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 말코비치가 되시겠습니까? [영화]

타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되는 사람들
글 입력 2019.01.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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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가 되시겠습니까?
타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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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에 말코비치 안에서 봐."



여기 해괴하고 괴상망측한 문장이 있다. 말코비치는 카페의 이름도 어느 레스토랑의 이름도 아니다. 말코비치는 사람이다.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헐리웃의 악역 전문 배우. '여인의 초상', '레드',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존 말코비치]다. 그런데 "존 말코비치의 안에서" 보자니. 은유일까 상징일까 풍자일까 싶지만, 그들의 대화는 비유가 아니다. 우리는 존 말코비치의 안에 진짜로 들어갈 수 있다. 15분 동안 존 말코비치가 되는데 필요한 건, 오직 200달러뿐.


이 이상한 이야기가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선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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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존 말코비치


제목 :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감독: 스파이크 존스
출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캐서린 키너, 존 말코비치


키워드: 엽기적인/ 어두운

코미디/ 욕망/ 자아/ 실험적인



[존 말코비치 되기]는 [Her]로 잘 알려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하고, [이터널 선샤인]을 쓴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쓴 작품이다. 하지만 [Her]과 같은 따뜻함도 [이터널 선샤인]이 갖고 있는 감동도 이 영화에 기대해선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 불쾌하고 찝찝하고 기괴하고 괴상하다. 그런데 엄청 재밌다. 누구든 한 번 이 영화를 재생하면 절대 도중에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스파이크 존스와 찰리 카우프만이 만들어낸 이 촘촘한 판타지는 늪처럼 우리의 발길을 잡는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와 눈을 뗄 수 없는 화면. 여기에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캐서린 키너, 존 말코비치라는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더해지니, 몰입하지 않기가 더 힘들 정도다.


넌 네가 원숭이로 태어난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거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무서운 재앙이거든.

생각하고 느끼고 고통도 받지.


- 존 말코비치 되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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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인형술사 크레이그는 구인 광고를 보고 '레스터 기업'에 찾아간다. 7층과 8층 사이, 그러니까 7과 1/2층이라는 황당한 곳에 위치한 사무실은 조금 특이하다. 보기만 해도 목 아픈 낮은 천장과 말을 못 알아듣는 이상한 비서가 수상한 냄새를 잔뜩 풍기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레이그는 일을 시작한다. 심지어 뇌쇄적인 매력을 가진 동료 맥신에게 열렬한 끌림을 느끼는 크레이그. 하지만 그녀는 도발만 걸어올 뿐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애타는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크레이그는 아주 비밀스럽고 이상한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존 말코비치'의 안으로 들어가는 문.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경이로운 체험에 흥분한 크레이그는 맥신을 찾아가고, 그녀는 크레이그에게 사업을 제안한다. 바로 200달러를 받고 '존 말코비치 되기' 체험을 시켜주자는 것인데...

크레이그와 맥신, 라티. 그리고 존 말코비치가 되어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과 그들의 존재는 꿈에도 알지 못하는 존 말코비치.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존 말코비치)'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나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들의 욕망에 찬 끔찍한 사투가 시작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 [겟 아웃], [미스터 노바디]를 재밌게 본 사람

- 낮은 자존감,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 B급 감성을 가진 A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철학적인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

- 찝찝한 기분을 즐기는 사람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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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의 백미는 단연 이 장면일 것이다. 존 말코비치의 안에 들어간 존 말코비치. 그 속엔 온갖 말코비치로 가득하다. 말코비치와 데이트하는 말코비치. 말코비치를 먹는 말코비치. 노래하는 말코비치, 주문받는 말코비치, 와인 마시는 말코비치... 말코비치는 말코비치의 탈을 쓴 수많은 타자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말코비치가 크레이그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말코비치 =M, 크레이그=C로 표기)



M: 난 저승에 갔다 왔어.

누구도 보면 안 되는 걸 봤다고.


C: 그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던데.


M: 저 통로는 내 거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차단 시켜야 해.


C: 하지만 말코비치 선생님...

무례한 건 알지만,

저 통로를 발견한 건 저예요.

제 밥줄이라고요.


- 존 말코비치 되기 中



최근 본 영화 중 이보다 섬뜩한 대사는 없었다. 크레이그는 타인의 의식을 소유하고 그것을 생계수단으로 이용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나중에 말코비치의 몸을 멋대로 조종하고 지배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말코비치의 의식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의 몸을 독차지한 것이다. 말코비치의 명성을 빌려 자신의 인형극을 성공시키고 맥신의 사랑도 얻는 크레이그. 성공과 사랑, 그리고 자아 실현이라는 욕망 앞에서 크레이그에게 말코비치란 말 그대로 '도구'가 된다. 영화 [겟 아웃]의 백인들이 흑인의 몸을 차지하고 젊음과 탁월함을 누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 끔찍한 세계를 탈출해내는 [겟 아웃]의 주인공과 달리 [존 말코비치 되기]는 그런 사이다를 우리에게 선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차단시켜야 할' 통로를 독점해버린 크레이그. 애초에 자아를 버리고 타인이 되어 살아가기를 결정한 순간부터 그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욕망의 전차 그 끝엔, 파국 뿐이다.


존 말코비치 안에 들어간 크레이그는 여전히 크레이그가 맞을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존 말코비치를 존 말코비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극단적이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들려주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들의 결말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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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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