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도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글 입력 2020.11.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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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는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인생의 의미에 버금갈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 이 높은 존중을 보여주는 증거는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에서, 예술의 생산과 전시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정부 정책에서,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예술 수호자들의 열망에서, 학문으로서 예술 이론의 상업과 상업 예술시장에서의 높은 가치 평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4p.

 


코로나로 인해 세계 곳곳이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 세계 각국은 설 곳을 잃어가는 문화예술 분야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관련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고 문화 정책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고심 중이다. 그만큼 문화 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인간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 준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코로나 이후에도 각 분야의 예술가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 간의 소통을 증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혼란과 불안의 시대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서점을 돌아다니다 이 책에 눈이 간 이유도 이런 생각과 닿아 있었다. 예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함이 생겨 자연스레 책을 펼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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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 <영혼의 미술관>은 예술이 인간과 사회에 주는 혜택을 설명하고 나아가 예술이 지니는 근본적인 가치를 논한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라는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예술작품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의 취약점을 보완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인간을 치유하는 예술


 

우리가 어떤 예술작품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특정한 회화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예술가의 작품, 정치적인 시사점을 전해주는 작품, 기존의 전통에 도전하는 전위적 작품 등 예술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실로 다양하다. 또 사회에서 이미 규정해놓은 틀 안에서 작품의 훌륭함을 판단하기도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시험에 늘 나오는 예술작품의 목록은 정해져 있었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서도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작품의 특징과 예술가의 이름을 달달 외우기에만 바빴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작품의 명성과 개인의 영혼을 움직이는 힘 사이에 놓인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해당 작품이 우리의 내적 필요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치유적 해석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예술 작품은 심리 치유에 도움이 되는 정도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지며, 우리가 특정 작품을 좋게 보는 이유는 그 작품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관점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인간의 일곱 가지 심리적 취약점은 망각, 희망의 소실, 존엄 추구, 자기 이해의 어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등이 있다. 모든 인간은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희망을 쉽게 잃어버리며 균형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새삼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괜찮다.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면서 이 취약점들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예술 작품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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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텐 쾨브케, <도세링엔에서 본 외스테르브로 경관>, 1838년

 

 

“아이는 난간에 기대어 있고, 실크해트를 쓴 남자는 돌돌 말린 돛의 아랫부분을 정비하는 친구글 지켜보고 있다. 여자들은 서로 뭔가를 이야기한다. 인생은 흐르고 있지만 드라마, 즉 결과에 대한 기대나 어디로 흘러간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는 지루함이나 허망함을 자아내는 조건이 아니며, 그림 속 풍경은 더없이 훌륭하게 느껴진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 그림에는 고요하게 표현된 존재의 기쁨이 가득하다. 이 그림은 인간성의 어떤 부분, 구체적인 말로 드러낼 수 없는 한 부분을 포착하고 있다.” - 43p.

 


위 작품은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서 예술이 지니는 가치를 설명해주는 사례 중 하나다. 저자는 사람마다 특정 그림이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림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나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미술, 소설, 영화들이 나라는 인간을 잘 설명해주는 ‘아트 오브제’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때로 몇 마디 말보다 어떤 음악 하나가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 음악이 주는 느낌이 우리의 깊은 내면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나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회를 치유하는 예술


 

'돈'과 '정치' 파트에서는 예술이 개인의 심리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 공공의 차원에서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주는 도구적 혜택을 실현하기 위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늘날 도덕적 가치를 저버리는 과도한 탐욕과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예술이 이를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를 찬양하며 사유재산을 극대화하기 바쁜 개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비평가들과 예술 투자가들의 역할을 주문한다.

 

비평가들은 자본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작품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평하며 대중의 취향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한 예술작품에 투자하며 후원하는 이들은 명예와 명성을 신경 쓰기보다 실질적으로 사회에 이익이 되는 ‘진보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예술은 주기적으로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대중을 통치하고 선동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20세기 초 파시즘과 나치즘의 정치선전 양상은 민주주의가 실현된 현재에도 가짜뉴스, 포퓰리즘의 형태로 이어져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한다.

 

저자는 “올바른 정치 미술은 사회의 맥박을 감지하고, 집단 생활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그 문제들을 날카로운 지성으로 분석하고, 선택한 예술 매체에 최상의 기술과 혼을 담아 관람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전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



 
“인간과 예술의 교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궁극적인 야망은 예술의 가치들을 세속에서 실현시키는 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 225p
 


혹자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논할 때 예술의 도구적 가치로의 전락을 우려한다. 이들이 자주 쓰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표현은 예술이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명확히 거부하고, 예술을 신비화하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적 영향과 같은 예술의 도구적 목적을 배제하고 작품만을 연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에서 귀중하고 그래서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가치를 발견했다면, 그 이후에는 격리된 미술관에서 벗어나 그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하며 결론을 맺는다.


*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나는 예술 분야의 도서를 의식적으로 기피하는 편이다. 보통의 예술 분야 책들은 '어느 시대에 창작됐으며 무슨 기법이 사용된 작품'이라는 식의 설명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은데,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 나는 그러한 책들을 온전히 소화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며 예술이 인간성을 보완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이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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