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과 예술을 관통하는 보존의 미학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도서]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과학의 눈으로 읽다
글 입력 2020.12.1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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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전에 관람 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으나, 오랜만에 가는 미술관이라 그런지 그 과정이 하나도 번거롭지 않았다. 그렇게 미술관에서 전통 회화, 조소, 공예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그곳에 백남준 작가의 <덕수궁>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갔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다익선>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에게 백남준이라는 인물은 위인전에서만 보던 사람이었는데, 텔레비전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작품을 마주하니 그의 혼이 직접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설렜지만, 안타깝게도 텔레비전은 꺼져있었다. 수리를 위해 <덕수궁> 관람이 잠정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덕수궁.jpg

백남준, <덕수궁>
내가 방문했을 때는 화면이 꺼져있었다.

 


수명을 다한 듯 검은 화면만 드리우는 텔레비전들을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이 다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니, 작품의 영원한 보존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모니터만 최신 기술로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 LCD나 LED 등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질문은 던졌지만, 사실 나는 그 ‘최신 기술’을 잘 알지 못한다. 이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고등학교 내내 과학 공부를 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론인데, 물리 실험실 옆의 조그만 강의실에서 액정이 무엇인지, LED가 무엇인지 들었던 기억은 나는데, 정작 머리 안에 남는 것이 없다. 나는 불량 학생이었나 보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보존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관련 뉴스를 보던 중 ‘보존과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예술과 과학의 결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예술품을 보존하는 과정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런 나의 고정관념을 깨고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바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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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보존과학’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를 단순히 ‘보존’과 ‘과학’의 합성어라고 볼 수는 없다. 과학은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에는 법칙이 존재하고, 과학은 법칙을 따르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에 감정이 개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주관적이기에, 객관적인 과학의 세계에는 필요 없는 무언가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품의 탄생에는 감정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관객에게 감정의 전도가 이루어지도록 작품을 만든다.


그렇기에 보존과학자, 즉 보존가는 그저 작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 속에 숨겨진 감정의 층위를 파악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닌다. 보존가는 역사적 맥락에서 작품에 쌓인 서사를 파악하고 적당한 손길을 더한다. 보존과학이란 예술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고 지금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예술 행위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미술의 아름다움을 누리려면, 과학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

 

 

 

너무나도 예술적인 공간인 ‘미술관’이라는 곳에서 과학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현미경’과 ‘과학자’가 없는 미술관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 57p

 

 


이렇듯 이 책의 저자인 김은진 작가는 예술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비커를 만지는 것만이 과학자의 사명이 아니다. 우리 곁의 수많은 예술품에는 과학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예술품 복원의 이유를 설명하고, 복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원리 또한 정확하고 쉽게 설명한다. 보편적인 독자에게는 과학 이론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에 미술사 및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재밌게 풀어나간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미술의 세계가 이토록 경이로울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예술을 마주할 때 과학 원리만 무작정 적용한다면, 예술의 주관성은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작품의 보존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의 관점에서 깊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보존가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려면 그저 텔레비전의 모니터를 갈아 끼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르게 접근한다.


 

 

언제든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예술이라면, 애초에 작가가 고통스럽게 만들어 낸 창작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 128p

 

 


그렇다. ‘창작의 의미’가 가치를 잃는다면 보존 작업 또한 소용없는 일이 된다. 보존가는 작품의 외면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면까지도 보존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 중에서 보존가란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표현한다. 예술 작품 속에는 작가의 의도가 공존하기에, 보존가들은 예술품과 함께 작가의 고뇌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보존하는 인류의 예술은 오래도록 전달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보존가가 하는 일 및 과학과 예술과의 관계성이 나타난다. 많은 대중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이 분야를 잘 몰랐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많은 정보를 접하고, 또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분야를 알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미술관에 방문한다면, 이 모든 예술 작품에 보존가들의 유의미한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감사히 감상해야겠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 생각의힘

 

분야

교양과학

 

규격

140*215mm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1월 06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90955-03-4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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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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