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악당 ‘주먹왕 랄프’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영화]

악당 역할과 진짜 악당은 다른 거란 말입니다
글 입력 2018.07.06 04: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fURTDcQYsBoA1dAnz7vrPjl.jpg
[주먹왕 랄프 공식 포스터]
 

‘주먹왕 랄프’는 실패한 초월번역의 가장 큰 예라고 생각한다. 비공식적 디즈니의 주 수요층인 ‘어른이(어른이지만 어린이들 같은 동심을 아직 간직하여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상품을 자주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들에게 ‘주먹왕’이라는 수식어라니, 왠지 낯부끄러워져 손이 가지 않는 타입의 제목이다. 그래서인지 결국 ‘주먹왕 랄프’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명작으로 남았다. 다시 말해 진입 장벽인 제목을 일단 넘기면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오락실 배경과 그 속의 실존했던 추억의 게임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깜짝 출연 캐릭터들. 갈등으로 시작되며 반전을 거듭하다가, 사랑 빼고 다 등장하는 것만 같은 줄거리 구성도 알차다.


[줄거리]

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에서 건물을 부수는 악당 주먹왕 랄프. 30년째 매일같이 건물을 부수며 직업에 충실해 왔지만, 악당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급기야 자기 게임을 이탈하여 다른 게임으로 들어가는 랄프! 슈팅 게임 ‘히어로즈 듀티’를 거쳐 레이싱 게임 ‘슈가 러시’에 불시착하는 랄프는 과연 게임 세계의 새로운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랄프가 떠난 후 고장 딱지가 붙은 ‘다고쳐 펠릭스’ 게임은 오락실에서 퇴출당할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바로 랄프라는 악당 캐릭터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악당이라고 해서 다 나쁘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해 랄프는 나빠지고 싶지 않은 악당이다. 이야기가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고민을 거듭해왔다. 나는 왜 악당인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두려운 존재로 태어났는가? 왜 이 일을 하는 거지? 악당 랄프는 주먹으로 건물을 부수고 그 속의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그러나 그런 랄프가 사라졌을 때, 게임은 진행되지 않았다.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hMF7v8HpyC.jpg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5PYwPFhxHC3leH.jpg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FWf56aIcR3Rvx7sT1pOJ8l4.jpg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MgfHUPYkrpL1OAYqcBMZ1zaN7Tr3OW36.jpg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VcNppMyxY.jpg
 
 
랄프가 맡은 것은 악당 ‘역할’이다. 우리는 정체성과 역할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상황 속에서 그 경계가 종종 모호해지곤 한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서도 배우듯이 개인은 동시에 여러 역할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은 그 역할을 맡은 나 자신의 역사이자 신념이고, 이상향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는 하나의 사람이지만, 때에 따라 나쁜 사람도 될 수 있고 좋은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설정되는 역할은 불가역한 것이지만, 정체성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나의 역할이 나 자신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맨 처음에 나오는 '악당들의 모임'에서 외치는 구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착한 놈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난 이런 내가 참 좋다."


랄프는 주민들에게 악당이지만 페넬로피에게는 오히려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는 직설적인 어투와 가감없이 내뱉는 감정 표현 때문에 뭇 친구들의 미움을 샀었다. 그들은 항상 내게 그 친구와 왜 친하게 지내냐며 나를 타박하고 그를 멀리하길 권했다. 언젠간 나도 상처받을 지 모른다는,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는 내게 전혀 악당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의 조언자에게 가까웠다. 내가 처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너무 힘들어서 방황하던 때 그 친구는 내게 경험이 담긴 진지한 한 마디를 건넸다.


타인에게서
너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마.

남자친구라고 해서
그에게서 자존감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너도 매일 바뀌는게 너의 감정인데,
타인의 감정이라는 건
더 순간적인 것일 뿐이야.


나는 아직도 친구가 내게 그 말을 했던 그 술자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상황, 친구가 했던 말의 어투, 내가 느꼈던 그 때의 감정까지 생생하다. 이 말은 내게 너무 절실했던 것이었고 다른 어떤 힘내라는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문득 울고 싶어질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긴다. 이 친구는 누군가에게는 악당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만약 그래도 이 친구가 악당일 뿐이라면, 나는 기꺼이 악당을 자처하고 싶다.


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7IVEJWFKDsG4VWSh.jpg포맷변환_크기변환_d32d82f2a91335a2fe3f99bc86d5cf27_VvE8DPhDfp6sAj.jpg
[좌: 천사소녀 네티, 우:로켓단 삼인방]


천사소녀 네티는 도둑이지만 정의롭고, 로켓단은 악당이지만 사랑스럽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악당이 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사정상 악당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 행동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곱씹어보면 타당하다. 사연은 곧 그들의 역사이고 그들의 신념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정체성만은 악당이 아닐 거라고 감히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랄프가 주민들을 무서워했던 것처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그들 입장에선 히어로가 악당 아닌가!

우리가 악당 랄프를 사랑스럽다고 여기게 된 것처럼, ‘다고쳐 펠릭스’ 게임 속의 주민들도 랄프를 인정해 주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직접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처럼 이 답을 찾아 내고 나서도 랄프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도 있다. 과연 악당인 자신을 인정하게 된 랄프의 삶은 이후 어떻게 바뀌었을 지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희소식이 있다. ‘주먹왕 랄프 2’격인 ‘Ralph breaks the Internet’이 올해 미국에서 11월 21일에 개봉한다! 이번 영화는 오락실에서 벗어나, wifi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된 공간 속에 랄프와 페넬로피가 가게 되어 벌어지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이것은 내 예상이지만, 랄프가 편견 없이 자신을 믿어 준 페넬로피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깨닫게 된 것처럼 이번에는 랄프를 통해 페넬로피가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릴 것 같다. 예고편에서 공주들이 ‘어떤 거대한 남자가 네 인생에 등장한 이후로 사람들이 네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니?’라고 말했을 때 페넬로피가 긍정의 대답을 한 걸로 보아 페넬로피가 랄프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거나 오히려 랄프를 그 속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먹왕 랄프2 공식 예고편]


[서혜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