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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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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0대 후반 추정. 직업, 중학교 과학교사. 성격, 소심하고 적당히 장난스러움. 이 사람은 훗날 지구를 구원할 영웅이 된다. 이 명제를 읽고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뭘까.

 

1. 어이없음

2. 그럴 수도 있지

3. 뻔하다

 

뻔하다. 클리셰. 나는 흔히 이 전개를 클리셰라고 부른다. 평범하지만 숨겨진 재능이 있는 주인공, 그를 비웃거나 따돌리는 주변인.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을 구하는 건 결국 이 무시당했던 주인공이고 그는 그렇게 영웅이 된다.

 

더할 나위 없이 상투적이고 뻔하다. 주인공도, 그를 둘러싼 환경도, 그에게 닥친 역경과 시련도. 그러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클리셰를 깔끔하게 색칠해 버린다. 난생 처음 보는 파장의 색으로. 어떤 색깔인지는 직접 본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클리셰를 해부하면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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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영화가 뻔함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은 무엇인가. 단순히 반전을 넣었기 때문인가. 예상을 뒤집는 설정 덕분인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클리셰를 회피하려 들지 않는다. 클리셰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아주 천천히, 현미경으로 그 껍질을 벗겨낸다.

 

중학교 과학교사 라일리 그레이스는 처음에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조차 모른다. 우주선 안에서 눈을 떴을 때 그에게 남은 건 기억 몇 조각과, 두 구의 시신과, 산더미 같은 물음표뿐이다. 영화는 이 물음표를 하나씩 걷어내는 방식으로 전진한다. 플래시백과 현재가 교차하며, 관객은 그레이스와 함께 조금씩 진실에 다가간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스스로를 발견해 나가는 구조, 이것도 클리셰라면 클리셰다. 그런데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레이스가 기억을 되찾는 방식이 '감정'이 아니라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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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을 때, 거기엔 눈물이 있고 음악이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 감정이 방아쇠가 된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다르다. 그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추론한다. 산소 농도를 확인하고, 중력을 계산하고, 빛의 각도를 분석한다. 기억보다 먼저 논리가 도착한다.

 

이것이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여타 SF 영화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 영화는 과학을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과학을 언어로 사용한다. 그레이스가 우주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났을 때,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몸짓도 아니고 ESP도 아니고 기적 같은 텔레파시도 아니다. 음파의 주파수다. 진동수를 맞추고, 패턴을 분석하고, 수학으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 장면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울컥했다. 왜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저 방식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진짜로 우주에서 다른 존재를 만난다면, 감동적인 눈빛 교환이 먼저가 아니라 저 지난하고 치밀한 주파수 맞추기가 먼저일 것이다. 영화는 그 진짜를 택했다. 그리고 그 진짜가 어떤 판타지보다 더 깊이 심장을 건드렸다.

 

 

 

로키, 혹은 우정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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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될 존재는 아마도 로키일 것이다. 거미처럼 생긴, 아니 거미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외계 생명체. 그레이스는 그를 로키라고 부르고, 우리도 그렇게 부르게 된다.

 

로키는 SF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외계인 캐릭터가 될 자격이 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외형이 기발해서가 아니다. 그가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단순하지 않아서다. 우리는 그를 보며 이질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친근함을 느낀다. 공포를 느끼지만 동시에 안도를 느낀다. 이 복잡한 감정의 정체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그것은 '공감'이다.

 

어떻게 외계 생명체에게 공감이 가능한가. 영화는 그 불가능을 아주 영리하게 해결한다. 로키 역시 그레이스와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별을 살리기 위해 혼자 파견된 존재. 막막하고 두렵고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임무를 짊어진 존재. 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달라도, 그 외로움의 농도만큼은 같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처음 서로를 인식하는 장면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안도였다.

 

아, 저 둘은 혼자가 아니구나. 무방비하고 냉정한 우주 속에서 피어오른 그 안도감이 영화의 절반을 먹여 살린다.

 

 

 

영웅적 클리셰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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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중학교 과학교사. 소심하고 적당히 장난스러운. 이 사람이 지구를 구원할 영웅이 된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영웅의 조건은 명확하다. 강인한 의지, 흔들리지 않는 신념, 자기 희생의 숭고함. 영웅은 두려움 앞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여야 한다. 그레이스는 그런 영웅이 아니다. 그는 두렵고, 돌아가고 싶고, 버겁다. 임무를 거부한 적도 있다. 거창한 사명감보다 소박한 생존 본능이 그를 더 자주 움직인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묻는다. 그게 왜 영웅의 조건에서 탈락해야 하는가. 오히려 더 나아가 왜 그 상황에서 영웅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레이스가 결국 해내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포기를 모르는 철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문제 앞에서 자동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어떻게 하면 될까. 이 조건에서 가능한 방법은 뭘까. 절망을 감정으로 받아내지 않고 변수로 치환하는 습관. 그것이 그를 지구에서는 영웅으로 만들었고, 스스로에게는 다시 인정할 수 있는 과학자로 만들었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가장 쉽게 놓치는 영웅의 조건이다. 거대한 용기가 아니라, 지금 앞에 놓인 문제를 직시하는 성실함.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옆에서 계속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 숫자 속에서 공감을 잃지 않는 것.

 

 

 

포물선이 부메랑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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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향해 쏘아 올린 포물선. 태양을 갉아먹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혼자 발사된 한 남자의 궤적은, 결국 지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돌아올 수 없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지구는 살아남는다. 그레이스는 그러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다르다. 그레이스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삶은, 그가 처음 상상했던 귀환의 형태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 결말 앞에서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포물선이 지구로 돌아오지 않아도, 그 궤적 자체가 이미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혼자 날아간 사람, 그 여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우정을 얻은 사람,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사람.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전부다.

 

본 적 없는 빛깔의 프리즘, 결국은 뻔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이 영화는 뻔한 클리셰를 쓰고도 뻔하지 않은가.

 

답을 찾았다. 클리셰는 반복된 이야기가 아니라, 반복해서 사랑받는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건 그게 낡아서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 이야기가 필요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클리셰에 새 옷을 입히지 않았다. 클리셰가 왜 클리셰가 되었는지를, 그 뼈대의 진실을 다시 꺼내 보여줬다. 난생 처음 보는 파장의 색이라고 느낀 건 그래서였다. 빛 자체는 같았다. 다만 그것을 굴절시키는 프리즘이 달랐다.

 

그 프리즘의 이름은 과학이었고, 우정이었고, 그리고 한 소심한 중학교 교사의 멈출 수 없는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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