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다움'을 허무는 다음 : 연극 "7번국도"

글 입력 2019.04.1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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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7번국도>
-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프로그램 -


시놉시스 

강원도 속초, 7번국도 위. 동훈의 택시에 군복을 입은 주영이 오른다. 그는 얼마 전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동창의 죽음을 두고, 주영은 안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이 낯선 군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는 동훈은 바로 그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다. 동훈은 오늘도 경기도 수원의 공장 앞 1인 시위를 위해 집을 나선다. 하지만 남편인 민재는 동훈을 막아서고, 시위에 함께했던 용선은 피켓을 내려놓는다.


주영이 동훈의 택시에 다시 오른다. 이 낯선 택시 기사님은 주영에게 말한다. 이제 시위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고. 때가 됐나 보다고.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 연극 <7번국도>(작가 배해률/연출 구자혜)가 던지는 물음이다. <7번국도>는 남산예술센터의 시즌 개막작인데, 2017년 상시투고시스템과 2018년 낭독공연으로 디벨롭 과정을 거쳐 올해는 시즌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특기할 만하다. 4월 17일부터 28일까지 오르는 이 작품은 '삼성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를 극 안으로 끌고 들어와, 우리 사회 속 피해자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작품이 내세우는 건 허구의 인물과 전개다. <7번국도>는 여러 인물의 만남과 갈등,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와 그 속의 피해자들을 그려내려 한다. 이를 위해 연극에선 피해 당사자 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닌, 피해자 가족의 삶, 피해자 가족 간의 관계 등에 주목하며, 넓은 층위의 갈등을 담아낼 예정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온 '피해자다움'이 얼마나 일차원적이고 단순화되어 있으며, 이 납작한 도식이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폭력으로 다가갔는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7번국도>의 모든 인물은 허구이지만 이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우리 사회의 현실일 것이다.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격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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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연습 사진. ⓒ이강물


우리 사회를 놓고 봤을 때, 사실 이 ‘피해자다움’이라는 건 피해자에 대한 통념에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를 하나의 역할(role)로 상정하고, 제3자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행동 양식을 강요하고 기대하는 것. 그게 ‘피해자다움’의 실상이다. 피해자의 모습은 상상된 타인에 가까운데, 요컨대 이런 식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모든 일상의 것들을 멈추고, 웃지 않고, 가해자와는 어떤 경우라도 상종하지 않고, 눈물이 마를 새 없는 ‘피해자.’ 인간의 기본적인 삶은 상상의 범위에서 싹둑 잘라내어 버리고, 백이면 백 다른 사정을 하나의 가정으로 표백시킨 결과다. 그리고 이는 피해자 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그들 일상 속 사람들에게도 적용되곤 한다. 제 멋대로 상상한 타인의 고통과 갈등. 얄팍하게 정의내린 '다움'은 그런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해자다움’은 피해자와 피해 경험의 다층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말하는 게 사실이냐’는 물음으로 쉬이 접어들곤 한다. 작년 1월부터 이어진 한국의 미투 운동(MeToo)과 근래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성폭력 사태들을 지켜보았다면, 더욱 통렬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들이(명품 사용 여부라든지, 재판에 출석하는 차림새라든지, 웃는 사진이라든지) '피해자다움'에 맞지 않다고 혹자는 의심의 시선부터 보낸다. ‘진짜’ 피해자가 맞느냐고. 또 피해자가 범죄에 어떻게 대응하고, 받아들이고, 논의의 장에 들고 나오는지는 제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피해자다움’에 조금이라도 들어맞지 않으면 이미 ‘가짜’로 취급할 준비를 하고 있다.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 말에 귀 기울이기보단 2차 가해를 먼저 벌이는 모습, 자주 보아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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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연습 사진. ⓒ이강물


“사회적 참사를 겪을 때마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사회적 영웅으로 부상되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피해자들이 싸우기로 결심하거나 멈추기까지가
더 치열한 싸움이 된다.” (배해률 작가)

 “이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조용한 싸움을
정직하게 담아내고 싶다.” (구자혜 연출)


'피해자다움'에 근거한 의심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입증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피해자답지 않다, 피해자의 부모답지 않다, 피해자의 친구답지 않다 등 냉소적인 시선이 따라붙곤 한다.

