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70년전 이곳 한 가운데 있었던, "전쟁의 목격자" [도서]

글 입력 2019.10.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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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주년이다. 이데올로기의 갈등, 강대국들의 이권다툼으로 인한 전쟁이 휩쓸었던 당시의 모습은 적어도 지금, 겉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가끔 태백산맥과 같은, 전쟁을 주제로 하거나 그 참혹함에 고통 받으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을 읽다보면 정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가족을 잃고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이들의 절망이 덮은 나라를 그 한 가운데에서 목격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담아 세상에 알리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 언론인,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세계대전 및 콩고내전, 베트남 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했던 여성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책 "전쟁의 목격자"는 그의 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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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리트 히긴스는 아일랜드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품을 가진 아버지와 자유로운 프랑스인의 성격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둘의 사랑은 그 결실인 외동딸 마거리트의 종군기자로서의 일생을 암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감 넘치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평을 받은 어린 마거리트는 욕심이 많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행동에 주저하지 않았다. 훗날 <에스콰이어>의 편집장이 되었던 앨린스 매킨타이어가 전해준 그와의 일화에서 마거리트의 성품이 분명히 드러난다.

 

 

매기보다 나이가 어렸던 앨리스가 주저주저하다가 먼저 마을 걸었다. ”무한하게 사고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걸 알아?“


”물론이지“ 매기가 대답하고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는 아니?“ 앨리스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이해해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다.


매기는 격려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졸업반 학생과 신입생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극을 소멸시켰다. ”언젠가 나는 모든 것을 알아낼 거야, 별들까지도“ (39쪽)

 


무한의 사고, 하늘 위의 별들까지도 알아 내겠다는 마거리트의 열정은 대학 입학 후에도 이어진다. 대학 신문 기자로 활동했던 마거리트는 졸업 후 <뉴욕 트리뷴 해럴드>에 기자로 일하게 된다. 기자로서 기량을 숙달시키는 동시에 해외 파견의 일을 꿈꾸었던 그에게 종군기자로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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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뷴> 남성 기자들은 마거리트가 종군기자로 파견된다는 것에 화를 내고 심지어 여성 기자 채용에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마거리트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던 도시 담당 부장 엥겔킹까지 이에 분개한다.


전쟁이 끝난 프랑스에서 그 이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마거리트는 스스로 더 많이 조사하고 더 많이 뛰어다녀야 했다. 이미 함께 사건을 공유하며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다른 기자들과는 처지가 달랐기에, 밤늦게 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후 독일에서는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잔혹함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이를 정확히 분석해 빠르게 고국에 소식을 전했다.


3년 동안 해외 특파원으로 일했던 마거리트는 <트리뷴>의 베를린 지국장으로 승진 후, 베를린의 봉쇄가 해제하며 도쿄로 발령받는다. 도쿄의 전임자는 일주일에 기사 하나 싣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는 소식은 마거리트를 낙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도쿄 발령은 마거리트 인생에 또다른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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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아시아 취재를 위해 도쿄로 발령받은 마거리트는 한국의 총선 소식을 듣게 된다. 알려진 것이거의 없는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공산주의 세력 옆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마거리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일본 전쟁 포로들을 나누려는 문제에서 해결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3.8선이 세워진 상황이었고 마거리트는 극동아시아 취재원으로서 쓴 첫 번째 기사를 한국에서 다음의 헤드라인으로 송고한다.


”기자, 한국을 갈라놓은 국경으로 가다“ 


총선 이후, 공산당의 남한 침략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죽어가는 사람들, 바로 옆에서 날아오는 총알, 박격포를 피하며 마거리트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목격하고 이를 기사로 써낸다.

 

공포감이 밀려오고, 그 공포감은 앞으로 여러 나날 그의 마음에 자리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러나 마거리트는 신문사의 한 대표로서 전쟁 보도를 맡는다는 책임감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대령과의 대화는 그녀의 견고한 마음을 드러낸다.

 

 

”곧장 돌아가야 할 거요, 어린 아가씨.“ 그가 그녀에게 일렀다. ”당신은 여기 머물 수 없소. 골칫거리가 생길 거요.“


”골칫거리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 오는 일도 없었겠죠, 대령님.“ 그녀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골칫거리는 뉴스고, 뉴스를 수집하는 게 내 직업이에요.“ (219쪽)

 


한국 전쟁에서 마거리트의 존재를 탐탁치 않아하는 군사들, 다른 남성 기자들 그리고 마거리트가 일하는 <트리뷴>까지 한국에서 마거리트를 한국에서 전출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도구만 지닌 채 무모하게 전장을 누볐던 마거리트는 해외 취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전쟁 이후, 한국 전쟁을 다룬 책을 출간하며 유명세를 얻은 마거리트는 두 번째 결혼을 하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베트남에서 승려의 분실 자살을 취재하며 마거리트는 당시 미국 대중들이 보지 못한 베트남의 부분 및 일반적으로 만연했던 것과 다른 관점을 기사에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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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세계에서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1950년대에 언급해서는 안돼는 것 1순위인 ‘일하는 엄마’였던 마거리트 히긴스. 기자로서의 성공과는 다른 사랑의 실패를 겪기도 했으며 자신의 믿음과 다른 세상의 면모를 발견하며 그가 열정을 담아 마음에 키웠던 꿈은 현실과 괴리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가 최선을 다하는 길에 그의 도덕관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말들은 항상 꼬리를 물었지만 마거리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말하듯이 여성이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마거리트에게만 비난이 이어진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본인의 야망에 충실했을 뿐일지라도, 마거리트가 걸어온 길과 그가 이룬 것들은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인식을 깨트렸으며 그로 인해 차세대 여성들은 그가 걸어온 길과 삶을 해쳐나가는 모습을 자신의 꿈과 목표로 가질 수 있었다.


한 때는 전쟁이 휩쓸었던 이곳은 겉으로는 그 때의 모습과 상처가 완전히 아문 듯 보인다. 그러나 70년 전 시대의 녹슨 생각과 관념은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나는 오래 전 이곳에서 있었을 그를 떠올려본다. 세상에 알릴 기사거리가 있다면, 어디든 가려고 했던 마거리트 히긴스의 용기와 야망을. 그리고 그에 이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여성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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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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