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캐릭터의 홀로 서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1.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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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보고 싸운 커플 많대!” 내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다고 말하자 마자 들은 첫 번째 소리이다. 싸움은 논의할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표상이다. 서적의 단계에서 많은 논란을 끌어들였고, 영화의 단계에서 또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서적의 평가로는 배척이, 영화에서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리는 보았다.

 


82년생 김지영 3개국.jpg



“너희들 괜찮아? 경찰 불러줄까?” 디즈니 사의 ‘주먹왕랄프2(2018)’에서 ‘바넬로피’가 공주들에게 한 말이다. 공주들이 납치, 감금, 저주, 독살 등을 공주의 필수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인데, ‘백설공주’가 1937년에 개봉한 것을 고려해본다면 어느 정도 문제의식이 부재함을 납득이 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2018년, 바넬로피의 대사는 그 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리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디즈니 사가 본격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공주들을 창조한 시점이다. 첫 공주들을 살펴보면 여지없이 하얀 피부와 얇은 허리가 필수인 이들이 백마를 기다린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맥락은 엄마가 없이 자랐다는 것으로 합리화한다.

 

결국 소비자들만이 예상가능한 왕자의 도움을, 실제로 그들에게는 무기한이었을 기다림만이 하는 행동의 전부이다. 여자인 엄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험에 처했고, 남자인 왕자들은 시대상에서 요구하는 예쁜 얼굴을 갖기 위해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공주들을 소유하게 되는 그림으로 해피엔딩이 완성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1.jpg


 

1990년대의 디즈니는 ‘알라딘’, ‘포카혼타스’, ‘뮬란’을 차례대로 내놓으면서 하얀 피부의 공주들을 탈피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뮬란을 기점으로 점점 진취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캐릭터들이 ‘공주’라는 타이틀을 벗었고, 결국, ‘겨울왕국(2013)’의 엘사는 ‘왕’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연이어서, 모아나(2016)는 전통적인 미인상과 체형을 벗어났고, 거대문화를 벗어난 사모아-하와이 등의 전통문화를 융합해 녹여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조금 갑작스러웠다. 디즈니코리아가 내놓은 모아나의 포스터는 본래의 것과 조금 달랐다. 주인공들의 피부색을 바꾼 화이트워싱(White Washing: 미국 할리우드에서 백인이 아닌 캐릭터임에도 무조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행태)이 일어났다. 이것은 한국에서 이례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아직까지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남성캐릭터에 비해 여성캐릭터가 더 하얗게 변모했음 역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만약 여성이 남성보다 피부색이 밝다는 현실을 반영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원인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살펴야 한다. 원인 하나, 여성이 주로 해야 하는 피부관리 및 화장에 녹아 있는 하얀 피부에 대한 미적 우상화. 원인 하나, 야외활동에 우선시되어 비교적 장시간 햇빛에 노출되는 남성. 이외에도 또 다른 견해가 충분히 어딘가에서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찰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서 디즈니코리아의 행보에 마땅한 수정을 요구했다. 보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한국사회 내에서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의식이 투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미흡했다.

 


모아나 1.jpg

 

 

겨울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겨울왕국도 곧 새로운 눈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엘사는 마른 팔다리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 그리고 희디 흰 피부를 가지고 있다. 여러 업무로 바쁜 왕의 자리에서마저 혹은 다급하게 도망치는 그 순간까지도 망가지지 않는 꼼꼼한 메이크업과 머리장식까지 마쳤다. 직장을 가진 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런 모습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디즈니글로벌이 아직도 이런 여성캐릭터를 주연으로 내세우는 것은 최대한 많은 소비자를 이야기로 유인하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모든 종류의 불편함을 한 번에 지우지 못하는 진행과정에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매 작품이 지날수록 미의 기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탈선하고 있는 남성캐릭터들의 모습은 또 따로 논의해야 함이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한 여성상이 아직까지 누군가에게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디즈니글로벌은 주류의 변화에 맞게 상업적기업과 사회적책무 사이에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 여전히 영어를 구사하는 디즈니의 모든 영화 캐릭터들이 보인다. 특히 ‘모아나’에서 캐릭터 이름은 사모아언어로 작명 되었지만 성우는 여전히 백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빛을 비추어야 하는 장면들은 곳곳에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눈에서 각 장면들의 명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적절한 속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겨울왕국 1.jpg

 

 

“너는 어떤 종류의 공주니?” 주먹왕랄프2(2018)에서 공주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넬로피를 위험요소로 판단한 공주들은 직접 공격을 시도한다. 남성 캐릭터와의 연결요소가 되었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무기가 되었다. 모든 변화는 점진적이다. 특별히 의식의 경우에는 더욱 더디다. 유리구두는 항상 누군가, 신데렐라에게 신겨줘야만 했고, 작고 고운 발을 가지고 있는 신데렐라의 가장 큰 특징을 표현했다. 그런 신데렐라가 구두를 자신의 손에 들기까지 60여년이 걸렸다. 신데렐라가 그동안 스크린 밖에서 무슨 일을 겪어왔는지, 생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한 번 즈음 물어볼 때가 2019년, 2020년이다.

 

  

랄프 1.jpg

 

 

‘김지영’ 이전에 디즈니 사의 ‘엘사’와 ‘모아나’가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ㅡ당사자 외에는 각 사건에 대해 무의식을 지니고 있는ㅡ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한 이야기의 스토리라인으로 모든 것을 구성하기를 목표로 하는 것보다는 많은 목소리가, 다양한 이야기를, 꾸준하게,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장벽을 낮추어 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책 ‘82년생 김지영’보다 많은 시각의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장벽을 낮춰 문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약간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준 것은 특히 결말의 변화라고 점쳐본다. 김지영씨를 상담해주던 의사가 임신휴직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자 간호사를 뽑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모습, 마트 캐셔 일을 하게 되는 김지영씨의 모습,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커피를 마시다가 ‘맘충(영어 Mom:엄마와 한자 벌레 충:蟲의 합성어로 주변에 피해를 준다고 느끼는 아기엄마를 비하하는 말)’소리를 듣고 충격 받은 김지영씨의 모습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선사했을 수도 있는 책의 결말이 영화에서는 해피(라고 부를 수 있는)엔딩이 되었다.

 


김지영 1.jpg

 

 

2016년 발간된 서적에서 2019년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사회적 의식이 고양되는 시간을 분명히 거쳤다. 지금이기에 ‘82년생김지영’이 상업영화로 여성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영화화는 더욱 의미와 상징성을 가진다. 즉,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해당 문화를 소비하고자 하는 주체자가 점차 모일 때, 문화 또한 생산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배척에서 싸움으로, 싸움에서 논의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서, 시점에서, 시간에서, 타인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비교해 볼 수 있는 문화경험은 누군가의 현실이자 당면과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며, 자신과 타인을 더 풍부하고 찬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논란이 아니라 논의다. 이렇게 시끄러움이 우리가 김지영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는 ‘신데렐라의 열두시를 울리는 시계소리’의 새로운 모습이다.

 


김지영 2.jpg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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