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랄프는 '나쁜 놈'인가? [영화]

루소의 관점에서 본 영화 <주먹왕 랄프>
글 입력 2021.04.0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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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자로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자연법과 실정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루소의 견해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크게 사회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영화 속의 세계는 게임 속 세상이다. 우리는 게임 속 세상을 ‘인간 사회’로 동치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게임 속 세상은 게임제작자, 즉 우리 사회에서의 신(神)—초월적—으로 볼 수 있는 이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점에서 게임 속 세상의 존재자들을 모두 게임제작자가 만든 각각의 게임 속에서의 규칙을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랄프가 개인의 의지로 플러그가 뽑힌 게임 속 캐릭터들을 자신의 게임으로 데려온다는 점에서 존재자들은 수동적으로 규칙에 순응하는 것만이 아닌 주체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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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고쳐 필릭스 2세>에서 랄프를 ‘나쁜 놈’으로, 필릭스를 ‘착한 놈’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을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쉽사리 이 세계에는 이미 선악의 개념이 형성되어 있고, 이 개념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에 자연법이 존재하는 세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인식되는 ‘착한 놈’과 ‘나쁜bad 놈’은 선과 악을 뜻하지 않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善)의 의미는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이고, 악(惡)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도덕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착한 놈’을 ‘선한 존재’로, ‘나쁜 놈’을 ‘악한evil 존재’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더 나아가 선에서 악으로, 악에서 선으로 변화가 불가능하고 있다는 점)는 면에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게임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규칙인 “착한 놈만이 메달을 얻는다”와 “자신의 게임 밖에서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에서 증명된다.

 

자연법은 도덕과 법이 결부되어 있어야 하며 일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규칙들은 사회구성원들이 양심과 관습 등에 비추어 스스로 당연히 지켜야 할 준칙 또는 규범의 총체를 의미하는 도덕(실정법적 개념으로 볼 수 있음)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 따라서 이 규칙들은 단지 세계가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원리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이 세계에서 ‘나쁜 놈’과 ‘착한 놈’을 구별하는 기준은 구성원들(필릭스와 랄프 외)이 그들에게 오는 ‘피해 여부(또는 좋음과 싫음)’에 따라 인식한 속견opinion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에 부합하게 된다. 이 자연상태는 인간이 깊게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서, 선악 개념이 형성되기 전으로 이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고 정의definition된다. 즉, 악덕을 모르는 깨끗한 사람들로서 자기 보존의 관심과 함께 ‘동정(공감)의 정’을 자연적인 감정이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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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empathy’은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기 전에 나我와 타자의 관계를 규정짓는 최초의 자연적 감정으로서 구체적으로 한 개인이 자연세계에서 벗어나 공동생활여기서는 타 게임 속 세상, 구체적으로 슈가러쉬의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외부적으로)‘발생’한다. 랄프는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쓰레기 더미에서 지내는 베넬로피의 삶을 보면서 동정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낀 동정은 이성logos와 결부되어 랄프의 생각과 행동,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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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존재자들에게 이성이 작용한 경우는 언제인가? 첫째, 랄프는 자신을 “나는 만드는 것은 못 해, 그냥 부수기만 하지”라는 말로 자신의 속성을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넬로피와 함께 카트kart를 만들고 기뻐하는 베넬로피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규정된 속성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게 된다.

 

둘째, 베넬로피의 카트를 부수고 “당신은 정말 나쁜 놈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때 랄프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 ‘나쁨’을 행한 것이다.

 

셋째, <영웅의 의무>에서 따온 메달—랄프가 ‘착한 놈’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에게 감정적 욕망의 대상—을 게임기의 화면에 던지는 행위와 동시에 이로 인해 슈가러쉬 게임기 측면의 레이서로서의 베넬로피의 모습을 볼 때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적/비판적’ 이성이 작용하여 슈가러쉬에서 킹캔디에 의해 통용되던 규칙—오류는 경주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에 의문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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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나는 나쁘다. 그리고 그건 좋다. 난 절대 좋아지지 않겠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보다 더 나답게 될 사람은 없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던 이전과 달리 스스로 이를 말하며 받아들인다. 이는 랄프는 ‘나쁨’과 ‘착함’이 자신을 규정지을 수 없으며 단지 존재자들이 세계에서 존재하기 위한 ‘수단’이자 ‘의무’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경험적 지(인식)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슈가러쉬가 리셋되고 난 후, 베넬로피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슈가러쉬 사회의 체계를 군주정에서 입헌 민주주의로 전환한다. 이는 이제 자연법과 실정법이 탄생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에 의하면, 자연법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전환될 때 사회계약의 당사자들이 내면에 새겨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은 법과 도덕의 일치가 이루어지고, 이로써 실정법이 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도덕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 루소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면, 동정은 도덕적 관계 또는 도덕성 형성에 기여하는 원시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때, 도덕성의 형성에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는데, 자기 존재를 자기 자신이라는 테두리 안에 한정하지 않고 테두리 바깥으로 확장할 있는 능력과 자기 존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나와 남의 관계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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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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