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어릴 때 가졌고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고 믿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 감정이다. 덜어낼수록 더 반짝이는 이 동심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과 수많은 어른들은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믿는다.
동심과 어른은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며 경험이 쌓이고, 나만의 주관이 생기고, 현실을 바라보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는 자기 확신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동심을 더 이상 순수함이라 부르지 않는다. 순진함이라 명명한다.
언제부턴가 모두가 가시 돋친 세상에서 혐오와 비난만이 남았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 변화에 회의적인 것은 당연해졌고,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집단을 공격하는 일, 반항이 되어 버렸다. 쥐 죽은 듯 입 다물고 사는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사회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동심을 버리는 일이라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별을 보며 소원을 빌 여유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믿을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시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꿈을 이야기한다.
퇴근 후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만들어 주는 부모님,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자고 말하는 TV 속 어른들, 매일 새로운 꿈을 꾸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꿈을 아이들에게 맡긴다. 어린아이들이나 볼 법한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놀이동산도 모두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남겨 놓은 산물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가슴 두근거리는 미래를 상상하라고 말한다. 현실에 가장 오래 머문 사람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꿈을 건넨다.
어른들은 이미 안다. 마법 소녀는 존재하지 않고, 말하는 장난감도 없으며, 슈퍼맨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동심을 품고 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이들도 같은 설렘을 느끼길 바라고, 같은 환상을 경험하길 바라며 키즈 콘텐츠를 만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재미있는 이야기보다도, 그 환상을 끝까지 지켜 주려 애쓰는 스크린 뒤 어른들의 노력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는 어른들이 만드는 어린이들의 꿈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어른들에게도 사실 사라지지 않은 동심이 존재한다는 반증 같기 때문이다. 혁신보다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을 위한 예술이 앞으로도 계속 스크린을 채웠으면 한다.
동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것이다.
나는 ‘맡긴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나의 일부를 내어 주면서도 끝내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어린 우리를 위해 그랬듯, 지금의 우리도 누군가의 동심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