겨울. 어른이 되며 마주했던 너그러움 없이 바쁜 사회생활과 그런데도 꽃을 피웠던 애정, 그 애정을 나누며 함께 일궈냈던 가족. 그는 지금껏 쌓아 올린 시간을 마주하고 나서 다시 현재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나온 시간과 그 모든 순간을 마주하고 나서야 현재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신형만을 보며,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를 멈추기 위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서는 짱구의 칠전팔기를 보며,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죽음으로 도피할 수 없는 미셸을 보며 나는 이 거친 세상에서 그런데도 앞으로 달려가는 현재의 수많은 어른을 떠올렸다. 나아가기 힘든 나날들 속에서 우리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나왔던 시간 속에서 행복을 찾고, 회상하는 추억 속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가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고 지저분한 세상에 슬퍼하며 계속해서 걱정 없었던 과거를 찾는다. 역경과 고난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일곱 번 넘어지며 생채기가 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여덟 번째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나 자신을 마주하고 미래를 계속 쌓아 올리기 위해서, 위험하고 거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비록 어릴 적처럼 꿈과 행복이 가득하지는 않지만 그런데도 한 줌, 미래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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