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과 현실, 그 자유로운 비행에 관한 담담한 기록 - 영화 '요요현상'

글 입력 2021.01.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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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열정, 도전, 젠장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꿈, 열정, 도전"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염세주의에 취한 자신에게 취한 16살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보통 이런 단어들은 현대사회의 상품으로 전시될 때 깎아놓은 사과 같아서 그렇습니다. 특히 내면에서 휘몰아칠 때는 향기롭지만, 말이건 텍스트로건 꺼내놓은 다음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변색하여버린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런 불쾌감은 어떤 특정 대상이나 말에 있다기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유통되는 단어의 맥락에 있습니다. 여러 강의, 자소서, 사이트, 가판대에 섰던 현장을 떠올려봅시다. 수많은 매체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현실적인 삶을 살겠습니까, 열정을 따르는 삶을 살겠습니까?", "나는 오늘 내 꿈을 위해 퇴사했습니다". 에잇 젠장.

 

제가 최근 최첨단 해킹기술로 읽은 NASA의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이런 질문들과 전자레인지와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바로 돌리는 걸 잘한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으로는 전자레인지는 나한테 먹을 걸 주는데, 저런 질문들은 아무것도 안 준다는 점이 있습니다. 대체 무슨 대답을 위해 저런 대답을 하고, 우리는 왜 끊임없이 저 질문들을 갈구하게 되는 걸까요?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꿈, 열정 기타 등등은 열정적인 삶과 현실적인 삶에 명확한 구분 선이 있는 것처럼 굴곤 합니다. 열정에 따른 삶이 개인의 성장을 담보하거나 진정한 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의 뿌리에 기묘한 성공 신화와 과장된 자아가 굴다리 밑 황소개구리처럼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비단 저만은 아닐 겁니다.

 

이런 현상은 행정과 기술 발달로 촘촘하게 나누어진 경계선이나 나르시시즘을 종용하는 문화적 변화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과 비교해 일정한 삶의 주기와 역할 경계선이 있었던 이전 세대의 시대적 배경이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요즘 더 두드러진다 해도, 이전 시대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겠죠. 원인이 무엇이 되었건 그 뚜렷한 경계는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방향을 더욱 모호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꿈 팔이'에 끌려다니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어느 시절에 느꼈던 것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겁니다. 반대로 무개성 하게 느껴지는 일자리와 팍팍한 인생살이 때문일 수도 있고, 더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드디어 나의 숨겨진 열정을 찾았고, 이제 그걸 적극 쫓아가는 어른이 되었어." 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종용하는 것은 이세계 환생 만화가 주는 즐거움은 줄 수 있어도, 당장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아닐 겁니다. 그런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모두 영원히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것도 아닐 거고 말입니다. 그럼 대체 우리에게 남은 대답은 뭘까요? 정말로 그런 것들에 대해 담담한 답변을 들을 날은 올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요요현상>은 꿈과 열정을 다룬 수많은 상품 중에서 찾아낸 옥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요현상>은 어린 시절부터 취미도 요요, 특기도 요요인 다섯 명의 ‘요요 소년’(대열, 동훈, 현웅, 동건, 종기)가 20대 후반 사회 진출을 하게 되며 겪은 ‘좋아하는 것’과 ‘일’ 사이의 고민과 해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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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무한루프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하나의 그룹으로서 소개됩니다. 하나의 그룹으로 충분히 설명될 만큼, 이들의 갈등은 비슷비슷하고 취미와 일에 대한 고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요요를 해온 요요 퍼포먼스 팀 ‘요요현상’의 멤버인 다섯 사람은 2011년 여름, 대학졸업을 앞두고 자신이 꿈꿔온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요요를 그만두기로 합니다. 성공적인 페스티벌 이후로 이들은 너무나 커져 버린 취미를 포기할 수도, 계속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이십 대 중후반이 된 이들을 다시 보여줍니다. 이들의 삶은 무언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동건은 언론 대학원에 입학해 취미보다는 좋아하는 공부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그는 기자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동훈은 직장에 들어가 요요를 가끔 즐기지만, 언젠가 요요를 그만두게 될 것을 걱정합니다. 영화의 주제인 "꿈인가, 현실인가"를 가장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열과 현웅은 요요현상이라는 그룹에 남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들의 열정은 그대로지만, 문화예술가로 사는 삶은 다소 불안하고, 요요가 하나의 일로서 느껴지는 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열은 예술가로서 요요로만은 표현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룹은 해체됩니다. 현웅은 끝까지 요요 퍼포먼서로서 활동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룹 중 한 명이었던 종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자신이 요요 문화를 주도하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갑니다. 성공적인 사업계획과 열정으로 사업은 성공적으로 확장됩니다. 하지만 백화점의 폐쇄로 성공적으로 쌓아온 커리어에 난항을 겪게 됩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더 시간이 흐른 후를 보여줍니다. 삼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이들의 삶은 이제 불안한 시절보다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동건은 여전히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요 퍼포먼서로서는 아니지만, 새로 찾은 일에서 가치를 찾았습니다. 동훈은 일과 취미의 경계의 미묘한 균형을 찾는 데 성공합니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주기적으로 대회에 참가하고,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대열은 프랑스에서 유학을 다녀온 이후로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웅은 요요 협회장으로서, 종기는 요요 유튜버이자 사업가로서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습니다.

