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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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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2025년 6월 1일 오전 10시 8분

 

비가 오는 여행들은, 시원하다.

 

흐린시간들은 그곳과 잘 어울린다. 이곳도 어떠한 날은 맑고 어떠한 날은 흐릴 것이기에, 그 또한 그 장소의 경관이다.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1시 20분

 

녹차밭을 올랐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계속 앞사람을 앞질렀고, 땀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멈춰 선 순간, 모근에서부터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산 정상만 보던 내 동공이 주변시를 사용했다. 나는 이 메커니즘을 알 필요가 없었다. 목표지향적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저 끝까지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적이 없으니까.

 

관성이렸다. 요즘의 내가 일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살기까지 하고 있나보다.

 

나는 무엇을 보고 사나? 생각하는 것도 멈춰두고, 책이나 공부도 집어던져두고서는.

 

고민이나 사색, 내가 익숙한 생각들로부터 도망가선.

 

애써 살아낸다고 크게 달라진 것이 있나?

 

이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중심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나는 어떻게 숨이 멎을 때까지 숨을 쉬어낼 수 있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들, 한순간에 아스라질 것들 뿐인 것을.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1시 26분

 

봉사활동도 자기자신을 위한 것인 마당에, 그 어떤 것이건 상대방을 위한 결정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역으로, 그 결정으로 당신의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3시 1분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은 갑자기 내려앉는데, 당연했기 때문에 더 크게 비워지곤 한다.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6시 40분

 

창 밖으로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가 보인다. 대부분의 잉어들은 아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한 무리의 잉어는 다른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웠다. 거의 할 수 없는 중국어. 아무도 하지 못하는 영어와 한국어. 10년동안 내가 얻은 건 두려움이다.

 

훌쩍 나이 들어버린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익숙해져버린 캐리어 대신 그 때와 같은 배낭에 짐을 쌌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연이은 외출은 몸을 지치게 했다. 엉망인 상태로 버스에서 요금을 내지 못했다.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대책인 20대의 내가 남아있었으므로, 눈 앞의 이국적인 횡단보도 사진을 찍었다.

 

도착한 숙소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나는 10년동안 비를 몰고 다녔다. 10년만에 버릴 것이, 아까운 것이 많아졌다.

 

공항 화장실에서 급하게 챙긴 휴지 열 장은 거의 쓸 일이 없었다.

 

눈 앞의 홍소육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양념을 머금은 비계 옆의 계란이 탐스러워, 저 옆으로 치워버렸다.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7시 49분

 

아까운 것이 많다는 것은, 버릴 것이 많다는 것과 같다. 애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는 점과도 닮아있다.

 

돌아보면 나는 가진 것을 버린 적이 없다. 내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선택들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함부로 버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상처받는 모습을 할 대, 나에게 실망한다. 집착과 고집이 조금이라도 관찰이 되면 실망한다. 모든 것들이 내 손에 쉽게 들어왔듯이, 쉽게 도망갈 수 있다는 걸, 익히 겪어왔음에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죽음까지도) 익히 봐왔음에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겪어보고도 배우지 못한 나를 탓한다. 나는 자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그 사건'까지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약한 나는, 강하고 무던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 당신들의 상처와 나의 상처가 달라서 그러하다. 목표가 없어도 살아진다. 숨만 내쉬는 것은 꽤나 힘이 들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에게 꽤 무관심하지만, 꽤 관심이 많기도 하다. 혼자 여행을 다니지만, 매일 대화를 할 일이 생기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계속 걷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문득, 내 집착이 느껴졌다. 어느 때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부럽다가도, 내가 그렇게 되어가는 모습은 지연시킨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한다. 언제든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듯이.

 

그런 모습이 나를 매력적으로, 또는 여유로워보이게, 또는 어려워보이게 만들 수 있다. 단점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도 만든다. 나조차도 오늘이 아니면 잘 생각해내지 않는 내 단점을.

 

나에게 집착은 키워내야 하는 감정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그를 통제해야 할까? 스스로 아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 화를 내야할까? 그런 내 모습을 나는 언제까지 혐오없이 견딜 수 있을까?

 

 

항저우, 2025년 6월 2일 오후 10시 34분

 

공연은 객석에서 봤을 때 가장 아름답다. 강 건너에서 본 야경이 가장 화려하다.

 

나를 면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종종 내 기분은 가장 친밀한 사람들로부터 좌우된다.


 

항저우, 2025년 6월 3일 오전 8시 51분

 

외국에서 눈길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은 단연 표지판이다. 그 나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인다.

 

사람도 그러한데, 삶의 목표만 들어보아도 그가 보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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