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소한 것에 반응하기 [사람]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의 나열
글 입력 2020.05.2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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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의미를 따지지 않으며, 그냥 살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삶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지 않으며 인생을 즐긴다.”


≪영원과 하루≫ 한스 크루파

 

 

지금 이 순간만을 온전히 즐긴다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쉬운 일이겠지만, 생각이 많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일련의 행위를 행복과 관련지으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행복은 인생의 ‘최종’ 목적까지 될 수 있으면서도, 가끔은 우선순위에 밀려 기꺼이 불행을 감내해야 할, 그래서 그 크기조차 명확히 가늠할 수 없는 가장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소확행을 찾으면서도 더 큰 행복을 위해 매일 고통을 감내해왔던 것 같다. 지금 당장 어느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면 곧 쓰러질 것만 같아 어떻게든 찾아내면서도 당장 눈앞에 놓인, 미래를 대변하는 것들에 괴로워했달까. 그러다 문득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이유로 고통스러워 했던 날, 뭉친 어깨를 풀어보려 고개를 위로 들었을 때 두 눈을 꽉 채우던 하늘이 나의 행복을 정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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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것이 곧 행복임을 인지한다. 어떠한 잡념도 들지 않고 그 순간만을 진정 만끽하며 머물 수 있을 때. 하다못해 너무 예쁜 꽃을 봐도 예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몰입했을 때. 아주 간단히 좋다, 나쁘다는 양극의 표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결국에는 아주 작디작은 것들이 모여 내 삶을 생동감 넘치게 하였고, 아주 지독한 상황에서도 나를 기꺼이 지탱해주었던 것이었다.


 

 

시각으론 하늘을, 촉각으론 바람을


 

매일을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오늘이 며칠인지 또 무슨 요일인지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10대 때는 대학생활을, 20대 때는 취업을, 이뤄내면 얻을 감히 예상할 수도 없는 행복의 양을 기대하며 정신없이 뛰다가도 잠시 멈춰본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기분을 애써 무시한 채 강제로 바람을 맞는다. 그리고 고개는 90도로 꺾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것이 낮이든 밤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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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면 가끔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낮에는 한 번도 같은 모양인 적이 없던 구름을 살피고, 낮과 밤사이에는 다양한 색으로 저무는 해를 눈이 멀 때까지 바라본다.


가장 깊게 빠져들 때는 밤의 하늘이다.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온통 회색으로 채워져 있다가도, 달과 별이 뚜렷하게 다 보이는 날에는 이제야 숨을 쉴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호흡해본다.

 

자정이 지난 시각에 귀가할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지독하게 깊은 밤하늘은 남색과 검은색의 혼합으로, 분명 어두운색인데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매번 목격하는 같은 채도의 색일지라도 그 날의 내 감정에 따라 다르게 체감된다. 해야 할 일들을 다 해치우고 난 후 뿌듯함과 해방감으로 귀가할 때 바라본 하늘과 솔솔부는 바람은 나를 위로하고 칭찬해주는 것 같다가도, 찝찝함을 안은 채 귀가하는 하늘과 매서운 바람은 곧 나를 삼켜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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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지만 나를 내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던 내내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자고 싶다 생각이 들더라도, 역에서 내린 순간 멍하니 멈춰서 시각과 촉각을 내어준다. 그리고 내가 아직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생각의 표현수단, 주로 대화와 글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거쳐야만 전해지는 소통 또한 많아진다. 매번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필연적으로 소통의 수가늘어날수록 진심의 농축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과 주고받는 대화에 몰두한다.


그 대화의 주제가 현실의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과의 연결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신기하게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어느 하나 중첩되는 것이 없다. 미세하게나마 달라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나는 사랑한다.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과 각종 변수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100% 이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이렇듯 글을 애용한다. 상대방을 배려했던 약간의 위선도 없이, 하지만 정말 세심히 적어 내려간다. 이를 공개할지 간직할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말로는 풀어내기 힘들었던 감정들을 키보드로, 펜으로 꾸역꾸역 적으며 금세 빠져든다.

 

이를 포함해 수 없이 자잘한 행복들이 내 삶에 놓여있다. 마감의 압박 끝에야 보이는 출력이라는 글자, 졸음을 깨지 못한 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첫 모금,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향내, 거리 곳곳에 심겨 있는 혹은 오직 나만을 위한 꽃, 보는 순간 감탄으로 자동 반응되는 서울의 야경. 매 순간의 분위기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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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말하자면, 소용돌이 같은 삶은 사는 필자에게 가장 필요하고 집착하는 것은 몰입 후에 오는 ‘안정’인 듯하다. 이런 사소한 것에 빠져들고 1초라도 안정감을 되찾는 순간 비로소 양(+)도 음(-)도 아닌 상태, 즉 행복이란 걸 이해하기 시작한다. 불행의 여집합이 모두 행복의 흔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훗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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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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