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괜찮은 뮤지컬 한 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올해의 나는 주저없이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이하 <호프>)의 시놉시스를 내밀 것이다.
<호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에서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에 선정된 작품으로, 올 상반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 알앤디웍스의 창작뮤지컬이다. 본문에서는 특유의 따뜻함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한 <호프>에 대한 나의 단상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예매처에 게시된 작품의 시놉시스를 아래에 적어 보았다.

현대문학의 거장 요제프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도서관과 호프의 소송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베르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글을 쓰는 요제프의 재능을 동경한다. 베르트는 원고를 태워달라는 말을 남긴 채 사망한 요제프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요제프의 남은 원고를 소중히 보관한다.
어느 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자 베르트는 그의 연인 마리에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원고를 넘기고 떠난다. 마리를 피난 속에서도 베르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고에 집착하며 살아가게 되고 마리의 딸 에바 호프는 원고만을 바라보는 엄마 곁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총성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엄마에게서 원고지를 빼앗아 돈과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호프는 연인 카델에게 배신을 당하고, 오랜 방황 끝에 중년이 된 호프는 다시 원고를 마주하게 된다. 호프에게 원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작품의 긍정적인 부분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호프>를 유심히 뜯어본 관객 중 한 명으로서 말하자면, <호프>는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이 참 많은 극이다.
우선 <호프>는 이제 겨우 초연을 마친, 신진 작가가 쓴 창작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엉성함을 제외하면) 보통의 뮤지컬들에서 보기 드문 세밀함과 촘촘함, 그리고 소재의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 <호프>는 각 대사 간의 연결 고리와 인물 간의 관계 양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군더더기 없고 무척이나 '신경 쓴' 극이다.
극의 흐름을 따라 호프의 기억을 여행하다 보면 창작진이 작품에 쏟은 애정과 노력의 크기가 절로 그려진다. 작품의 제재만 해도, <호프>의 주인공 에바 호프(Eva Hope)처럼 유명 작가(후자의 경우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을 두고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법정 싸움을 벌인 실존 인물 '에바 호프(Eva Hoffe)'의 이름이 '희망'을 뜻하는 영어 단어 '호프(Hope)'와 한국어 표기가 같다는 점을 이용하여 삶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설득력 있는 작품을 꾸린 점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