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호프"에 대한 단상 (1)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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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괜찮은 뮤지컬 한 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올해의 나는 주저없이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이하 <호프>)의 시놉시스를 내밀 것이다.


<호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에서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에 선정된 작품으로, 올 상반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 알앤디웍스의 창작뮤지컬이다. 본문에서는 특유의 따뜻함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한 <호프>에 대한 나의 단상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예매처에 게시된 작품의 시놉시스를 아래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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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거장 요제프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도서관과 호프의 소송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베르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글을 쓰는 요제프의 재능을 동경한다. 베르트는 원고를 태워달라는 말을 남긴 채 사망한 요제프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요제프의 남은 원고를 소중히 보관한다.


어느 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자 베르트는 그의 연인 마리에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원고를 넘기고 떠난다. 마리를 피난 속에서도 베르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고에 집착하며 살아가게 되고 마리의 딸 에바 호프는 원고만을 바라보는 엄마 곁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총성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엄마에게서 원고지를 빼앗아 돈과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호프는 연인 카델에게 배신을 당하고, 오랜 방황 끝에 중년이 된 호프는 다시 원고를 마주하게 된다. 호프에게 원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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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긍정적인 부분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호프>를 유심히 뜯어본 관객 중 한 명으로서 말하자면, <호프>는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이 참 많은 극이다.


우선 <호프>는 이제 겨우 초연을 마친, 신진 작가가 쓴 창작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엉성함을 제외하면) 보통의 뮤지컬들에서 보기 드문 세밀함과 촘촘함, 그리고 소재의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 <호프>는 각 대사 간의 연결 고리와 인물 간의 관계 양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군더더기 없고 무척이나 '신경 쓴' 극이다.


극의 흐름을 따라 호프의 기억을 여행하다 보면 창작진이 작품에 쏟은 애정과 노력의 크기가 절로 그려진다. 작품의 제재만 해도, <호프>의 주인공 에바 호프(Eva Hope)처럼 유명 작가(후자의 경우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을 두고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법정 싸움을 벌인 실존 인물 '에바 호프(Eva Hoffe)'의 이름이 '희망'을 뜻하는 영어 단어 '호프(Hope)'와 한국어 표기가 같다는 점을 이용하여 삶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설득력 있는 작품을 꾸린 점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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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진의 정성스런 마음은 또한 작품의 음악적 구성에서 도드라진다. <호프>는 드라마틱한 킬링 넘버를 찍어내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켜켜이 이어져 온 호프의 기억들과 먼지쌓인 원고지의 형상을 이어줄 장치, 즉 화음을 완성하는 데에 주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넘버들이 마냥 귀에 잘 감기지 않거나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호프>가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 이 '화음'은 관객에게 완전함, 포옹, 수용, 웅크림, 가정으로의 회귀 등의 시각적 이미지 뿐 아니라 따뜻함과 풍성함, 안정감이라는 정서 또한 전달하여 작품의 주제 의식을 극대화한다.

위의 화음을 구체적인 소리로 실현하는 주체는 <호프>에서 '책갈피'라 불리는 앙상블 배우들이다. 이들은 현재의 호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호프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사건들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제 1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호프와 마리가 갇혀 있었던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되기도 하고, 호프가 원고를 내놓은 경매의 참가자들이 되기도 한다.

호프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이들은 책의 중요한 페이지, 이해하기 어려워 읽다 만 페이지를 표시하는 책갈피들이다. 또 <호프>라는 작품을 하나의 책으로 읽는다면 이들은 책 사이사이에 끼워져 극을 더 풍성하게 완성시키는 감초같은 책갈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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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줄기의 소리가 중첩되어 하나의 총체를 만드는 '화음'은 기억의 편린들이 모여 만들어진 '에바 호프'라는 인물, 아니 '에바 호프'라는 세계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호프, 마리, 베르트, 카델, 수용소의 수감자들 등 여러 인물들이 교차하는 <호프>라는 작품 자체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따라서 관객은 극장에 울려 퍼지는 화음의 소리와 함께, 작품의 인물 구도가 그대로 재현된 무대의 물리적 구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교하게 짜여진 인물들의 동선과 시선들을 잘 따라가야만 '에바 호프'라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것은 <호프>의 굿즈로 판매된 작품의 대본집이다. 개인적으로 <호프>라는 작품의 마케팅에 있어서 대본집 판매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대본집은 대사 한 줄 한 줄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간직할 최고의 방법이다. 창작진의 자부심이 묻어 있는 대본집을 읽으며 천천히 복기해 보는 <호프>는 관객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다.


2편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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