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민 (Han Seung Min)
의자(Chair)
87*39.5(cm)
나무
2020
이 의자는 여느 한국의 가정집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오래된 의자였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엉덩이가 닿는 가죽 부분이 다 찢어져 속의 스펀지가 말라 가루처럼 부서지는 수준으로 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더 이상 못쓰겠다며 갖다가 버리겠다고 한 걸, 제가 가죽을 갈아 끼워 보겠다며 방으로 끌고 와서 분해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의자 한번 천갈이 성공을 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 있는 상태여서 무작정 진행했습니다.)
과정 사진
형태가 무너지는 과정.
의자의 주요 기능인 앉는 기능이 사라지고 나자, 그냥 형태 자체에 집중하게 되며 그만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처음엔 미적일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미적 요소들도 실용성, 필요성이 극한으로 끌어올려졌을 때 자연스레 발휘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결국 모든 실용성 또한 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앉아야 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네 개의 다리와 등받이가 되기 위해 붙은 두 개의 긴 나무도 결국에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습니다.
세부 사진
너무 낡아서 손이 다칠까 봐
사포로 긁어내려다 힘들어서 포기한 흔적들.
그래도 나름의 멋이 생겼다.
이 의자는 더는 앉을 수는 없습니다. 앉음의 기능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쓰려고 하면 언제나 사용할 수는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요즘엔 주방의 한편에 두고
작품들을 쌓아둬 말리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의자를 더 나은 의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방에서 샌딩 기를 쓸 순 없어 손으로 일일이 한 사포질은 팔이 아파 하다말아 어설퍼 보이기만 했습니다. 또한 처음엔 남겨둘 계획이었던 등받이와 몇 개의 부속품들은 험하고 어리숙한 제 솜씨와 세월로 인해 가차 없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계획대로 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막상 완성품을 보자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작품은 늘 이런 식입니다. 인생도 늘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계획과는 다른 이상한 길로 빠지고 사람 진 빠지게 하는 성장을 몇 번 하고 나면 생각보다 근사한 것이 늘 저를 놀라게 해줍니다.
그래서 계속하고, 계속 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