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게으름이라는 폭력 -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글 입력 2020.12.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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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개인이 구성한다. 사람이 아프면 치료받는 게 당연하며 이는 공동체를 통해 보장받아 마땅한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는 한국에선 의료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의료 민영화가 진행되는 국가와 비교해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혹은 무료로) 검사받고 치료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이 아픈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앞에 언급된 내용을 따르면 육체냐 정신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이 아픈 사람이니 당연히 공동체가 책임지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호는커녕 아프다는 사실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신과 의사 안병은의 에세이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의 메시지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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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게 아니라 아픈 겁니다.


 

책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장,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NGO 세계의심장 상임이사, 행복농장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안병은이 정신 질환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며 만난 사람들과 겪은 경험들에 관한 에세이다.

 

프롤로그 ‘마음껏 아파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부터 15장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꿈꾸다’까지 일관적으로 고수하는 태도는 단 하나다.

 

‘정신질환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에서 성장해왔는지를 고백한다. 미쳤다는 이유로 철창 안에 갇힌 여자를 본 경험, ‘언덕 위의 하얀 집’과 같은 표현으로 정신 병원을 조롱하며 놀았던 경험, ADHD를 안고 학창시절을 보낸 경험 등이 그러하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은 내게도 친숙한 단어다. 별 맥락 없이 상대가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아도 언덕 위의 하얀 집에나 가라고 놀리는 애들이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잊어버린 기억 중에선 내가 겪었거나 행했던 폭력의 흔적이 가득했다.

 

저자의 말대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의학과를 향한 편협한 시선이 많았다. 일반인에게 해를 가할 만큼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만이 정신과에 간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젠 심리적인 문제로 전문가와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당장 내 주변에도 불안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꾸준히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더 증가했다.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도 읽히지만,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병들어가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아픈 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가 건강할 리 없다. 공동체가 건강해지기 위해선 당연히 개개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 당연한 의무를 절대 분담하지 않는다. 그 어떤 안전망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은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책 속에서 더욱 고립되어 간다. 아픈 사람이 더 많아졌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중증 정신질환의 경우는 여전히 폭력적인 시선이 만연하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은 미디어에서 많이 묘사된 덕에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마음의 감기’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물론 감기처럼 가벼운 질병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중증 정신질환, 조현병의 경우 흉악 범죄에 같이 언급되면서 부정적인 시선에 공포감까지 더해졌다.

 

2019년 4월 17일 발생한 진주 방화 화재 사건은 불에 기름 붓는 격으로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더욱 심화시켰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9년에만 안인득이 주민들과 자주 갈등을 빚어 일곱 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이상 행동을 감지할 기회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예방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이 경찰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찰이 정신보건전문가는 아니기에 접수된 신고를 이웃 간의 갈등으로 여길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말대로 “(정신과적인 병력에 대한) 정보 열람권을 주지 않고 경찰한테 위험을 예견하라고 하는 것은 경찰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더 면밀히 살펴보고 정신보건전문요원에게 연계했어야 했다. 미흡한 정신과 응급입원체계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진주 방화 화재 사건은 한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안일함이 작용했는가를 보여준다.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안일함이 맞물려 사건이 발생했다. 병이 문제의 원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가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게으름이라는 폭력


 

책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입원 치료를 강하게 비판한다. 정신 병원이 수용소로써 치료가 아닌 격리의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지적했다. 그와 함께 지역 사회 전체가 정신질환자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의 우수한 사례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 사회는 집단에 섞이지 못하는 자를 싫어한다. 한 문제아가 집단에 혼란을 줄 때 평범한 다수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문제아 한 명을 격리하는 게 훨씬 간단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치원에서부터 직장에서까지 체제에 순응하는 법만을 배운다. 이는 명백한 나태다.

 

저자 안병은 의사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본분은 물론 정신질환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빨래방, 카페, 농사 등 생소한 분야에 수시로 뛰어든다. 거기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자료를 조사하고 해외의 정신질환자들도 일상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서 악한 소수가 아니라 게으른 다수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질환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절대 파격적인 주장이 아니다. 대다수가 공유하는 상식이다. 대상을 일반화하고 혐오하는 게 나쁘다는 것쯤은 모두가 안다. 우리도 저자만큼 선량하다. 중요한 건 행동으로 실천하느냐 마느냐이다. 저자처럼 여러 단체에서 활약하고 국가를 넘나들 만큼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고립되어가는 정신질환자들을 향해 한 번쯤은 눈길을 돌려봐야 한다는 말이다.

 

 

굳이 치료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공동체 자체에는 치료적인 힘이 있다.

 

-P. 301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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