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풍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담는다는 건 - TOWARDS 展 [시각예술]

김보희 화백 초대전
글 입력 2020.07.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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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를 하는 입장에서 누군가 내게 어떤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지 묻는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어느 특정 시기에 겪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보다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주제들도 내게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다. 가령 지금 내가 머무는 곳, 쉬는 날 내가 하는 것, 좋아하는 장소와 같은 주제도 어쩐지 어느 영화나 책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때보다 작업 속도는 느려지고, 더 이어가지 못하고 삭제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쉽게 쓸 수 있는 글은 없고,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데도 오래 걸리긴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주제는 내게 더없이 풀어내기 어려웠다. 막연히 어렵다는 이 생각의 중심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던 공간과 시간을, 당시 마음을 글로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오히려 안 하는 것만 못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어쩐지 글을 쓰면 쓸수록 더 선명하게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머무른 공간과 보낸 시간, 그리고 삶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내 마음에 부러움과 동시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삶을 바라보는, 나와는 다른 관점과 표현 방법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보고 싶은 것, 보여 주고 싶은 것, 있게 하고 싶은 것, 같이 즐기고 싶은 것만 그렸다”라는 김보희 화백의 “TOWARDS" 전시회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눈으로 보고, 상상한 것을 그 만의 화풍으로 풀어낸 그림들을 다시 내 눈으로 담았던 시간. 7월 12일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막을 내린 후 시간이 꽤 지났지만, 당시 전시를 관람하며 느꼈던 감상을 이번 오피니언에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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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선 줄을 본 순간 설마, 하면서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금호미술관을 자주 들렀던 것은 아니지만, 전시를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며 대기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술관 측에서 방역에 더 신경을 써서 관객들이 입장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이런 시국에도 사람들이 해당 전시회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보희 화백은 50여 년간 자연을 소재로 동양화를 그려왔으며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주로 캔버스에 한국화 물감(분채)을 사용했다.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화백은 제주에 정착했고 자연스레 제주의 풍경은 그의 캔버스에 옮겨졌다. 자연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화백의 작품을 보며 어떤 이들은 호크니를 언급하기도 한다.
 
40분 정도 기다린 후, 드디어 미술관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손을 소독하고, 인적 사항을 작성하고 미술관의 문을 넘은 후에도 앞 사람과 거리를 두고 다시 줄이 이어진다. 표를 들고 입장하기 직전, 또 다른 직원이 내게 3층, 2층, 지하 1층, 마지막으로 1층 순으로 관람하라고 안내했다. 관람객들이 한 전시관에서 몰리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 다른 동선으로 안내한 것 같았는데 미술관으로서 최선의 조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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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들어서자 바다를 그린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맑은 하늘 아래 바다의 풍경은 같은 장소의 것인 듯하다가도 또 완전히 다른 곳인 듯한 감상을 준다.

 

바다보다 더 푸른 하늘 아래 백사장이 펼쳐진 그림과 세상에 하늘과 바다만 있는 듯한 그림을 보며 현실에서는 가지 못하는 공간을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푸르다, 파랗다는 형용사로만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하늘과 바다를 담은 그림들을 바라보다 옆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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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전시관에는 27개의 컨버스가 모여 가로 15m에 달하는 크기인 작품, The Days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크기에 압도된 채, 나는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 김보희 화백이 3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그림은 우거진 숲속의 풍경이 담겨 있다.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하늘 아래, 수풀 너머에는 바다가 보이며 새와 거북이 그리고 벌레도 각자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 그림에 자리한 것들을 세세하게 눈에 담아보는데, 어쩐지 어색하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그림 속 어디에도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 그렇게 느꼈나 보다. 화백은 작품에 사람의 부재를 가리켜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여섯 번째 날 만든 사람으로 인해 세상은 지저분해지지 않았나. 사람은 빼고 대신 원숭이를 넣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내가 보기에도 그림 속의 세상은 더 청량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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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꽃과 야자수의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3층 전시관의 작품들이 싱그럽고 청량한 분위기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면, 2층의 작품들은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가 담긴 듯했다.
 
노을빛이 덮은 하늘 아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그 옆에 자리한 야자수. 어쩐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 떠오르는, 캔버스 속 풍경은 어느 외국의 장소를 배경으로 했나 싶은 감상을 준다. 미국 어느 해변 도시의 풍경일까 싶었지만, 전시회 이후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그림 속 풍경이 다름 아닌 화백이 거주하면서 매일 산책하는 제주도 중문 단지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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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할 때 안내받은 대로 1층 전시관을 지나 지하 1층으로 먼저 향했다. 다시 꽃과 열매, 씨앗을 담은 그림들이 보인다. 그러나 2층에 전시된 그림과는 달리 익숙하면서도 상상 속의 것인 듯한 모습인 꽃과 열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충만한 생명력을 표현한 듯하다. 실제로 화백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상상 속 씨앗을 그린 그림도 있다고 말하며 씨앗 속에 담긴 수많은 생명의 에너지에서 대단함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삶과 생명을 담은 그림들을 바라보다가, 유독 한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다. Self Portrait라는 제목으로 만개한 꽃, 시들어진 꽃술, 그리고 씨앗을 한 프레임에 담은 그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모두 조명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닐까 싶었고, 동시에 어떤 마음으로 그려진 작품인지 궁금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찾아본 다른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화백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김보희 화백은 "늙는다는 것은 자랑스럽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생의 시간대 각각의 아름다움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젊음을 부러워 할 것도 없고, 늙음을 서러워 할 것도 없는, 모든 순간이 결국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었던 한 생애의 모습.
 
지하 1층의 전시회관에 소개된 작품들은 어쩐지 시간과 생의 흐름에 대한, 화백의 생각이 담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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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층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정면의 벽에 걸린 The Terrace가 관객을 맞이한다. The Terrace는 김보희 화백이 자신의 제주도 집 정원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린 것으로, 바다와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공간에 반려견과 함께하는 평온한 한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화백의 집 정원 풍경이라지만, 누군가의 현실 속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이상 속의 세계 일부인 것 같았다. 미술계 인사들도 작품을 가리켜 현실에서 출발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마무리한, 현실의 풍경에서 시작했으나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것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이라고 평한 바 있다.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을 바라보며 나도 잠시 화백이 그려낸 세계 속에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
 
전시회를 관람한 후, 내가 아는 어느 화가와 전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회 속 그림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상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자신도 집 근처에 있는 개천을 매일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지금 사는 곳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장소인데,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집 주변 산책로인 그곳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계속 남겨보고 싶다는 것이다.
 
어쩐지 우리는, 삶 속의 일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김보희 화백의 작품을 통해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각자의 삶의 색을 더 또렷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작은 조언을 얻은 듯하다. 그이의 풍경도, 나의 풍경도 각자의 작업에서 더없이 푸르른 편안함이 담길 수 있기를,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한 자락을 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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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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