<7번국도>는 이렇게 단순화된 '피해자다움'에 물음을 던진다. 피해자의 모습, 피해자가 느낀 고통, 사건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마주치는 문제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는가를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었음에 주목했다. 그리고 '피해자다움'이란 전형성에 발파 장치를 설치한 후, 피해자 집단 사이의 갈등과 균열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되비추겠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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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연습 사진. ⓒ이강물


그런데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은 의도치 않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피해자다움’을 묻기 위해 피해자를 등장시키고, 그들로 연극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또 다른 ‘피해자다움’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루고 있는 사건들이 실제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것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두 개의 사건을 얕게 말하다 보면 사건 각각이 가진 특수성, 피해자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자체적인 맥락이 ‘피해자’란 이름으로 또다시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

하지만 이 작품은 공연에 앞서 “사건의 양상이나 본질이 다를뿐더러 피해자들을 쉽게 연결시켜 무책임하게 삶을 아름답게 그리거나 사건의 무게를 증폭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겠다는 태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층위는 어떠한지, 또 그 균열 사이에서 읽어낼 수 있는 현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자못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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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좌석 배치도.
B구역 10열 휠체어석은
모든 회차에서 예매 가능하다.


한편 개막일과 폐막일에는 공연이 ‘배리어 프리(Barrier-Free)’로 진행된다. 먼저 남산예술센터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문자 통역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양일에는 무대 중앙에 자막이 설치되고 수어 통역사가 무대 위에 있어, 전 객석에서 통역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음성 해설 서비스도 FM 수신기를 통해 마련했다. 또한 해당 공연 일자엔 시각장애인에게 전 구역의 2열을 우선적으로 예매할 수 있게 해,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석(B구역 10열)은 모든 회차에서 예매 가능하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공연에선 자주 보기 힘들었던 ‘배리어 프리’이기에, 또 이런 시도가 공연계 전반에 보편화되어 있진 않기에 이번 움직임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다움'을 허무는 연극이 극장의 벽도 허물길. 그렇게 사회의 인식적, 제도적, 물리적 벽을 허물다 보면 가장 최후까지 남는 건, 그리고 남아야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7번국도
-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프로그램 -


일자 : 2019.04.17 ~ 04.28

시간
화, 수, 목, 금 19시 30분
토, 일 15시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문화재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0분





출    연

권은혜, 박수진, 이리, 전박찬, 최요한


스 태 프

작 배해률, 연출 구자혜
무대 장호, 조명 김형연
사운드 목소, 의상 우영주
조연출 및 음향오퍼 류혜영
자막오퍼 김효진, 조명오퍼 윤지영





4.17.(수) 19:30 공연과 4.28.(일) 15:00 공연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과 수어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제공됩니다.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석은 모든 회차 가능합니다.


■ 통역 서비스 안내

① 문자통역: 무대 위 중앙에 자막 제공
② 수어통역: 무대 곳곳에 배치
③ 음성해설: FM 수신기 제공
(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긴 후 이용)
  
■ 좌석안내

① 청각장애인: 모든 좌석에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좌석 가능)
② 시각장애인: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 등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A/B/C구역 2열을 우선 제공합니다.
③ 지체장애인: B구역 10열(맨 뒷줄)에 휠체어석이 있습니다.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석은 모든 회차 가능합니다.
단, 리프트 이동을 위해 전동 휠체어에서 일반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 예매방법

① 청각장애인: 홈페이지 직접 예매 또는 문자예매
※문자예약 시 예약자의 성명, 관람회차, 관람인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② 시각장애인: 전화예매
③ 지체장애인: 전화예매

■ 티켓가격: 정가 30,000원에서 50% 할인하여 15,000원/인
※본인 및 동반 1인까지 할인 가능, 복지카드 등 지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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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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