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지구화 시대에서의 정체성 탐구: 현대미술가 서도호 [미술/전시]

글 입력 2022.12.1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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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즘과 유목적 미술가


 

글로벌리즘, 전지구화, 초연결의 동시대 미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목적(Nomadic)’ 특징일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전지구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89년부터 지금까지 전지구적 미술을 표방하는 작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심화되어왔다. 천안문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1989년의 상징적 사건들은 서구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제 1세계와 동구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제 2세계의 장벽을 와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 1세계와 피식민지이자 개발도상국이었던 제 3세계의 경계 또한 와해시켰다.

 

대도시와 식민 주변이라는 이분법까지 와해되기 시작함에 따라 미술계에서도 다양한 반향이 일어났다. 서구 백인 남성으로 대변되던 모더니즘적 주체가 보여주는 이전의 주류 미술이 아닌 비서구 비백인의 미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리즘의 시작이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지구화를 표방하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 행사인 비상업적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제3세계 출신 큐레이터들의 활약은 점차 국가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는 후기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했던 타자성에 대한 담론들이 결국 타자를 중심부로 이동시켰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거점 도시를 이동하며 전시와 작업을 병행하는 유목적 미술가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이동의 삶을 전제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작품을 완성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오늘 소개할 서도호가 바로 대표적 유목적 미술가(Nomadic Artist)이다.

 

 

 

전지구화 시대에서의 정체성 탐구: 현대미술가 서도호


 

서도호는 해방기 새로운 수묵화 탐구에 앞장섰던 화가 서세옥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서울대 동양화과에 진학하고, 졸업 이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조형 방식으로 점차 자신의 작업 영역을 넓혀갔다.

 

이 당시 서도호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접하며 이에 대한 차이를 온몸으로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되려 자신이 한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문화적 정체성을 깨닫는 이질적 경험을 마주했다고 한다. 이후 서도호는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와 개념을 통해 선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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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2013, 합성섬유, 금속 프레임, 15.3 x 12.83 x 12. 97 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치 장면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이러한 서도호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리즈 작업이다. 마치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작품이 표방하는 문제는 보다 심오한 정체성의 문제를 담고 있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집 속에 집이 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집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을 모델로 지은 아버지 서세옥의 가을 카피한 것이고, 이를 둘러싼 바깥의 집은 자신이 미국 유학 초창기에 지낸 빌라 건물을 카피한 것이다. 각 건물 카피는 실제의 건물의 크기를 반영했다.


작가는 ‘집’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보았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던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한옥집에서의 추억을 예술가로서 자신이 직면한 정체성의 문제, 공간과 경험에 대한 문제에 녹여 표현한 것이다.


은조사의 사용 또한 의미심장하다. 속이 비치는 은조사는 사라지지 않고 중첩된 채 계속해서 존재하는 기억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쉽게 해체되고 접어 이동할 수 있는 천의 가변적 속성은 추억, 정체성의 속성과도 유사하다 볼 수 있으며, 여러 도시를 이동하는 유목적 미술가의 특징과도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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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떨어진 별 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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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떨어진 별〉, 2011, 혼합매체, 78 x 96 x 38 cm,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서도호의 《떨어진 별》연작 또한 서도호가 가진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효과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위 사진은 미국 유학시절 살았던 브루클린의 아파트와 서울의 한옥집을 1/5 크기로 줄여 만든 설치-조각 버전이고, 아래 사진은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립대 공대 건물에 설치한 버전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제작한 집(작품)을 크레인으로 올려 설치했다.

 

해당 작품은 서울의 한옥집에 살던 자신의 존재가 미국 한복판에 날아들어와 박힌 듯한 이질적인 문화 경험에 대한 작가 자신의 표현이다. 직접적인 만큼 효과적인 서도호의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가 충돌하는 시공간과 문화적 전위 과정을 위트있고 날카롭게 해석했다 평가받는다. 실제 관람자는 충돌하는 건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경험했던 문화적 전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표현 방식과는 달리 작가는 충돌이 아닌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오감이 말을 듣지 않아 무디게 적응했던 미국 생활 초반의 기억을 반영한 것으로, 맞닿고 통과되고 결합되는 시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이외에도 서도호는 유학, 문화 충돌(혹은 소프트 랜딩), 군대 등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국내외의 지명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미술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위에서 본 《집 속의 집》이나 《떨어진 별》연작 모두 지역적 이동에 따라 제목 뒤에 지역 이름을 새로 붙여나갈 뿐 작품 자체는 변화하지는 않는다. 자유로이 이동하는 유목적 특징을 보이지만 지역과의 상호 교류나 소통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동어반복적인 작품들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때문에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아우라를 등에 인 주관주의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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