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은 이례적으로 “눈치를 보지 않은” 국제 행사였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보다 그 외적인 이벤트들이 더 화두가 되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흑백 요리사’의 우승자가 가장 승승장구하지 않는 것처럼 평범한 일이 되었을 지도 모르나.)
이슈는 긍정/부정, 두 가지의 뉘앙스를 가진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국민성은 논쟁을 즐기는 것으로 익히 유명하다. 유명하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파리 올림픽에서 보도된 장면들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 불쾌감은 역효과를 낳는 직접적인 압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통적인 연구 중에서 Jack Brehm이 제시한 심리적 반발 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 1996)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인기있는 사람들을 보면 불쾌한 것을 불쾌하지 않게 말하는 화법을 가지고 있다. 또다른 연구들은 동일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때, 유머를 활용하는 화자의 호감도와 수용도가 더 높다고 말한다.(Romero, E. J., & Cruthirds, K. W., 2006; Bitterly, T. B. et al., 2017)
프랑스 출신 예술가 장 줄리앙은 자신의 그림이 인기 있는 비결을 “사람들이 더 잘 아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다. 이것만으로는 그가 MZ세대의 지지를 받는 예술가라는 점을 뒷받침하기 부족하다. 만화를 좋아하는 작가답게, “불쾌한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점이 호감도를 높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근래 프랑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자유”를 표방한다(파리 올림픽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대외적인 메시지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이지만, 외려 자신들이 정의하는 “표현의 자유”를 강요하며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을 제한하는 등 문화다양성은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다양성에 대한 논의의 장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가이기도 하다. 장 줄리앙은 이런 다양성의 야생적 방출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근본을 탐구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종이 인간 Paper People”이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번 퍼블릭가산에서 열린 전시는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 공장 Paper Factory>, <종이 도시 Paper City>, <종이 정글 Paper Jungle> 종이공장에서 종이인간들이 새로운 종이인간들을 찍어낸다. 새 종이인간을 오리고 색칠한다. 본래 같은 모습으로 태어났으나, 어떤 이가 붓을 들었는지에 따라 다른 색을 띄게 된다. 종이도시에서의 이들은 스스로 색칠하기도 한다. 삶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철학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다양성은 제작되었다. 나의 행동이 비춰지어 내 옆 사람의 모습을 구성한다. 내 친구는, 동료는, 가족은 내가 동의하는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주고자 하고, 나의 동의를 얻지 못한 행동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지금의 사회는 상호우호성에 따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종이인간 공장을 가지고 있다. 모두 백(白)지에서 동일하게 시작한다. 나의 색을 구성하는 사람과 내가 색칠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다시 나의 색을 받은 이는 누구를 색칠하기로 길을 나서는가? 또다시 그 사람은 이 도시의 색을 칠하고 있다.
종이정글에서는 ‘뱀의 미로’를 볼 수 있다. 예술 분야에서 ‘뱀’의 가장 전형적인 클리셰는 ‘인간의 시작’이다. 뱀의 모양을 하고 있는 입체적 벽면에 인간의 시작부터 현대까지의 벽화가 그려졌다. 배경이 현대가 되기 전까지, 종이인간으로 그려진 것은 없다. 인간의 탄생 이래, 우리가 주조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만이 종이인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종이인간”은 석기 시대의 벽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현대의 벽화’이다. 동일하게 뱀의 벽면에 그렸다는 모습에서 연속된 인류 문명의 일부이면서, 평면적인 벽의 변형으로 입체적으로 변모한 새로운 종류의 벽화이다.
전에 없던 양태이기 때문에, 전에 없던 방식의 표현과 전에 없던 충돌이 벌어진다. 화합을 위한 건설적인 대화는 서로의 표현 방식에서 불쾌감을 인내하거나, 나의 표현 방식에서 불쾌감을 덜어내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장 줄리앙은 “대화를 요청하는 예술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더 근본적인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풀어놓았지만, 130만명의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답게(@jean_jullien), 그는 주로 익살스럽게 현대인의 모습을 풀어낸다(스마트폰이 닿아있는 귀 부분만 햇살에 타지 않는다던가).
모든 표현이 대화를 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가 건네는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무거운 이슈를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톤을 조정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 그것이 이 전시의 인터랙티브적인 자극에 더해서 배워봄직한 요소일 것이다.
그의 방식대로 예술의 본질적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