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이 온 탓일까, 10월엔 오랜만에 전시를 관람했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부터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기대했던 《서도호》 개인전과 제목만 보고 호기심으로 발걸음이 향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그들의 시선을 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안정적인 공간; 집

서도호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긴 이유는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집’을 구현해내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캐리어로 이동할 수 있는 집’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전시에는 그가 제작한 많은 집들이 등장한다. 서울의 한옥부터 다양한 국가에서 그가 거주했던 집을 재현한 작품에서는 ‘인간이 입는 가장 큰 옷’이라는 집에 대한 그의 해석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시에서는 집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집 전체에 한지를 붙이고 수개월간 탁본을 뜨며 완성한 작품은 그저 스쳐갔던 집의 모든 공간을 모조리 문지르며(rubbing) 그 공간이 가진 외형과 공간에 깃들어있는 시간, 기억들에 대한 사랑(loving)을 볼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공간이라면 망설임 없이 집이라고 답하는 나에게, 집은 ‘안정감’의 공간이었다. 안정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으며 더욱 견고해지는 것. 그리고 이 견고함이 주는 편안함. 그것이 나와 집의 관계성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서도호는 집을 몸의 확장으로 해석했다. 서울을 떠나 낯선 곳에 거주하며 집에서 이질감을 경험했던 그는, 매일 입는 옷처럼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가변적 ‘집’을 제작했고, 고정된 것이라는 집의 통념을 깨뜨리려 했다.
전화기, 보일러, 문손잡이처럼 자주 사용하기에 익숙하고 늘 그 자리에 있던 집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그는 천과 촘촘한 바느질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완성해 낸다. 매일 같은 곳에서 묵묵히 동일한 역할을 해내는 사물들은 집에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요소들이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한 것들이 작품화되면서 매일 내가 사용했던 것의 정교함과 그들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재창조한 ‘집’을 본 후 돌아온 나의 집은 역시나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뭔가 다르다. 나와 가족의 손길과 추억이 쌓인 또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하루 종일 조선의 왕이 살던 궁, 유명한 작가가 살고 재해석한 아름다운 집,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아파트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눈에 담은 하루임에도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나의 집이 유독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 가족이 매일을 보내며 손길을 덧대고 추억을 만든 이 집에 대한 애정이 한층 쌓인다.
창밖을 보면 보이는 것들; 자연

이대원 전시를 보게 된 연유는 앞서 언급했듯 전시의 제목 때문이다.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에 ‘슬픔’이 떡하니 있는데 슬프게 하는 것이 없다고?
이대원의 작품 중에서도 눈을 사로잡은 것들은 그가 그려낸 창밖의 풍경과 그의 아버지가 그의 대학 입학 기념으로 구매했던 농원을 그려낸 그림들이다. 그가 살면서 매일같이 마주한 익숙한 풍경을 그는 그만의 기법으로 낯설게 만든다. 자연 풍경임에도 형광색 등의 색감을 추가하거나, 나전칠기를 떠올리게 하는 터치를 활용하는 등 정적인 자연에 그만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가 재해석한 자연은 팡파레가 터지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유화치고 가벼운 듯 느껴지는 붓의 터치감과 화려한 색 조합은 ‘행복’을 떠오르게 한다. 산만하다가 아니라 그가 눈에 담았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작품을 감상하며 느낄 수 있게된다. 놀라운 점은 그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지 않고 늘 같은 농원에서 나무, 산, 꽃을 바라보며 매번 다른 그림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작품마다 특색이 강하여 액자는 창틀이요, 액자 속 작품은 창틀 속 풍경처럼 느껴진다. 미술관에서 걸음을 땔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보는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기에 익숙한 풍경에서 매번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낸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들어갈 때보다 세상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느낌을 강하게 경험했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같은데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그냥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져 미술관을 나와 내리 1시간 이상 쭉 걸었다. 눈에 담은 세상은 이전과 같이 차가 다니고, 높은 나무와 건물이 섞여 있는 곳이었는데 내 눈은 그들을 좀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매번 다르게 보고 있나? 익숙함으로 치부하며 어느순간 지나쳐버리고 마는 것은 아니었나? 두 전시는 ‘익숙함’이라는 벽을 허물어준다. 또 이 감정들이 익숙해지면서 또 다른 벽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당연한 일상을 찬란하게 바라본 이들처럼 무뎌짐을 경계하는 시야로 내가 사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두 작가의 세계에 잠시 들어가 보며 익숙함 속에서 놓친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