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던,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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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약 10년 전, 영화를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블라인드]를 본 적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과 책을 읽으러 온 마리의 이야기로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당시 볼 수 있는 곳이 없었고 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찾아봤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없었고 나는 자연스레 이 영화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 '블라인드'라는 영화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내가 오랜 시간 보고 싶어 했던 그 영화가 맞을까? 하는 마음으로 링크를 클릭했고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맞았다.
그때 나는 크게 감탄을 했다. 오랜시간 보고 싶어 했지만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굉장히 운이 좋은 일이었고 조심스러운 시기지만 극장으로 향했다.
“내 사랑 나를 기억해줘. 네 손끝, 네 귓가에 남은 나를...”
앞을 보지 못하는 ‘루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짐승처럼 난폭해진 그를 위해 어머니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하지만 다들 오래가지 못해 그만둔다. 새로운 낭독자로 온 ‘마리’가 첫만남에서부터 루벤을 제압한다. 마리는 어릴 적 학대로 얼굴과 온몸에 가득한 흉측한 상처와 남들과 다른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지만 볼 수 없는 루벤 앞에서만은 자신을 드러낸다.
루벤은 [눈의 여왕]을 읽어주는 마리의 기품 있는 목소리와 단호한 행동에 관심을 갖고, 마리를 아주 아름다운 모습일 거라 상상하며 사랑에 빠진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것이 처음인 마리 역시 낯선 이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고 마음을 연다.
하지만 루벤이 수술로 눈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마리는 자신을 보고 실망할 것이 두려워 그의 곁을 떠난다.
이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 루벤은 사라진 마리를 찾아 방황하는데…
예전에 읽은 글을 통해 모든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영화는 역시 글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아름다웠던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 느껴지는 소리.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라 그런지 하나하나 따라가기 바빴던 것 같다.루벤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촉감과 청각이 더 발달했는데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수염을 깎는 소리, 숨소리 등 일상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소리가 여기서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마리와 함께 빙판에 가서 장갑을 낀 채로 얼음을 만지니 나는 볼 수가 없다고 한 대사도 인상 깊었다. 루벤에겐 만지는 것이 곧 보는 것이었을 테니 뭐든 만지려고 했던 루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둘의 사랑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에게 눈이 되어준 마리,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마리에게 편안함을 준 루벤. 웃지 않는 마리가 루벤과 함께 있을 때 웃었는데 마리가 치유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있는 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둘의 엇갈림은 나에게 참 안타까웠다.마리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평생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다가도 상처가 큰 사람이 용기를 낸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리의 행동이 공감 가기도 했다.또한, 마리가 루벤을 통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루벤 어머니나 주치의의 말 하나하나가 마리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루벤은 충분히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건데 왜 그의 주변에서 그 사랑을 함부로 판단하나 싶었다.
마리와 루벤은 결국 엇갈렸고 마지막에 루벤은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간다.루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가족 외에 사랑하는 사람, 전부인 사람이 없다는 것은 눈이 보여도 결국 흑백의 삶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을거라 본다. 그만큼 마리는 루벤에게 전부였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루벤은 마리와 함께 눈이 보여서 함께하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그 후에 나온 장면에서 뛰어다니는 마리가 루벤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사람마다 의견이 달랐다. 나는 상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이 다시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겠지만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간 루벤과 마리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는 확신 할 수 없다. 그저 각자 선택한 삶 속에서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오랜 시간 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라서 그런지 정말 만족스러웠다. 내 기준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을 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많이 예민하고 답답한 시기, 특히 마스크를 써서 사람의 겉을 볼 수 없는 시기에 보러 가면 다른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김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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