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1.5 화(畵) : 기쁨, 다르게 화(化)하다.

글 입력 2017.09.0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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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 5 화(畵)’?

 
 ‘화담(畵談)’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하던 고민이 있었다. 감정, 색채, 예술 작품의 해석. 칼럼의 세가지 주요 축이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어떤 그림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그림에 주로 쓰인 색채와 그 감정이 과연 연관이 있는지, 다른 이들도 그 연관성에 공감할 수 있을지. 한 화(畵)에 한 가지 감정과 그것을 대표하는 색채를 선정하고, 잘 표현됐다고 생각하는 두어 점의 그림을 소개하는 것.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모두 어려운 과제였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선택한 색채가 아니라 다른 색채,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감정 역시 전달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작품들이 더 공감될 수도 있을 테니.

 ‘ .5 화(畵)’는 그런 의도로 기획되었다. 같은 감정을 다르게 표현한 작품들을 일부 소개함으로써 칼럼의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워보려 한다. 고민이 부족한 와중에 ‘기쁨, 다른 색으로 화(化)하다’라는 제목으로 예고했다. 다른 색채뿐 아니라 다른 형식의 작품들도 소개할 예정이기 때문에 ‘기쁨, 다르게 화(化)하다’라는 제목으로 수정 기고함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
 



1. 기대 : 헨리 모슬러(Henry Mosler), ‘Christmas Morning’
 
Henry Mosler, Christmas Morning, oil on canvas, 1916.jpg
< Henry Mosler, Christmas Morning, oil on canvas, 1916 >


 그런 날이 있다. 누가 깨우지 않더라도 눈이 번쩍 뜨이는 아침. 여느 때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낼 만큼 강렬한 기대감. 색색으로 빛나는 트리와 그 밑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선물들, 맛있는 음식들까지. 기대감과 호기심에 방문을 열어본다. 붉은 빛이 방 안을 비추고 거실에는 그토록 기대하던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부모님은 일어나지 않은 듯, 두 아이는 밖을 흘끔거릴 뿐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곧 있으면 저기에 있는 것들을 가질 수 있겠지?’하는 기대를 안은 채로.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라는 제목답게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붉은 조명이 아이들의 방을 비춘다. 직접 표정이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붉은 빛이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을 상상케 만들어서 그림의 뒤통수들이 귀엽게 보였다. 눈을 반짝이며 장식, 선물, 음식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꼬마들의 표정이 상상됐다. 두근거리는 기대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2. 만남 : 작자미상, 구운몽도
 
구운몽도(19세기,작자미상).jpg
<작자미상, 구운몽도-석교, 19세기
고연희, '그림, 문학에 취하다' 촬영본>


 돌다리를 건너는 8명의 미인. 짧은 저고리로 요염한 스타일을 뽐내는 한복과 타래머리는 소설의 무대였던 중국의 것이 아니라, 조선의 것이다. 본래 선녀들은 구름을 밟고 서있어야 한다. 구름을 건너오는 선녀가 아니라, 돌다리를 밟고 걸어오는 미인들이기에 남자는 이 만남을 오히려 현실적으로 여기고 인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인연을 만난 남자의 기쁨이 색색의 복숭아꽃으로 휘날린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민화로 그린 그림들이 있다. 그 중 빠지지 않는 장면이 석교에서 팔선녀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다. 우연한 만남으로 비롯되는 소설 전체 사건의 발단이기도 하지만, 주요 캐릭터가 모두 등장한다는 매력도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교 장면은 다른 ‘구운몽도’에서도 빠지지 않지만, 이 그림을 선택한 것은 팔선녀를 만난 성진의 기쁨이 하늘을 덮은 복숭아꽃으로 아름답게 형상화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참고 – 고연희, 그림,문학에 취하다, 아트북스)




3. 웃음 :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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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ume Plensa, Crown Fountain, in Chicago Millenniumpark, Digital Art, 2004 >


 시카고에 있는 밀레니엄 파크, 15m 높이의 LED 화면에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1000명의 표정을 촬영한 영상은 13분 간격으로 재생되며 일부는 입에서 물을 내뿜기도 한다. 사람들은 영상의 다음 표정을 맞히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에서 나오는 물로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하우메 플렌사는 공공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한다는 그의 예술관을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다. 기쁨이라는 감정의 가장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웃음일 것이다. 우리는 기쁠 때 눈으로, 입으로,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다를 뿐이지 우리는 모두 기쁠 때 웃는다. 누구나 일상의 순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원이라는 공간에 디지털 아트를 통해 예술가는 기쁨을 선물했다. 물놀이를 하는 시민들의 밝은 표정이 그 증거다. 작품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어주고 있다.




