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우리의 끄적임은 충분합니다

글 조각들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며
글 입력 2021.02.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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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끄적이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국어’ 교과서 표지를 ‘궁예’로 바꾸는 등 책에 낙서를 즐겨 했던 것은 물론이며, 학교 뒤편 분리수거장에서 버려진 노트를 주워 와 실없는 그림이나 문구를 적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는 선생님들의 칠판 필기체를 똑같이 따라 쓰는 재주도 있어서 틈날 때마다 필기체를 바꾸어가며 공책에 글씨를 쓰고는 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 습관이 있는 것 같네요. 비단 손뿐만이 아닙니다. 무엇이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입의 움직임에도 쉼이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저의 끄적이는 습관과 수다를 떠는 습관은 점차 글을 쓰는 습관으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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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에디터라는 직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뿌듯했습니다. 감투를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사방팔방에 저의 글을 자랑하러 다니고는 했지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이제 와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물론 에디터가 되어 글로서 독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얕은 실력으로 글을 쓰는 저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여 성장을 꾀하는 멋진 사람. 저는 그런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엇보다 무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은연중에 무시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곧장 갚아주는 성격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에 모가 난 사람이라 그런가 봅니다. 상대의 조언을 흔쾌히 귀담아듣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요.


어쩌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타자(他者)와 함께 비교의 저울에 올라가서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좋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타인의 ‘좋지 않음’이란 나의 ‘좋음’을 뒷받침하는 타당한 이유로 쓰일 수 있어서, 일종의 차별화된 집단을 형성하기에 편리한 기준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집단 구성원의 만족을 추구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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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무언가의 ‘좋고 나쁨’은 판단의 척도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것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좋은 에디터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마 당신이 이 글에서 얻고 싶은 수확일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정답이 없을뿐더러, 저의 언어가 또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답을 적지 않겠습니다. 개인이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좋고 나쁨이란 결국 각자의 상대적인 해석에서 비롯하는 것이기에, 저의 생각은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아예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지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는 창의성을 고착화하여 그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저 마음에 있는 언어를 끄적이며 표현하는 사람도 좋은 에디터일 수 있고, 글의 목적을 상기하며 고운 단어와 문장을 골라 글을 쓰는 사람도 좋은 에디터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에디터란 문자 그대로 ‘편집자’의 구실을 하는 사람보다는, 수많은 생각과 경험을 모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작가’에 가깝습니다.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굳건한 언어를 만들어낼 의무가 있습니다. 작가의 메시지는 하나의 주문이 되어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작가의 세계는 독자에게 전승되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양분이 되지요. 그러니 작가에게는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결국 ‘좋은 에디터’의 기준을 정하는 것 또한, 작가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과제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제가 정한 좋은 에디터의 기준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가 좋은 에디터인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좋은 에디터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정한 이상향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저 저의 모습을 끊임없이 반추하려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도 저의 글이 온전히 자리한다면, 그로써 만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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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버겁습니다. 타인의 글을 읽을 때 혹시라도 그 함의를 잘못 이해할까 봐 예민해지고, 때로는 저의 글을 곡해하여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을까 봐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한 편의 글을 쓰려면 문장 표현과 단어 선택은 물론이고, 글을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부터 독자에게 보일 글 제목까지 세심히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저의 고민만은 아니겠지요.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기꺼이 감당하는 모든 분이 깊이 공감하실 대목일 겁니다.


힘듦을 감수하고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이 시작된 곳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끄적임입니다. 무수한 끄적임은 글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문화와 예술에 흠뻑 취해 조그마한 끄적임을 남기면 이후에 이를 소재로 글을 쓰고는 했습니다. 때로는 시련에 풀죽은 생명의 움직임을 예술의 언어로 그려내거나, 누군가의 눈부신 이야기를 글에 꾹꾹 눌러 담아 세상을 향해 보여주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면 참으로 보람찬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오늘도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비교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나름의 도피처 안에서 써 내려간 글마저 비교하는 것처럼 피곤한 일은 없을 겁니다. 좋은 에디터와 좋지 않은 에디터를 나누는 기준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정성껏 쓰인 글의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 또한 실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전문가에게 글을 평가받으며 상대와 우열을 가리기도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글의 이모저모를 되돌아보며 반성한 후 실력을 쌓기도 하지요. 이러한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종의 비교 및 평가가 자신을 성장이 아닌 정체와 좌절로 이끈다면, 이는 영혼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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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배우다 보면 이론, 가설, 법칙 등 여러 개념을 접하게 됩니다. 과학사의 흐름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이론이 등장하면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 시도는 가설이 되고, 가설을 검정하는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법칙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단한 노력 끝에 세워진 법칙은 아주 탄탄합니다. 하지만 항상 건재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대가 흐르고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 후 과거의 법칙에 모순이 발견된다면 이는 폐기됩니다.


예술은 다릅니다. 과거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지금 나의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폐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흘러 빛을 보는 예술품이 있듯이, 예술은 시간의 흐름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좋은 글을 쓰지 않았어도, 좋은 에디터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도 우리의 끄적임은 이미 충분합니다. 쓸모가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언제든지 들추어 덧댈 수 있고 살을 붙여 손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도 마음껏 생각하며 충분히 끄적여보겠습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글 조각들이 새롭게 피어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에디터는 아닐지라도, 가치 있는 생각을 공유하고 기쁨과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만약 당신의 방향과 저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가끔 놀러 와서 시선을 남겨주세요. 저는 이 자리에서, 글을 다듬어가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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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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