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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상실의 빈자리, 그리고 믿음 - 상자 속의 양 [도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by 김희정 에디터
2026.08.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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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상자 속의 양> 각본집을 읽어 보았다. 가족과 사회의 문제를 다뤄온 고레에다 감독의 이번 신작은 사뭇 달랐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꺼내 들고 SF 장르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상자 속의 양』은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가 죽은 아들과 똑같은 외모와 목소리를 지닌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멈춰 있던 가족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지만,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과 현실, 상실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족은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젠 일상생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과제 첨삭을 위해 사용하던 AI는 이제 클릭 한 번이면 과제 하나를 통째로 완성해 주기도 한다.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이 편하면서도 두렵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자 속의 양>의 카게루가 그 대표적인 예다.


카게루는 건축가 부부 오토네와 켄스케의 아들로, 불의의 사고로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던 부부에게 아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카게루와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를 입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게루와 똑 닮은 로봇은 외형과 말투뿐만 아니라 아이의 기억까지 그대로 갖고 있었다. 오토네와 켄스케는 결국 카게루 로봇을 입양하여 함께 살게 된다.


죽은 아들과 똑 닮은 휴머노이드가 다시 집으로 찾아온다는 건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카게루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존재를 카게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부부의 기억 속 카게루와 휴머노이드 카게루 사이에는 결국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를 자각하는 순간 부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카게루와 같은 외형에 같은 기억까지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상자 속의 양을 꺼내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형체 없는 믿음. 참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만, 결국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게 되는 것이 인간 마음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진실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을 알면서도 인간은 계속 믿음을 이어간다. 과거의 카게루를 놓지 못하는 부부. 그리고 점점 자신만의 자유의지를 갖게 되는 카게루. 이들을 연결 짓는 건 과거의 기억과 현재에 대한 작은 희망뿐이다.


그렇지만 결국 부부는 카게루를 보내준다. 휴머노이드 로봇과의 계약을 종료하게 된 것이다. 카게루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와 이별할 때, 이들이 느낀 감정은 가족애였을까.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슬픔이었을까. 어떤 형태이든 이들이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진실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카게루와의 이별은 부부에게 새로운 시작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잃은 그날에 멈춰 있던 부부에게 휴머노이드 카게루가 찾아왔고, 이 아이와 함께한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와의 이별이 모여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멈춰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형체보단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고레에다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각본집으로 처음 읽어보게 되었는데, 내 마음대로 상상해서 영화의 장면을 그려나가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글로 읽으니 대사를 곱씹으며 한 장면씩 상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영화를 깊게 음미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각본집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을 직접 상상하고 대사를 천천히 곱씹으며 작품을 따라가는 시간은,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깊게 만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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