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고등학생 시절, 주변인 인터뷰를 진행한 적 있었다. 휴고 우에르타 마린의 <예술가의 초상>을 감명 깊게 읽은 후 였다. 우리 시대의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의 초상을 폴라로이드로 직접 찍고, 인터뷰와 함께 실은 아주 두꺼운 양장본의 책이었다. 나는 마린이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담고 싶었다. 철없게도 엄마의 친구들, 즉 내 친구의 엄마들께 다짜고짜 부탁을 드렸다.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 그렇게 만난 독대한 네 명의 사람은 전문 인터뷰이도 아니고, 그저 딸 뻘의 학생일 뿐이었던 내게 그들도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일 타는 버스 앞자리의 저 사람도, 오늘 하루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모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삶을 살아가느라 쉽게 잊는 사실이다. 나 역시 잠시 그들과의 특별했던 대화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와중 아트인사이트의 [프로젝트 당신] 섹션에서 지인 인터뷰를 기고할 수 있다는 문자를 보고, 문득 이 인터뷰가 떠올랐다. 나만이 이들을 알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지면을 통해 내가 던졌던 몇 가지 삶에 관한 질문과 이들의 인상적인 답변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질문들에 대한 이들의 주옥 같은 이야기가 와닿길 바라며.

 

그리고 이 인터뷰를 진행한지 약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네 사람에게도 다시금 묻고 싶다. 그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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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희진 씨와의 인터뷰


 

Q. 요즘 가장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BTOB 덕질. 사실 지금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네요. (웃음) 주변에서 아무도 내가 이럴 줄 몰랐거든요. 이건 완전히 우연한 기회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이게 성격인 것 같아요. 뭔가 일단 항상 계획대로 잘 안돼! 하지만 무엇에 꽂히면 그걸 또 엄청 열심히 해요! 한때는 경매에 꽂혀서 작은 아파트 하나를 바로 낙찰 받고 셀프 등기까지 해봤어요. 내가 또 지금 걔에게 미쳤잖아? (걔=BTOB 창섭, 문희진씨는 멜로디이다.) 뭐 하나에 꽂히고 미치면… 정말 열정적으로 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공부를 더 해서 대학에 가볼까 싶기도 하고, 첼로 같은 악기도 하나 배우고 싶어요. 지금 해야 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항상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지금 내 마음 속에선 심심할 겨를, 외로울 겨를이 없어요. 그렇게 사는 거에요, 항상 좀 열정적으로. 남들이 봤을 때 쓰잘데기 없다고 해도, 내 인생은 아주 행복하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 내 만족이에요. 내가 만족하면 행복한 거지. 덕질을 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남편이 걱정을 해. 바람날까. (웃음) 하지만 저는 가정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기도 해요. 저를 너무 모르는 거죠. 덕질과 가정은 별개, 다른 범주예요. 서로 마음의 방이 다르다고 할까? 덕질하면 갱년기도 안온다더라고요. 지금 휴대폰이 십대 휴대폰이 된 것 같아.

 

 

Q. 당신이 오랫동안 간직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궁극적인 꿈, 목표라면 ‘Well-Dying’이에요. 제가 유명인은 아니지만, 분명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정점은 찍어봐야 ‘아, 여기가 정점이구나’ 싶고, 내려와야 ‘아, 정점이었구나’, 하는데, 지금은 아직 정점으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저는 내려올 때가 되었을 때 정말 잘 내려오고 싶어요. 오를 때는 정신없이 오르지만, 내려올 때는 길을 돌아보면서 내려와야 하거든요. 죽음을 맞이할 때, 관뚜껑에 못 박힐 때 후회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해야 잘 산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순간에 후회없이 잘 살았다,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추상적이지만, 그게 목표예요.

 

 

Q.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나 답게’ 행동하는 것이 아름다움 아닐까요? 가지고 있는 이름표에 어울리는 사람. 엄마는 엄마 답게, 학생은 학생 답게, 나는 나 답게.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기준이에요. 각자의 신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신념에 맞춰서 무엇-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시간이 지나고 신념이 바뀔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의 행동을 후회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어요. 어쨌든 계속 성숙하고 발전하는,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다운 사람이 좋지 않을까? 그게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아요! 추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더라고요. 결국 삶 자체를 수양자, 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답은 없어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 답이 있다면 누구든 똑같이 살겠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지혜와 20대의 젊음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성숙도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지만… 인생은 모든 게 등가 교환이니까. 좋은 점만 취할 수 없죠. 하지만 14살 어린 창섭이를 오빠라고 못 부르는 점은 좀 후회되기는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로 돌아가진 않을 거야.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문희진 씨는 뜨겁게 빛나는 불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열정을 다해 살아왔다. 그사이 존중과 책임을 다하며. 그가 몰입하는 삶은 여지없이 행복으로 가득하길.

