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각종 SF 세계관에 매혹되곤 했다. 아마 묘하게 비틀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춘기 때에는 날 괴롭히는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 단번에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벌 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세계가 아포칼립스적인 고통을 주었으면 하는 못된 생각에 온갖 디스토피아물을 섭렵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디스토피아가 그러한 표현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언제나 그 작품들은 나에게 절망을 통해 희망을, 분노를 통해 사랑을 보게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간혹 다른 가능성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설픈 희망이나 사랑따위를 욱여넣는 것보다 축축한 현실의 이미지들의 폭격으로 우리를 번쩍 정신 들게 하는 작품은, 그 자체로 신선할 수밖에 없다. 꽉꽉 채운 이미지들 사이에 남겨진 빈틈을 채워가며 세계관의 전체를 생생히 체험하게 하는 작품을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박세영 감독의 영화 <지느러미>를 소개한다.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의 통일된 대한민국. 남과 북의 경계는 사라졌지만,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4000km에 달하는 장벽이 세워진 세계관이다. 삭막한 도시에는 특색없는 진회색 콘크리트 건물과 축축한 벽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모두 헝클어진 머리에 더러운 옷차림을 하고 다닌다. 밤낮 없이 흘러 나오는 선전 영상에는 '더러운 얼굴은 근면성실의 상징'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시민들은 국가의 강력한 통치로 인해 최소 자원으로 삶을 꾸려가는 듯 보인다.
한편, 이 세계관에는 돌연변이 인간, 일명 '오메가'가 존재한다. 오염된 구역을 드나들며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은 값싼 노경계와 관리에 대상이 된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독성이 있는 지느러미를 갖고 있으며 발의 모양이 다르다. 주인공 '수진'은 선전에 따라 청년 공무원이 되어 이 오메가들을 관리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이 중 한 오메가가 작업 구역을 벗어나 도시 안으로 몰래 섞여 들어가며 시작된다.
이 이탈한 오메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 실내 낚시장, '황금소망낚시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일하는 '미아'를 미행하며 행적을 살피던 오메가는 미아 역시 감염된 오메가를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마침내 미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죽은 동료의 지느러미를 전달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미아의 친아버지 것이었고, 미아는 오메가임을 숨기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기에 자신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편, 이 미아를 따라붙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으니 바로 수진이다. 결말부에서 수진은 미아의 발을 관찰하며 그가 오메가임을 의심하고, 공무원들을 끌고 온다. 결국 미아를 사살하는 순간, 관객들은 그동안 선전 문구로만 반복해 들었던 '오메가의 비명'을 실제로 듣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놀라 지른 수진의 비명과 무서울 정도로 유사하다.
여기서 오메가와 인간은 사실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이 드러나 우리를 허망하게 만든다. 미아는 오메가의 발로도 서툴게나마 페달을 밟아가며 피아노를 칠 수 있다. 돌 틈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도시의 뒷골목들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 꿈을 꾸고 말을 하고 춤을 출 수도 있다. 미아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수진이 처음으로 들은 미아의 목소리는 오메가로서의 비명이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작은 희망의 불꽃조차 꺼버린다.
그러나 엔딩 이미지는 또 조금 다른 가능성을 조명한다. 흔들리는 바다의 표면 이미지는 곧 천천히 반전된 색에 의해 타오르는 불꽃 이미지로 변한다. 수진과 미아의 비명이 다를 바 없듯이, 물과 불의 이미지도 언제든 역전이 가능한 유사한 이미지로 소화된다. 관리의 대상이 되며 묵묵히 노동을 하는 오메가들은 언제나 물의 이미지와 동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불꽃으로 치환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안에 도사린 폭발적인 힘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선입견처럼 박은 타자의 이미지는 언제든 정반대의 것으로 뒤집힐 수 있다.
또한 혁명은 가장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오메가들의 이 불꽃 같은 저력이 어떤 변화를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세영 감독은 코로나 시기의 사회를 보며 <지느러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SF는 어쩌면 우리 사회를 비추는 가장 현실적인 장르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여러모로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오메가들이 지르는 소리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국가의 선전은 노동자들의 입을 막고 억압해온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남북한을 긋던 삼팔선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언제든 외집단과 내집단을 가를 선을 마음에 품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오메가'와 '친-오메가' 세력이 벌이는 격렬한 시위는 이 스산한 영화에도 한 방울 들어간 정말 한국적인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플롯은 매우 단순하지만 이 영화는 여러모로 '풍부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우선 독보적인 인상을 남기는 비주얼 덕일 것이다. 화면에는 연신 노이즈가 껴 있어 마치 오염된 물 속에 잠긴 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연신 붉게 내려앉은 하늘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빛 하나 없이 까만 눈동자들을 집요하게 잡아내는 클로즈업들, 정돈되지 않은 도시와 축축하고 좁은 통로를 요리조리 걷는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에는 '황금소망낚시터'가 있다. 그 이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시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원색의 빛이 사람들의 그늘진 얼굴을 꾸며주는 곳이다.
그러나 이 빛들은 인물들을 밝은 곳에서 제대로 응시하기 위한 빛들이 아니다. 오히려 혼몽하게 하고, 그들의 진위를 가리는 무용한 빛들이다. 이 빛에 물든 순간 모두 크고 작은 비밀을 담은 그릇이 된다.
이 공간들은 낯설면서도 매우 한국적인 인상을 준다. 어딘가 익숙한 간판 속을 거니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도시, 특히 서울에서 느끼는 안전한 익명성, 그러나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묘한 외로움과 불안정함을 동시에 감각할 수 있었다. '비주얼의 힘이 이토록 강하구나'하며 감탄한 부분이기도 했다. 마치 내내 인상파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었고, 공간성에 대한 감독의 인식을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영화 <지느러미>는 각종 영화제에 초대되어 상영되었을 만큼 주목 받은 작품으로, 한국 감독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안겨줄 것이라 예상한다. 7월 22일 개봉하는 이 작품을 꼭 극장에서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