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 망고와 수류탄

글 입력 2021.01.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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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통해 사회를 생각하고 사회를 통해 개인을 이해한다. 우리는 바란 적도 없는데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 태어나, 미리 정해진 협소한 조건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 안에서 사회적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생활사 청취를 통해 깨닫게 된다. 우리들은 역사와 구조에 의해 우리 인생 대부분을 규정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다. 동시에 우리들은 그런 역사와 구조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혼자다.

-13쪽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무궁무진한 일은 드물 것이다. 어제 무엇을 먹고 뭘 봤는지 같은 간단한 이야기부터 유년시절의 추억, 가정사, 옛날에 가졌던 꿈.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우주만큼이나 크고 넓다고 믿는다.

 

사회는 이런 사람 한 명 한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지만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할 때 개인은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어떤 직업군이나 성별, 세대로 명명된다. 물론 개개인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질적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조사법은 흔히 양적조사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거나, 굵직한 사회 담론과는 거리가 있는 자료로 여겨진다. 실제로 우리는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인생사보다는 국가기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더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이렇듯 질적조사를 둘러싼 통념과 편견에 질문을 던진다. 전작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도 전체 맥락에서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같은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해온 그가 <망고와 수류탄>이라는,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제목의 책을 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통해서 읽어낸 사회의 모습을 다루었다면 <망고와 수류탄>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학에서의 질적조사 방법론에 대하여 쓴 것이다.

 

논문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어 장르를 명확히 구별하기가 어려운 이 책에서 저자는 질적 조사가 현장에서 어떻게 행해지고 또 그 결과물이 연구자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여기 저기서 모여든 개인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이론을 정리, 제시한다.

 

 
어떻든 간에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구술자의 구술자의 부정도 구조의 부정도 혹은 사실성의 부정도 아닌 '제 4의 길' 이다. 오히려 나는 사실성으로 가는 길을 남겨둔 채 이론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현실에 대한 다양한 기술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106쪽

 

 

대표적인 질적 자료 조사에 해당하는 생활사조사 중에는 종종 조사자의 가설 또는 일반적인 사회인식과 어긋나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세 번째 꼭지 '인용부 벗기기'에 따르면 이때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가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구술자의 합리성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가설을 틀린 것으로 여기고 파기해버린다.

 

이 두 가지 반응을 비판하며 나온 것이 사쿠라이 아츠시의 '대화적 구축주의'이다. 그는 '구술청취의 인용부 해제'를 금지하며 연구자가 구술을 이해하고 거기에 맥락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쿠라이의 이론은 일본 사회학의 질적조사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구술자들의 이야기는 영영 인용부 안에서만 머물며 현실과는 분리된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저자는 사쿠라이의 해석법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방식으로 '인용부를 벗길 것', 그리고 '이야기에 현실을 돌려줄 것'을 주장한다. 즉 구조와 개인이라는 이분법을 깨고, 조사자가 들은 구술 내용을 바탕으로 최대한 해석의 범위를 넓혀 '인간에 관한 가설'을 다양하게 세워보자는 것이다.


'오키니와를 이야기하는 방법', '조정과 개입', '인용부 벗기기' 등의 꼭지가 사회학에서의 조사 방법론을 다룬 논문에 가깝다면, 다른 꼭지들은 저자가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 자료조사를 한 내용이다. 책의 제목과 비슷한 결의 소제목 '바다의 밀가루', '푸딩과 사슴벌레', '담배와 코코아'에는 저자가 만난 여러 사람들의 입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전체로 환원되지도, 이야기에 머물지도 않는 그 사이 어디쯤 개인의 목소리를 저자는 다양한 현장에서 포착했다.

 

그로부터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제각각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은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맥락에서 벗어나고 때론 인과관계가 말이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인용부를 벗기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세상에 다시 전달할지 고민하는 건 저자와 같은 사회학자의 몫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질적사회학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란 재현 불가능한 일회적 상황 속에서 행하는, 재현 불가능한 일회성의 행위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 상황과 행위를 계속 관찰해서 기록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상황과 행위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에 관한 이론'을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293쪽

 


인간에 대한 이해가 확장될 때 우리는 구체적인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타자화되어왔던 어떤 삶이 그 삶의 주체에 의해 말하여진다.

 

어떤 연대는 그 말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소설 같은 제목에 에세이와 논문이 섞인 형태의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저마다 다른 인간들이 모여 있는 이 세상이 좀 더 가깝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망고와 수류탄–생활사 이론

マンゴーと手榴弾-生活史の理論

 

 

지은이

기시 마사히코 岸政彦

 

옮긴이

정세경

 

출판사

두번째테제

 

체  제

127*188 | 304쪽 | 16,000원

 

분  류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역사학 > 테마로보는역사 > 미시사/생활사

 

발행일

2021년 1월 5일

 

ISBN

979-11-90186-09-4 [03330]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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