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피노키오를 찾아서 - My Dear 피노키오전

글 입력 2020.07.0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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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노키오’하면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른다.

 

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니던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거라는 연락이 왔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윽고 노란 버스 한 대가 언덕을 올라왔다. 잠시 후, 산타 분장을 한 선생님들이 내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나와 동생도 선물을 받았다. ‘피노키오’는 바로 그때 선물 받은 동화책이었다.

 

한편 같이 갔던 내 동생은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았다. 그것도 손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가 아니라 무선 리모컨으로 조종이 가능한 자동차를 말이다. 어린 나에게 동생이 받은 장난감 자동차가 더 근사한 선물처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선 RC카와 동화책이라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데 나만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물이 마음에 드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벌써 저만치서 집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선물 받은 책을 읽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동생을 곁눈질로 보며 부럽고 아쉬운 마음을 꾹 참았다. 그리고 그때 그 기억과 감정이 내게는 퍽 강렬했나 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그때 보았던 동화책의 그림들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동화책 속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보며 나는 마치 나도 피노키오가 된 것 같았다. 서운한 마음을 끌어안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아이. 나는 코가 길어지진 않았지만 대신 뱃속이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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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살아 움직이게 된 나무인형의 이야기. 어렸을 적에 동화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피노키오>는 아마 한 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아니, 설령 동화를 읽지 않았더라도 사고뭉치에다가 거짓말쟁이인 이 나무인형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작가인 카를로 콜로디가 어린이 신문에 연재했던 이야기를 모아 1883년에 발표한 작품인 <피노키오의 모험>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을 통해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정직함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서 현재까지 약 3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에서 8천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현재는 책을 넘어 다양한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애니메이션, 영화, 뮤지컬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새로운 전시가 우리의 곁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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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는 2020년 6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My Dear 피노키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원작자인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 관련 희귀 빈티지 도서와 신비로운 오브제트들을 세계 유수의 작가들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해석한 피노키오 작품 173여 점과 함께 공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로베르토 인토첸티를 비롯하여 앤서니 브라운, 마우리치오 콰렐로 등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들뿐만 아니라 루카 카이미, 이브 샤르네, 알레산드로 산나 등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만나볼 수가 있다. 국내에서도 민경아, 조민서 작가 등이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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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우리치오 콰렐로, 로렌조 마토니, 민경아, 루카 카이미 작가의 작품)

 

 

이탈리아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마우리치오 콰렐로는 피노키오를 두고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1923년부터 1943년 사이의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시대가 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가장 적합하다 생각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그린 피노키오의 장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음습하고 우울해 보인다.

 

피노키오가 길을 가다가 여우와 고양이를 만난 장면은 흡사 냉전 시대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페토 할아버지도 콰렐로의 그림 속에선 괴팍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나마 우리의 주인공 피노키오는 동글동글한 모습이 귀엽지만, 눈동자가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아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로렌조 마토니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피노키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화려한 색감과 강렬한 명암 대비를 통해 피노키오를 표현했다. 특히 마토니가 그린 피노키오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난히 코가 길고 뾰족하며 인형이라기보단 일종의 조각상 같다. 그래서인지 마토니가 그린 피노키오는 만화처럼 익살스럽고 코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세계 속에 온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일러스트 외에도 작가들이 피노키오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녹여낸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아틸리아 출신의 작가 루카 카이미는 피노키오의 무대를 바닷속으로 가져왔다. 그녀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닷속 생물들로 탈바꿈 시켜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재창조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전체적인 톤은 마치 바다처럼 축축하고 차갑다. 동시에 몽환적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는 기다란 뿔 같은 송곳니를 지닌 일각고래로 표현했다. 서커스 단장, 요정, 제페토 할아버지 같은 인물들도 모두 바닷속 물고기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덕분에 피노키오가 아닌 새로운 동화 한 편을 보고 온 느낌이다. 아니면 내가 바다와 고래라는 꿈을 꿨거나.

 

우리나라의 민경아 작가는 ‘거짓의 상징으로 피노키오의 코를 간주하지만, 피노키오의 코만큼 솔직한 코가 없다’라는 말과 함께 아예 피노키오의 코를 모티브로 삼아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탈들의 코를 마치 피노키오처럼 길게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다비드 상’ 같은 유명한 예술 작품에도 피노키의 코를 결합하는 신선한 시도를 해보였다. 하긴 사람들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예술 앞에서는 너도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게 되니 피노키오의 솔직한 코라는 점에서 그녀의 이런 시도가 꼭 낯설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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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4명의 작품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가 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피노키오 삽화는 눈이 내린 시골마을 같아 서정적이고 정겹다. 안토니오 사우라는 마치 피카소가 그린 것처럼 독특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만의 피노키오를 소개한다.

 

우고 네스폴로의 피노키오 작품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같다. 개인적으로는 알렉산드로 산나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최초의 나무일 것이다. 나무에 번개가 내려치고 나뭇가지가 떨어져 나간다. 그 가지는 생기를 얻어 작은 다리로 스스로 걸어 세상을 만나러 나아간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그림은 한 편의 신화를 보는 것 같다.

 

이번 My Dear 피노키오전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그들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면서 나 역시도 불현듯 ‘나의 피노키오’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서운함과 그것을 감춘 거짓말을 떠올린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피노키오를 두고서 이런 말을 했다. “나무토막으로부터 학교에 다닐 즈음의 나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유아기를 지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그렇게 곧바로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우리는 모두 제대로 된 준비 과정 없이 세상 속으로 던져진다. 어느 새 어른이 되어버리더니 미처 어른의 삶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세상 밖으로 나선다. 느닷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매순간 준비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갑자기 닥쳐오는 삶의 어느 순간은 모든 준비 과정이 무색하게 우리를 쉽게 무너뜨린다.

 

그럴 때 거짓말은 말랑말랑한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 주는 딱딱한 갑옷이 되어준다. 효과적인 회피책이 되어준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서운한 마음을 숨기고 의젓한 형으로 남기 위해 선물이 마음에 든다며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잠시 시간을 벌어다 줄 뿐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때로는 정직하게 맞서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벗어던진 우리에게, 맨몸의 우리를 무엇이 갑옷이 되어 보호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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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사람. 우리 주변의 사람이다.

 

동화 속에서 피노키오는 순간순간 즉석에서 만들어낸 거짓말을 통해 자신에게 들이닥친 상황을 외면하고 회피한다. 요정은 그런 그에게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마법을 걸어버렸다. 덕분에 피노키오는 좋든 싫든 간에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대신 거짓말이라는 갑옷을 잃어버린 피노키오를 제페토 할아버지와 귀뚜라미, 요정이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다시 말해 피노키오는 단순히 정직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동화가 아니다. 거짓말을 통해 불안한 세상을 회피하던 나무인형(피노키오)이 주변의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발판 삼아 이제껏 외면해왔던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순간 피노키오의 몸을 이루던 딱딱한 나무는 말랑말랑한 살이 되어 그는 그토록 원하던 인간 아이가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발견한 ‘나의 피노키오’다. 지금 나의 나무인형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언덕에서 웃으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당신에게 물을 차례다. 당신의 피노키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혹시 아직 모르겠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신의 피노키오를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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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ear 피노키오전

- Pinocchio Art Exhibition -

 

 

일자 : 2020.06.26 ~ 2020.10.04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3층

 

티켓가격

일반 : 15,000원

청소년 : 13,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최

㈜아트센터이다

 

후원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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