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빛바랜 시절을 추억하는 어떤 이의 편지: 조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음반]

희미한 그 세월은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네
글 입력 2020.07.19 02: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밤, 사랑, 세상, 시간, 꿈 또는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필요가 없다. 조월의 음악 장르가 무엇이다, 하고 말하는 것도 의미 없다. 오히려 말하려는 순간에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있다. 지금 내가 시도하려는 것처럼."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앨범 소개글

 


[Profile] 조월.png

 

 

조월의 노래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허공을 부유하는 몽롱한 목소리와 몽환적인 분위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몇 차례 곱씹어 듣고 난 후 깨달았다. 그건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지독하게 사랑하는 어떤 이의 고백이었다.

 

절망과 체념의 밑바닥을 맛본 자의 음악은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힘든 순간마다 그의 음악을 습관처럼 꺼내 들었다. 담담해서 더 슬펐고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조월은 밴드 '모임 별(Byul.org)'과 슈게이징 밴드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는 몇 장의 솔로 정규 앨범과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여러 EP를 발매하기도 했다.

 

실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드는 그는 얼마 전 새로운 솔로 앨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Cover] 조월_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jpg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조월 (2020)


 

젊은 날에 나는 당신을 알았던가

그때에 우리는 서로를 또 어떻게 불렀던가

너도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겠지

청춘이 너를 뜻하던 때도 언젠가 있었는데

어제 나는 어리고 낯선 사내의 꿈을 꾸었네

우린 오늘도 함께 어둡고 깊은 산길을

 

'악연' 中

 

 

그의 이름 속 '월'이 '달 월(月)'인 것처럼, 그의 음악은 밤의 결을 닮았다. 세상이 차분히 잠든 저녁과 캄캄한 새벽의 풍경을 노래한다. 앨범은 바흐의 자장가 선율로 시작된다. 원곡과 달리 미묘하게 비틀어진 선율은 낯설지만 이상스레 따스함이 배어있다.

 

음악 전반을 관통하는 차가운 전자악기 소리에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잘 들리지 않는 모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의 마음이 들려온다. 진심을 빼곡히 눌러 담은 가사는 마치 시 한 편 같다. 담담한 고백은 자꾸 마음 어딘가를 울렸다.

 

 

 

 

수록곡 '온도시가불타는꿈'에서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고, 'The Future Was Beautiful'은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의 풍경을 떠오르게 했다.

 

'평서문'에는 미처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고백하는 이의 그리움이 담겨있었고, 이어지는 트랙 '악연'은 슬픈 소설과 꼭 닮아있었다.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은 곡이 전개될수록 눈부시게 타올랐다.

 

수록곡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트랙은 '어느새'인데, 이 곡이야말로 그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14년 녹음되었던 이 곡은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의 보컬 연진이 키보드로 참여했다.

 

초반부엔 다정한 멜로디로 조용히 속삭이다가 후반부로 향해가며 찬란하게 폭발한다. 눈물이 고일 만큼 처연하게 아름답다. 듣는 내내 그저 아름답다는 말만 입가에 맴돈다.

 

 

 

 

이 사랑은 언제였어도

이렇게 되었겠지

희미한 그 세월은

아무것도 기념하질 않네

이야기가 노래가

하나 남은 것이 없어

무덤 같은 집을 짓고

예언 같은 꿈을 꾸며

눈 위로 그림자만 밟고 가는 사람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中

 

 

이번 앨범에 새롭게 수록된 마지막 트랙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은 마치 '어느새'의 후속곡 같다.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의 담백한 피아노로 시작되는 이 곡에서 조월의 목소리는 유독 깊고 짙다. 그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다며 담담히 노래한다. 서로가 함께한 순간과 소중했던 기억은 모두 빛바랜 시절이 되었다.

 

세상 모든 건 영원하지 않다. 삶은 마치 찰나처럼 흘러가고, 영원할 것만 같던 기억도 언젠가는 새까맣게 사라진다. 없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기억이 생을 다하기 전까지 소중히 간직하는 수밖에 없을 테다. 세월의 흐름 속에 야속하게 잊혀지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오늘도 과거가 된 마음을 추억한다.

 

앨범을 찬찬히 듣고 나니 긴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고요하고 담담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곳엔 더없이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시선이 닿는 자리에 여전히 서 있었다.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조월(Jowall)

 

 

1 Wiegenlied (Guten Abend, Guten Nacht)

 

2 어느새

 

3 온도시가불타는꿈

 

4 The Future Was Beautiful

 

5 평서문

 

6 악연

 

7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

 

발매 : 2020.06.23

 

기획사 : 만선

 

발매사 : MO records

 

 

 

PRESS 임정은.jpg

 


[임정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