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팝 아트의 시작, 영국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2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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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_andy-warhol-flowers-1964-FS-II.6.jpg 팝아트_Happy_Tears.jpg
좌: 앤디워홀, Flower 
우: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Happy tears


국내에서 팝 아트로 유명한 작가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둘이다. 앤디 워홀은 팝 아트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길거리에 파는 티셔츠에도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이 복제 되었다. 반면 리히텐슈타인은 재벌가의 비자금으로 술렁이던 시절 ‘행복한 눈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공산품을 캔버스로 옮긴 앤디 워홀과 망점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 하지만 팝 아트의 시작은 영국이다.


팝 아트가 시작되던 1950년대는 서구의 자본주의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대량 생산되는 도시문화를 통해 일반적인 매체들이 문화로 승화되어 미술의 대중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대중 매체의 발달로 가중된 정보전달 방식의 변화 역시 팝 아트에 반영되었다.


팝아트_Francis_Bacon_Study_for_the_Nurse_in_the_Battleship_Potemkin.jpg
Francis Bacon, Study for the Nurse in the Battleship Potemkin, Oil on canvas

팝 아트의 시초격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영화 '전함 포템킨'의 한 장면의 영향을 받았다. 의도적으로 사진을 중앙에 배치하여 작품의 이미지가 사진에서 드러냈음을 드러냈다. 기존 예술가들과 달리 대중 매체를 작품에 인용한 것으로, 이런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스타일로 인해 당시 런던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존경 받는 유일한 기성작가가 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사진을 작품에 인용하고 변형 시킨 것이 팝 아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모티브가 된 영화의 장면은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요소가 있어 링크로 대신한다. http://en.wikipedia.org/wiki/Battleship_Potemkin#mediaviewer/File:Nurse_Battleship_Potemkin.jpg)



-제1기(1953-1958): 기계 기술과 인간의 일상품

 팝아트_리처드 해밀턴1.jpg

Richard Hamilton,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Collage

위 작품은 영국 팝 아트의 시초, 팝 아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리차드 해밀턴의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이다. 작품을 보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가구와 기술적 혁신을 말해주는 진공청소기, 남자가 들고 있는 pop이라고 쓰여진 사탕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매스미디어를 상징하는 극장 간판에는 ‘Jazz Singer’가 보인다. 


또 다른 팝 아트의 선구자로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있다. 파올로치와 해밀턴은 런던의 팝 아트의 첫 단계를 시작한 인디펜던트 그룹(IG, Independent Group)의 일원으로 대중적 소재를 객관적으로 사용하여 인간의 이미지를 변형하고, 기계와 인간의 일상품 같은 주제에 대해 관심을 표현했다.


 파올로치_T06934_10.jpg

Eduardo Paolozzi, Real Gold, Printed papers on paper


파올로치는 한 강연에서 “상징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계를 계산기 또는 보석으로, 문을 화판 또는 예술 오브제로, 두개골은 서양에서는 죽음, 동양에서는 달의 상징으로, 카메라는 사치스러운 것 또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그의 예술에서 모든 오브제와 이미지의 의미적인 확장은 무정형의 희미한 세부를 나타나고, 그것의 거친 질감은 유동성과 파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파올로치의 생각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진지한 취향, 다중 연상 이미지에 대한 신념,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상화작용에 대한 감각등과 같이, 팝 아트의 전개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1)

 


-제2기(1957~1961): 구상적 경향에서 추상적 경향으로

제2기 팝 아트는 파올로치와 해밀턴이 왕립예술학교에 교편을 잡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피터 블레이크, 윌리엄 그린, 리처드 스미스가 있다. 그들은 대중 매체의 기호, 색채, 빛이 우리 감각을 공격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지각이 과거와 다르게 변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고, 일상적 소재를 비재현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나 형태로 변화시켰다.


팝아트_피터블레이크1.jpg
Peter Blake, On the Balcony, Oil paint on canvas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터 블레이크의 작품 '발코니에서'이다. 피터는 자신이 수집한 온갖 잡동사니를 그렸다. 삼각기, 담뱃갑, 통, 잡지 LIFE 표지, 음료 병 등 평범한 소비재가 작품에 등장한다. 사진의 왼쪽에서 마네의 발코니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작품이 왜 ‘발코니에서’인지 알 수가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작품과 대중문화를 똑같은 수준에 위치시킨 것이다.



-제3기(1961~): 새로운 감각에 의한 성숙한 구상기

제3기는 왕립예술학교의 새로운 그룹이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창조적 행위를 그들이 항상 살아온 도시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작품의 특성으로는 그래피티와 대중매체의 이미지 같은 전형적인 생산품이나 오브제의 사용이 있다.


 팝아트_앨렌존스perfect-match.jpg

Allen Jones, Perfect Match, Oil on canvas


앨런 존스는 이 작품에서 사회적, 문화적 과도기에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다. 가슴과 엉덩이, 날씬한 다리와 감각적인 입술이 바로 그것이다. 풍자화처럼 보일 정도의 진부한 표현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상업적이며, 강렬하고 저속하며, 전적으로 인공적이다. 여기서 앨런 존스의 정통미술의 귀족적인 여성 이미지에 대한 극단적인 도전을 볼 수 있다.

  


로런스 앨러웨이는 ‘영국의 팝 아트가 뉴욕의 팝 아트의 밀도와 엄격함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마도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신중하게 동화시키며 힘의 균형을 맞추고 완전한 결정을 뒤로 미루는 영국인의 성향 때문일 것’2)이라고 했다. 앨러웨이의 말에서 내가 왜 영국 팝 아트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빼곡하게 들어차지 않은 영국 팝 아트에서 매력을 느낀 것이다. 나는 캠벨 수프를 식료품점 보다 워홀의 그림에서 먼저 봤기 때문에 캠벨 수프를 하나의 예술 오브제로 접하였고, 리히텐슈타인의 망점은 국내 카툰의 그림체가 아니었기에 지극히 서양적인 것이랑 인상을 받았다. 그에 비해 영국의 팝 아트는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오독하지 않을 수 있었다.


1)루시 R. 리퍼드 외, 2011, p. 39~40 참고

2)루시 R. 리퍼드외, 2011, p.76


<참고문헌>

루시 R.리퍼드·로런스 앨러웨이·낸시 마머·니컬러스 캘러스. 『예술과 상품의 경계에 서다 : 팝 아트』. 정상희(역). 시공사, 2011

클라우스 호네프. 『팝 아트』, 지향은(역). 마로니에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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