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금기는 없었다. <갈증> [도서]

후지시마는 딸을 갈증 했다
글 입력 2018.12.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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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은 죄악시되는 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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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금기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당장 우리나라인 신라의 성골 문화에서부터, 이웃나라의 폐쇄적인 섬문화에서까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다못해 신화에서부터도 찾아보기 쉽다. 동양에서 홍수 남매 설화는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적인 소재며, 흔하게 발견된다. 성경에서도,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근친상간이 판을 친다. 반면, 현대에는 근친상간은 죄악시되는 금기로 여겨지고 있다. 유전병과 기형아의 원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금기로 굳혀졌다는 게 정설이다.


왜 이렇게 금기에 대해 장황하게 써 놓았느냐면.




후지시마는 금기를 어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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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후반부에 후지시마는 딸을 강간한 사실이 드러난다. 자신도 기억 못 할 만큼 오래 전이다. 이후, 명랑한 모범생인 가나코는 변했다.


다시 정의해보자. 후지시마는 금기를 어긴 사람. 금기가 무의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책 제목인 '갈증'과 더불어 생각해보자. '갈증'은 인간, 아니 생명체의 원초적 욕구다. 누구나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금기' 이전에 '갈증'이 존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후지시마는 윤리가 자리 잡기 이전의, 본능적인 인간에 가깝다.




후지시마는 딸을 갈증 했다.



후지시마는 인간성과 이성이 결핍된 아버지다. 딸을 찾아 나설 때부터 기이했다. 딸을 찾기 위해 계속 무언갈 다짐한다. 자기 암시부터 시작한다. '나는 딸을 사랑하는 거야. 화목한 가정을 되찾고 싶어. 명예를 되찾을 거야' 이런 식으로 염불을 왼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지시마 심리묘사에서 알 수 있다. 상술한 것들은 단지 부수적인 것들이다. 이성보다 본능에 가까운 인간인 후지시마에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후지시마는 그저 가나코를 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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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찾는 것보다, 딸에 대해 더 하나라도 아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가나코를 찾는 과정에서, 가나코의 주변 인물들을 탐색하고 대화해나간다. 단순히 평면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여기서도 갈증이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딸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에서 나타나는 이런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가나코의 주변 인물에게 항상 분노하고 질투한다. 왜, 가나코에 대해서 '나'보다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갈증은 가나코를 향한 것이다.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가나코는 이미 죽었다. 후지시마의 갈증은 영원히 충족되지 못한다. 결말을 읽는 순간 냉소했다. 그저 후지시마의 갈증을 조롱하고 싶을 뿐이었다. 사실 제목과 무척 어울린다. 갈증은 해소되면 더 이상 갈증이 아니잖아.




제목과 표지에서 가나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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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코, 등장 비중은 매우 적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독자들은 후지시마의 시선과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가나코를 갈증 하게 돼버린다. 가나코가 등장하는 부분이면 몰입하게 된다.


당장 뭔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중에서 누군가가 가나코에 대해 서술한 것처럼, 가나코의 구멍에 빨려 들어갔다. 후지시마가 그랬듯이 말이다. 사실, 후지시마 뿐만 아니다. <갈증> 등장인물 대부분이 가나코를 원한다. 갈증 한다. 더불어 그들은, 제3자인 우리들마저 갈증에 동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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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처럼, 가나코는 그들을 공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모두의 갈증이 교차하는 부분에서 가나코는 조소하며, 그들을 무시해버린다. 갈증 하지 않는다. 표지의 눈 덮인 산은, 가나코 심리를 묘사한다. 단순히 가나코가 있는 곳이며, 묻혀있는 곳이다. 동시에 아무것도없는 순백의 배경은 가나코의 공허함을 말해주기도, 각성제를 연상시키기도 하다.


두 음절의 제목과 한 장의 표지가 책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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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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