 

 

 

#2. 조혜영 씨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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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과연 ‘가장’ 중요한 걸 뽑을 수 있을까요? 반백 년을 살다 보니까,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이 중요한데, 내가 그걸 인지하느냐, 인지하지 못하느냐 인 거죠. 그래도 꼽자면 아이 낳는 그 순간, 내가 엄마가 되는 그 순간이 특히 엄청 내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기억에 남는 순간인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그 전까지는 사실, 전 좀 남들 사는 것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았거든요. 근데 아기를 낳는 순간부터 제가 주도가 되어서 이 또 다른 인생을 어떻게 끌고 만들어가느냐 실천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너무 잘 하고 싶고, 애살스럽게 하고 싶고 그랬어요. 다만, 뭐든 결과에 집착하는 건 그다지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막 우여곡절 온갖 상황을 경험했던 그 모든 과정들이 훨씬 더 내 인생에 큰 시간이었거든요.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은 이렇게 되 뇌이는 걸 수도 있어요. 항상 100%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인생이기 때문에.

 

 

Q. 자기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큰언니가 어릴 때부터 저에게 초록 같다고, 너에게 어울리는 색깔은 초록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그래서 무슨 색깔을 떠올리라고 하면 저는 항상 초록을 떠올렸어요. 근데 저는 옷을 고를 때는 또 파랑을 많이 고르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음… 결국 주변의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들이 무의식 중에도 저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최근에 아이들도 떠나고, 제 시간이 워낙 많아져서, 제 자아를 돌아볼 시간이 엄청 많이 생겼어요. 근데 ‘내 자아가 뭐지?’라는 기본적인 의문이 자꾸 드는 거예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지, 내가 진짜 잘하는 건 뭐지.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보니, 이렇게 단답형으로 탁 떨어지는 나에 대한 질문들이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저는 초록의 싱그러움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 인생 후반부는 제 자아의 색깔을 분명하게 찾는 게 목표예요.

 

 

Q.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내면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에 굉장히 아름다움을 느껴요. 특히 물질적인 것, 즉 돈을 쓰는 것 보다, 이 상황에 저 사람이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름다워요. 일상생활에서 친구들 사이에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이라 그런지, 유기견을 도우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대단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저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기 생활을 포기하고 저런 가치에 저만큼 투자를 하는 마음은 어디서 나는 걸까.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동시에 저 역시도, 동물들에게 눈이 많이 가는 게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어릴 때는 돌봄을 받기보다는 방목형 이었거든요. 그 시절에는 보통 분위기가 학교 갔다 오면 사교육이 별로 없었고, 피아노 학원 다녀오는 거 정도였고, 막 동네에서 고무줄 뛰기 하다 그냥 이제 저녁밥 먹을 때 되면 ‘밥 먹으러 와’ 부르고. 자유로웠죠. 그때 도둑 고양이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도둑 고양이들이 그냥 이렇게 노는 걸 보고 있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했어요. 근데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저 아이들에게 이렇게 눈길이 많이 가는 걸까? 자유롭게 다니는 저 아이들이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서?’ 자꾸 시선이 많이 가는 게, 저의 어린 모습에 겹쳐 보여서 인가, 라는 생각을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조혜영 씨의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자아와 타인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그 평온한 미소. 싱그러운 초록과 쨍한 파랑 사이 그녀만의 색을 찾았기를.

 

 

 

#3. 신경미 씨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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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한테 집중해서 하는 취미가 있나요? 혹은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사실은 최근부터 저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찾아왔어요.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에 가면서 첫째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늦게 오니까, 이제 일주일에 한 3일 정도는 제가 온전하고 편안하게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거든요. 그래서 골프를 시작했어요. 어느정도 시간을 쓰면서 유쾌해질 수 있는 일이길 바라고, 잘 치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냐 하는데, 그냥 저는 뭐든 오롯이 뭘 하는 게 그냥 좋더라고요. 그리고 도전이라, 얼마 전에 ‘나는 80세까지 어떻게 늙어갈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렵네요. 또 한편으로는 피아노 말고 악기를 조금 다른 걸 한 번 배워볼까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한 계기가, 어떤 사람이 저와 나이도 비슷한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때 단체 속에서 조화롭게 내 소리를 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젊었을 때 그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놓친 부분들, 세상에 대한 많은 호기심 같은 것을 매체나 책으로 채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진짜 오롯이 나를 위해서요. 그게 자아실현을 하는 거죠. 그리고 남편이랑 안 가본 곳으로 얘기 많이 하면서 여행 다니고 싶어요.