4.  기쁨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나? 기대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웃음을 유발하는 어떤 것을 마주했을 때. 그것은 굉장히 커다랗고 중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 일상 근처에 숨어있다가 선물처럼 나타난 순간일 수도 있다. 한국의 20대를 대변하는 감정이 무기력이라고들 한다. 분단국가에서 비롯되는 안보의 문제를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새는 좀 불안하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새로운 것에는 점점 무뎌지고, 걱정은 점점 많아진다. 기쁠 일이 적어진다. 웃을 일이 없어진다. 그 때마다 이런 작품들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 그 때 기뻤었지. 이럴 때 기뻤었지’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들을. 내가 어떤 것에 기뻐했는지 아는 것이 다시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화(
畵) 예고 - 슬픔, OO 으로 화(化)하다.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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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phonium
    • 안녕하세요. 9차 두레에 참여하게 된 에디터 류소현입니다 :)

      우선 칼럼의 테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첫화부터 읽고 왔습니다. 시각예술에서 '색채'를 통해 작품 안에 묘사된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여러 방법 중에서도 독특하면서 동시에 섬세하고 어떻게 보면 즐겁기까지 한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 의상담당팀이 자베르 경감의 옷 색감의 변화가 자베르의 심리 변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하더군요. 자베르 경감의 제복은 처음 맑은 파란색에서 점차적으로 짙은 빛을 띠다가, 마지막에는 검은색으로 변하죠. 이처럼 의도적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인 반영이든, 작품에 사용된 색채는 확실히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안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헨리 모슬러의 '기대:Christmas Morning'에 나타난 밝은 노랑의 색채가, 전편과 이어져 설렘, 기대, 기쁨과 동시에 따뜻함과 안락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은은하게 비쳐 들어오는 촛불빛이 어두운 새벽을 밝혀줌과 동시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내가 어떤 것에 기뻐했는지 아는 것이 다시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제 마음을 울리네요. 매일매일이 즐겁기만 하던 때도 있었고, 하루하루 힘겹던 때도 있었고, 대체로는 고만고만하게 섞여서 흘러가고 있는 요즘,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늘 기쁘기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사는 이유는 과거의 기뻤던 순간을 곱씹을 수 있고, 현재에서 소소한 기쁨을 마주칠 수 있고, 미래에도 또다시 기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음 화담, 슬픔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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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밤바434
    • ryuphonium성의있는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첫화부터 읽어주셨다니 영광이네요ㅠ
      색채에 대한 감성은 문화나 개인마다 해석의 여지가 다르겠지만, 회화, 영화, 패션 등 많은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하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것 역시 그 사람만의 감정이겠죠. 소개해드린 그림이 소현님의 마음에 공감이 갈 수 있었다니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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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예
    • 안녕하세요 두레에 참여중인 오예찬 입니다.

      평소 작품을 보며 작품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즐겨하기에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되었던것 같아요. 위로와 감정을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저로선 한 단어로 정의된 감정이지만 이것을 느끼는 모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 그래서 공감하는 부분도 다르다는 고민을 하기에 화담이란 글의 시작에 대해 많이 공감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br/>공감했던 만큼 김마루님의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기쁨은 어떤 모습과 색깔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어 사색의 즐거움이 있던 글이었어요. 어린시절의 기쁨, 연인의 만남에 대한 기쁨, 웃음으로 피어난 기쁨, 많은 모습의 기쁨이 담긴 작품들을 읽으며 단지 나 한 사람이 느끼는 기쁨의 색은 무수히 많을 것이고,  아마 모른체 지나간 기쁨의 모습도 있을 것이고 아직 내가 모르는 나만의 기쁨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작품과 함께 글을 읽으며  나의 시간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작품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것도 작품과 사람 사이 소중한 소통이라 생각이 들게 된 글이었습니다.  글을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잔잔한 힘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좋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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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밤바434
    • 희예작품의 이야기를 하며 나의 이야기를 돌아본다는 예찬님의 문장이 마음에 와 닿네요..... 사실 그런 의도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제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확실히 내가 느끼는 감정과 타인이 느끼는 감정은 결이 다를텐데도 우리가 같은 단어로 그 감정을 일컫고 있다는 것. 그 질문에서 글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오해의 여지없이 생각해봄직한 주제들을 계속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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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turedyeon
    • 안녕하세요, 9차 두레에 참여하게 된 에디터 차소연이라고 합니다!
      김마루님의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평소 그림을 볼 때 작품의 배경과 색감을 이해한 다음 그에 맞는 저의 경험을 녹여내서 추억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경험이 감정으로 어떤 상황으로 연결되면서 그를 회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작품 감상을 더욱 즐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대, 만남, 웃음, 기쁨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따라 작품에 나타나는 색채를 생각하고 글로 풀어내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에디터 님의 글을 통해 감정과 색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정에 따른 색채에 관한내용들은 꼭 공감이 목적이 아니라도 그 글에서 독자마다 새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기에 지금까지 쓰신 칼럼의 내용이 갖는 의미도 깊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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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밤바434
    • naturedyeon작품들을 찾고, 색채에 대해 설명하고... 하는 과정이 저는 힘든데 독자님들이 좋아해주시니  저 역시 기쁩니다 :)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시 의미부여를 하는 것. 저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읽는 분들에게도 이 글이 새로운 질문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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