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 고흐는 알면서 김환기는 왜 모를까? - 방구석 미술관 2 [도서]

글 입력 2020.12.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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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재 작가의 전작인 <방구석 미술관 1>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미술 교양서·입문서는 아주 단비 같은 존재다. 빠르게 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조금이나마 작품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미술사 입문서 중 <방구석 미술관>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예술가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면 예술의 가치가 비로소 더욱 빛나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그러던 저자가 이번엔 <방구석 미술관 2>로 돌아왔다. 그것도 한국 미술, 그중에서도 현대 미술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처음엔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전작을 낸 이후 생각보다 사람들이 한국 현대미술 예술가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이 “반 고흐는 알면서, 왜 김환기는 모르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아무래도 저자가 소개하는 한국 현대 미술가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김환기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필자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서양 미술에 비해 거의 모르다시피 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화풍의 화가 하나쯤은 발견하려나, 라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펼쳤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원조 신여성,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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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자화상(여인초상)>, 1928년경

 

 

친구를 만나러 수원에 간 적이 있다. 나혜석 거리에서 보자던 친구를 기다리며 ‘나혜석’이 누구인지 궁금해 스마트폰으로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나혜석을 알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엔 ‘신여성’이라는 키워드로 페미니즘 도서에서 소개된 걸 몇 번 읽었다. 필자에게 나혜석은 예술가보단 운동가의 이미지가 더 강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삶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여성들을 독려해 3.1운동의 초기 확산을 도왔고, 조선 여성 중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도 일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 여성들에게 일깨워준 당당한 워킹맘이기도 했다. 정작 그녀의 삶은 사랑과 배신, 시련이 가득했지만, 잔혹하게도 예술은 시련을 겪었던 자에게 더 진한 향기를 선물했다.

 

그녀의 그림을 그냥 볼 때와 그녀의 삶을 알고 볼 때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그림 속에서 당시의 나혜석이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혜석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충실했던 예술가가 아닐까?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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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군상>, 1982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감동이 배로 다가오는 그림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바로 이응노의 ‘군상’이었다.

 

‘살아 있는 그림’이란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린다. 이응노의 ‘군상’ 연작은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한데 모여 전 인류의 어울림과 평화를 노래한 그림이다. 이념의 대립, 전쟁으로 인한 격동의 20세기에 얼마나 많은 상념과 염원을 담아 그렸는지 그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대를 초월해 그의 작품에서 영원히 울려 퍼져 나갈 시는 이것이 아닐까. 모두, 함께, 어울려, 자유와 평화의 춤을.“

 

-139p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사업 천재, 유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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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작품(Work)>, 1957

 

 

우리가 여태껏 미술사에서 봤던 모든 예술가는 대부분 부잣집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이른바 ‘엘리트’들이었다. 게다가 예술가라 하면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돈 벌어오는 재주가 없거나, 현실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이미지도 강하다. 그러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유영국은 이런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버리는 인물이다.

 

그는 매우 뛰어난 사업 감각이 있던 ‘사업 천재’였다. 일본 유학을 하면서 그림에 대해 배우던 유영국은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에 꼭 맞는 ‘추상회화’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취향만으로 추상회화에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미래의 흐름이 추상미술이 될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

 

그는 예술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과 작업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부딪힐 때, 사업을 벌였다. 어업으로도, 양조 사업으로도 대성공을 한 걸 보면 치밀하고 똑똑해서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쥔 유영국은 다시 예술의 길을 걷는다.

 

그에게 사업은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키고, 자신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현실주의자였던 그의 모습을 보면 참 현명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무사히 꽃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전작인 <방구석 미술관 1>을 읽으면서 대체 파리라는 도시가 어떻길래 모든 화가들이 거쳐야 할 종착지, 문화중심지로 여겼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파리에 정말로, 진심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방구석 미술관’이지만 실제로는 당장이라도 이 작품들이 실제로 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곤 했다.

 

그에 비해 <방구석 미술관 2>는 조금 더 차분한 느낌으로 읽었다. 타국이나 타지에 있어도 늘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미를 그림으로 옮긴 예술가들을 보니 무작정 서양 미술이 최고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오르세 박물관은 먼 훗날 방문하기로 하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한국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는 시간을 먼저 가져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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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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