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는 인생이야 : 그들이 사는 세상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
글 입력 2021.01.0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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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나는 10대였다. 그 당시 방영했던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봤다. 사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흐릿하다. 그런데 13년이 무색하게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선명했다. 지오와 준영을 비롯한 그 시절 방송국의 희로애락을 담은 이 드라마는 꽤 오래 여운을 남겼다.

 

 

 

드라마는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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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지오가 한결같이 내뱉는 대사다.

 

지오는 드라마는 인생이라며 준영에게 인물의 감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준영은 그런 그의 신념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나는 사실 드라마가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저 현실성을 약간 묻힌 판타지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주는 감정들은 인생의 한 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드라마가 선사하는 기쁨, 슬픔, 감동, 분노, 유머, 그리고 어떤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뒤섞인 감정들까지도 우리에게 닿는 과정이 드라마가 해내는 역할이 아닐까.

 

특히 준영과 지오의 감정은 특별했다. 준영은 차가웠지만 동시에 불타오르는 사람이었고, 지오는 정의로우면서도 자격지심에 갇힌 사람이었다. 옛날엔 무작정 착하고 능력 있는 주인공만을 쫓았다. 그러나 문득 인간이 완벽히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먼저 나조차도 선과 악이 뒤섞인 사람이었다. 사실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모두가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멋지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찌질해지는 게 사람이다. 준영과 지오에게는 그런 사람 냄새가 났다.

 

이 둘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는 캐릭터들이었고, 드라마였다.

 

 

 

방송국, 드라마 PD에 대한 환상 혹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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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을 다룬 다른 드라마들을 보면 PD는 빛나는 사람이다.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카리스마 있다. 왠지 모르게 멋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의 방송국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장시간의 촬영에 지친 사람들은 옷 한번 갈아입지 못하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준영과 지오의 외모이기에 괜찮은 것이다.

 

편집실의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연출, 생방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 테이프를 들고 뛰는 감독들, 감독에게 혼나는 조연출, 메인 감독에게 욕먹는 B팀 감독. 물론 내가 방송국에서 일해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모르게 현실성 있어 보였다. 멋들어지고 깔끔한 PD보다는 확실히 이편이 현실 같았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고 동료를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에서 보이는 멋짐마저 현실일지는 모르겠다. 일로 인해 욕을 먹으면 억울해하다가도 쉽게 인정하고, 더 나은 장면을 위해 발로 뛴다. 실컷 싸우다가도 서로 한발 물러서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화해한다.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중요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사실 사람이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하고 잘못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가 나에게 혼을 내면 반사적으로 반감 섞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억울함과 변명을 누르고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그들이 멋져 보였고, 어른 같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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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 드라마가 방송국 사람들의 이야기로 등장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에서 30대부터 50대까지의 사람들의 진짜 인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매 화마다 등장하는 내레이션이 가장 인상 깊다. 그 내레이션에 작가와 감독이 하고픈 모든 말이 함축되어 있는 듯했다.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과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레임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것조차 과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레이션이다. 나는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벗어나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나에게 일과 같았다. 영화를 찍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펀딩을 진행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이 세 문장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분명히 내가 30살이 되고 또 40살이 될 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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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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