 

작품은 결코 어떤 선택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그 민낯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어떤 메시지나 결론을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과 비교해 비교적 담백하지만,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8년이라는 제작기간은 분명히 이 작품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이 작품의 소재인 요요처럼 흘러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래로 멀리 떨어졌다가 다시 손으로 돌아오는 요요처럼, 취미와 일 사이의 방황은 결국 개인이라는 하나의 삶으로 통합된다는 메시지로 마무리 짓는 감독의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같은 고민에서 시작한 다섯 사람이 결국 자신의 삶에서 각자의 답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요요에 열광한 다섯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를 감상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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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삶을 향한 여느 시선, 고두현 감독


 

<요요현상>의 감독이기도 한 고두현 감독은 2016년 <옥상 위의 버마>에서 버마에서 온 세 명의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바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여느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은, 폐쇄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주 노동자로 통칭되는 범주화로 이들을 가두는 대신, 살아온 환경도, 취향도, 생각도 다른 이들은 지금 현재 마석의 옥탑에 일시적으로 동거하고 있는 개인들로 바라봅니다. 각 개인의 실존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감독의 시선은 <요요현상>에서도 유지됩니다.

 

<요요현상>에서도 감독은 꿈을 좇는 사람, 쫓지 않는 사람 등으로 범주로 나누어 '위치 짓기'를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한 인간으로 바라봅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취미와 현실은 하나의 삶에서 그냥 흘러가는 하나의 줄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간 삶은 추억이 될 수도, 아직 진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결코 잊히거나 사라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어떤 삶이 답이라고 구분 지어 말하지 않습니다. 요요를 추억으로 미루어둔 삶도, 삶과 함께하는 삶도, 조금 다르게 틀은 삶도, 적극적으로 쫓아가는 삶도 결국 요요처럼 빙빙 돌아 다시 요요를 던진 손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요요를 던진 사람은 다시 요요가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야 그 과정이 놀랍고 아름다운 화려한 묘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른 관객들이 그랬듯이 저도 제가 한때 열을 올렸던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이십 대 후반까지 그때 당시에 온 열을 다한 일을 끌고 오지 않았지만, 아직도 주변을 맴돌곤 합니다. 글쎄요, 지금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지만,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환장할 수도 있겠죠. 사실 그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모두 끊임없이 요요의 묶인 줄을 풀고, 멀리 던지면서 화려한 묘기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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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현상

Loop dreams

 

 

감독/각본

고두현

 

제작

영화사 금요일

 

출연

곽동건, 문현웅, 윤종기, 이동훈, 이대열

 

배급/마케팅

씨네소파

 

개봉일

2021년 1월 14일

 

러닝타임

92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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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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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낼모레 영화보러가려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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