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의자上

심미와 실용
글 입력 2020.07.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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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완성본.jpg

한승민 (Han Seung Min)

의자(Chair)

87*39.5(cm)

나무

2020

 

 

이 의자는 여느 한국의 가정집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오래된 의자였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엉덩이가 닿는 가죽 부분이 다 찢어져 속의 스펀지가 말라 가루처럼 부서지는 수준으로 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더 이상 못쓰겠다며 갖다가 버리겠다고 한 걸, 제가 가죽을 갈아 끼워 보겠다며 방으로 끌고 와서 분해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의자 한번 천갈이 성공을 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 있는 상태여서 무작정 진행했습니다.)

 

 

 

과정 사진



의자 완성2.jpg

 

형태가 무너지는 과정.

 

 

의자의 주요 기능인 앉는 기능이 사라지고 나자, 그냥 형태 자체에 집중하게 되며 그만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처음엔 미적일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미적 요소들도 실용성, 필요성이 극한으로 끌어올려졌을 때 자연스레 발휘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결국 모든 실용성 또한 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앉아야 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네 개의 다리와 등받이가 되기 위해 붙은 두 개의 긴 나무도 결국에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습니다.

 

 

 

세부 사진


 

 

의자 낡음.jpg

너무 낡아서 손이 다칠까 봐

사포로 긁어내려다 힘들어서 포기한 흔적들.

그래도 나름의 멋이 생겼다.

 

 

이 의자는 더는 앉을 수는 없습니다. 앉음의 기능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쓰려고 하면 언제나 사용할 수는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20200703_162423.jpg

요즘엔 주방의 한편에 두고

작품들을 쌓아둬 말리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의자를 더 나은 의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방에서 샌딩 기를 쓸 순 없어 손으로 일일이 한 사포질은 팔이 아파 하다말아 어설퍼 보이기만 했습니다. 또한 처음엔 남겨둘 계획이었던 등받이와 몇 개의 부속품들은 험하고 어리숙한 제 솜씨와 세월로 인해 가차 없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계획대로 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막상 완성품을 보자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작품은 늘 이런 식입니다. 인생도 늘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계획과는 다른 이상한 길로 빠지고 사람 진 빠지게 하는 성장을 몇 번 하고 나면 생각보다 근사한 것이 늘 저를 놀라게 해줍니다.

 

그래서 계속하고, 계속 사는 것 같습니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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