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습하고 강렬한 햇살과 뜨거운 바람, 그리고 달궈진 콘크리트 도로는 실제 기온인 35~38도보다 더 덥게 느껴지게 만든다. 외출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에어컨 바람을 세게 쐬고 싶은 욕구가 밀려온다. 그저 빨리 시원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다 보면 여름이 왜 이렇게 긴지, 괜히 미워지기도 한다.
나는 더위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편이다. 영상 25도에도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고 잘 만큼 추위에 약하다. 그래서인지 더위는 제법 잘 견디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습하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의 더위만큼은 나도 버티기가 힘든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집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녀석들도 더위에 지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털이 있는 동물이니 사람보다 더 덥게 느끼겠지. 예전에 언뜻 읽은 글에서 고양이는 체온 조절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추위와 더위 모두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 축 늘어진 모습이 괜스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은 40도에 가까웠던 지난주보다 기온이 조금 내려간 덕분인지, 서늘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서인지 낮잠만 자던 고양이들이 다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여전히 더워서 땀이 나고 움직이기도 싫은데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여름의 더위를 즐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 어린 시절에는 ‘이열치열’이라며 더위 속에서도 신나게 뛰어놀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여름은 시원한 곳에 누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큰 힐링과 휴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야외에서 보냈던 여름의 소소한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가까운 15분 거리의 초등학교에 배정받지 못하고 집에서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어머니가 가끔 나를 데리러 오셨는데, 여름날에는 나의 짧은 다리와 더운 날씨, 무거운 책가방까지 더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힘들었다.
어머니는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무거운 책가방을 자주 들어주셨다. 덕분에 조금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뜨거운 햇빛 아래 짧은 다리로 집까지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 들르곤 하셨다. 그렇게 마트의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나면, 어머니는 저녁거리와 함께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하나씩 사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설레임 키위맛을 선택했다.
지금은 단종된 지 한참 된 설레임 키위맛. 생과일 키위주스를 얼린 것처럼 진한 과육의 맛과 부드러운 슬러시 같은 식감이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다. 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나는 더운 여름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햇살도 싫었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땀을 흘리며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의 햇살 아래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야말로 내가 여름을 즐기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름을 즐긴다는 것은 반드시 더위를 이겨내며 밖으로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처럼 쨍쨍하고 맑은 날씨 속에서 땀을 흘리며외출하고, 더위를 이겨내며 운동하고, 휴가를 떠나는 것도 분명 여름을 즐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또 다른 여름을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여름을 잘 보내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 속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저마다의 소소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여름을 만끽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것처럼, 지금 이 글을 쓰며 서늘한 선풍기 바람을 맞는 이 작은 행복도 올해 여름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