 

 

Q. 가장 최근에 본 영화나 책이 있을까요?

 

가장 최근에 보는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요.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사랑을 찾아서, 자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의 영화. 영화 자체에 대한 공감을 떠나서 그 여성, 줄리아 로버츠가 배역을 맡은 그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들었어요. 나도 그냥 저렇게 한 번 떠나볼까, 나를 그렇게 잡았던 건 뭘까, 자녀와 육아 등 내가 원해서 사랑하고 많은 걸 했지만 결국 나는 왜 저런 것을 존경할까, 나는 왜 나를 위해 더 시간을 쓰지 않고 가정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썼을까.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그 줄리아 로버츠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사랑과 사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주인공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사람도 만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구해요. 근데 궁극적으로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 그게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에너지를 써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영화의 정서적인 지점이 아무래도 우리나라와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이 이혼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만나는 거기서 오는 공감은 부족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찾을 때 저는 공감이 많이 갔어요. 그래서 모토라면, 모토라고 할 수 있겠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Q.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뭘까요. 보이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관념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죠. 결국 ‘그렇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인정이 되는 것이 아름다운 것 같네요. 사실 철학적인 건 아닌데, 그냥 저는 질문자님이 지금 너무 아름답거든요. 진심으로 네가 그 질문을 했을 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게 아름답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오늘 너와 내가 대화하는 이 모습이 진짜 아름다운 거예요. 사실 누군가가 이렇게 인생을 물어봐 준 게 처음이에요. 왜냐면 물을 일이 없어요. 희로애락이 뭔지. 그리고 저는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많이 느껴요. 지원이네 엄마도 우리 딸 연어 좋아한다고 시간이 촉박했는데도 샐러드집에 들러서 사가지고 가는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요. 어저께는 우리 둘째 때문에 살짝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깨우러 들어갔는데, 토끼 인형을 꼭 안고 자는 거에요. 근데 그게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 마음과 공간의 편안함, 그 아름다움이 전 좋은 것 같아요.

 

신경미 씨를 떠올리면, 따사로운 저녁 노을이 들어오는 그녀의 부엌에 앉아 인터뷰하던 당시의 순간이 함께 떠오른다. 폴라로이드로 나를 찍어주며 지금 이 시간이 아름답다던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같은 벅참을 느꼈기를.

 

 

 

#4. 정재연 씨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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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움을 느끼나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 걸까요. 그냥 저는 정말 두 딸과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별 것 아닌 걸로 티키타카 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그래요. 규정 지을 순 없어요. 말 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다 그렇겠지만. 근데 전 사람이 없으면 너무 외롭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혼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근데 전 혼자 뭘 하는 거에 거리낌은 없어요. 전 차가 없을 때도 혼자서 버스 타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많이 걷고… 차가 생기고 난 뒤로는 혼자 음악 들으며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좋더라고요. 옛날에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과 멀어지는 게, 인간관계를 잘못 하는 건가 했어요. 근데 사실 그냥 성향과 몰입의 차이인 거죠. 아이들을 낳고, 키우게 되면서 주변의 다른 삶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기도 했어요. 인간관계로 감정이 요동치는 시즌도 분명히 있었고요. 하지만 요즘은 별로 그런 거에 집중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한 시절만을 함께 보내고 시절 인연으로 남는 것도,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거나 다시 연결되는 것. 모두 말그대로 ‘인연’인 것이죠.

 

 

Q. 삶을 살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세월이 지나면서 성격이 좀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전 제 성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웃음) 한 번도 살면서 ‘너 진짜 성격 이상하다.’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런 제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근데 어릴 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드는 아이였어요. 전학을 왔는데, 너무 수그리고 있어서 선생님이 저를 딱 찍어서 발표도 막 시키고, 할머니가 일부러 오빠(삼촌)따라 웅변학원도 보내고 그랬죠. 머리를 잘랐는데 제 마음에 안 들면 유치원도 안 가고 사라져버리고. 그럼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불러와서 ‘재연이 저기 서있던데’ 했어요. 그러니까 감정표현을 하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삐죽삐죽 제대로 못했어요. 나 이게 싫다, 좋다, 그런 말을 많이 안 했네요. 그런 아이였어요. 막 사생결단을 내는 게 너무 싫었어. 그렇게 소심했는데,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일련의 행동들이 다 계기였고, 다 나를 변화시키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고. 물론 사람은 참 잘 안 변해요. 저도 어제랑 오늘이 확 달라지거나 시끄럽게 변한 게 아니에요. 여전히 시끄러운 건 싫은데. (웃음) 그냥 할 말은 거침없이 하되, 조용하고 둥그런 표현으로. 많이 더해지기도 하고, 용감해지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될 거에요.

 

흐르는 시간처럼, 물처럼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정재연 씨의 삶의 태도가 뭇내 부럽다. 나도 그녀를 닮아 유연하지만 계속해서 움직이는 쪽빛 물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듯 닮은 서로를 보며, 앞으로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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