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버려진 줄 알았던 나무 조각들의 모자이크 -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마음이 아픈 사람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글 입력 2020.12.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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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 본 의사 선생님의 마음 따스한 위로


 

최근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영하 20도의 한파였다. 코로나 19의 위협 속에서 꽉 낀 1호선을 타고 출퇴근할 때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인간군상은 그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존재이곤 했다. 어린 시절 몸과 마음이 불편한 이들에게 느꼈던 연민과 애정의 시선은 어느덧 혐오의 눈길로 바뀌어 버렸다.

 

벽을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를 마주할 때면 눈을 흘기며 피해 다녔고 연일 보도되는 조현병과 관련된 범죄 기사들에 괜스레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꽁꽁 얼어붙은 나의 마음에 스스로도 놀랄 때 즈음 책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났다.

 

책의 초반에 ADHD를 앓은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책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이야기였다. 본인도 아파보아서였을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들에게 그가 느끼는 애정과 공감은 특별하다.

 

글에서 사랑과 이해의 뜨거운 온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정신질환자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노력하는 그의 글에서 나는 잃었던 순수하던 옛 시선을 상기시키고 다시 따뜻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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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아픈 자취


  

정신질환은 특히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인식이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최근 유행처럼 번진 우울증이 그렇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감히 우울증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과에 상담을 다닌다는 말도 그렇다. 요즘 젊은 층에서야 내과에 방문하듯 정신과에 가는 일을 큰일로 여기지 않지만, 작가가 나고 자란 세대만 해도 '언덕 위의 하얀 집'과 같은 별칭으로 불리며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일이 대다수였다.

 

'간질'로 흔히 불리는 뇌전증과 같은 질병도 그렇다. 신의 이름이 큰 힘을 가지던 중세 때는 그것이 신의 진노나 자연의 화라고 생각한 일이 잦아 영험함을 빙자한 각종 엽기적인 치료법이 행해지곤 했다. 비로소 뇌전증이 뇌 신경세포의 일시적 흥분상태라는 것을 밝혀낸 이제야 그것은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답게 정신질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혹하게 다뤄지고 언제부터 배재됐는지 역사적인 흐름을 책에 담는다.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병동에 수용시키고 격리 시킨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바보'라고 불릴지언정 정신질환자들을 마을 공동체 밖으로 내쫓거나 어딘가에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제강점기에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정신병동들이 생긴 이후 정신질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재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현재의 우리들도 정신질환자들을 가끔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사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신체 일부가 아픈 것처럼 단지 '아픈' 사람들인데 말이다. 이런 우리의 인식이 사실은 일제의 잔재 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또 정신질환 치료법을 나열하며 업적에 눈이 먼 의사들을 비판하는 글도 인상 깊다. 환자들을 깊게 고려하지 않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 잔혹한 실험(!)들을 한 의사들이 노벨상을 받는 기막힌 사례도 있었고 선한 의도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추락시킨 수용정책에 관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더불어 정신질환의 경우 환자 스스로가 병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속 시원하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의학지식을 찾아가서 의사에게 혼나고 돌아온 내 모습이 떠오르며 말이다. 같은 의사이면서 의사 집단에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그의 용기가 대단했다.

 

 

 

탈 수용화, 병원이 아닌 공동체에서의 치료 그리고 고민


 

몸이 아픈 것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이 더 서러운 이유는 몸보다도 마음, 즉 정신이 아픈 것에 사회가 훨씬 각박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차가운 사회적인 시선과 그들을 사회에서 분리하는 방법 위주인 병원의 치료법들에 대해 통탄해한다.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에 그들을 '수용'하는 방식의 치료법이 사실은 그들의 사회활동을 막는 '격리'의 성격이 강하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그는 정신질환자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꿈꾸고, 직접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그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한다. '우리 동네'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지적장애인들과 정신질환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사업이 실패하고 빚만 지는 등 갖은 고생이 있었지만 마침내 '우리동네커피집'으로 빛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성공 뒤에는 그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그는 몇 번의 사업 실패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등으로 괴로워한다. 또 직원들 간의 갈등이나 약물 복용 등으로 인한 어려움 등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다름 아닌 '비장애인'의 차가운 시선이었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고 일하는 이들이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럼 그렇지' 하는 차별적인 시선들이 가장 괴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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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치 아담스> 스틸컷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 <패치 아담스>가 떠올랐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환자 중심적인 치료를 강행하고 병원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어 세간의 시선과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와 닮아 있었다. 그 속에서 <패치 아담스>의 주인공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하지만, 책의 저자 역시 많은 것을 잃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코 가치 없는 도전이 아니었음을, 아니 오히려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중한 발판이 되는 실패의 경험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꿈꾸는 나무 모자이크의 세상


 

 

획일화된 사회는

끔찍하고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다.

(276쪽)

 

 

그가 꿈꾸는 세상은 위의 한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비폭력적인 세상. 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폭력과 연관이 있는지 그는 영화 <위 캔 두 댓>을 예로 들며 이야기한다.

 

영화 <위 캔 두 댓>은 노동조합장인 주인공 '넬로'가 정신병원에 수감되다시피 한 환자들과 함께 마루 까는 일을 다룬다. 영화에서 그들이 깔던 마루의 나뭇판자가 부족해지자 버려져 쓸모없어 보이던 나무 조각들로 바닥을 메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마루가 형편없어 보일까 걱정하지만 도리어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이처럼 저자가 꿈꾸는 세상은, 버려진 줄 알았던 존재들이 모여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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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 캔 두 댓> 장면

 

 

수감된 것 같은 정신질환 환자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다는 저자 안병은의 열정과 이상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이 포근해 얼어붙은 마음들을 녹이는 힘이 있었다.  코로나 19로 마음까지 얼어붙은 연말연시 따뜻한 마음을 낼 수 있는 여유를 되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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