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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첫사랑, 첫 번째 상실 [도서]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고

by 김효주 에디터
2026.07.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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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첫사랑>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왜 첫사랑을 특별하게 기억할까. 첫사랑은 오래전부터 그것의 완성 여부와는 별개로 ‘첫사랑’이라는 단어로써 표현되어왔다. 마치 뒤이어 오는 수많은 다른 사랑들과는 구별되는 고고함과 완전무결함을 가진 것처럼.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가장 순수했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도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주인공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내게 이 작품은 첫사랑에 대한 소설이 아닌, 첫 번째 상실에 대한 소설이었다.

 

 

 

첫사랑의 상실


 

<첫사랑>의 주인공 블라디미르는 열여섯 살 여름, 지나이다라는 스물 한 살 여성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지나이다는 주변의 남성들을 자신의 매력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녀를 향한 남성들의 관심 속에서 지나이다는 마치 자신만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어린 블라디미르에게 그녀는 동경과 설렘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자태로 주변 남성들을 끌어당기던 지나이다의 태도가 어느 시점부터 변한다. 안색은 창백해지고 특히 블라디미르와의 만남 자체를 피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지나이다에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을 직감한다. 결국 지나이다의 마음은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고, 블라디미르는 결국 첫사랑의 아픔과 상실을 경험한다.

 

첫사랑은 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 경험을 겪게 한다. 왜일까. 누구나 처음은 서툰 법이라서? 상대를 사랑하는 법도, 거절당하는 법도, 질투하는 법도, 포기하는 법도 모두 처음이라서일까.

 

어릴 땐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이 곧 사랑의 완결로 이어질 거라 믿기 쉽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처음이라서 사랑의 완결을 위해서는 다른 재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을 잃었다기보다 ‘사랑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처음 배우는 경험인 것이다.


나이가 들며 사랑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을 백번 이해하고 있다. 사랑의 완결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겠으나 그 완결을 통상적으로 말하는 ‘교제’ 혹은 ‘결혼’으로 상정할 때에는 더욱이 중요하다. 사랑은 논리 규칙처럼 시점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러니 단순히 좋아한다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같은 마음으로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완전무결한 성공적 사랑을 달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관점에서 블라디미르가 좀 더 성장했을 때 지나이다를 만났다면 소설의 내용도 완전히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블라디미르가 지나이다를 하필 그 소년 시절에 처음 만났다는 것과, 그때 당시 지나이다 또한 남성들을 호령하는 것에 대단히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주인공이 슬픈 첫사랑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타이밍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첫사랑을 상실의 경험으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순수한 세계에 대한 상실


 

주인공 관점에서 결과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이 소설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블라디미르에게 더 큰 충격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었다. 책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지나이다가 사랑한 사람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결국 주인공이 동경하던 지나이다가 사랑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

 

블라디미르에게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권위 있는 가장이었으며, 소년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나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상적인 아버지라기보다, 존경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권위적인 존재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나이다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그는 아버지가 욕망하고 사랑하며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특히 아버지가 채찍으로 지나이다를 때리는 장면 이후, 지나이다가 그 자국에 입을 맞추는 장면은 블라디미르에게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른들의 사랑과 권력, 욕망, 그로부터 비롯되는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지나이다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블라디미르가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에는 균열이 생긴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라는 역할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블라디미르에게 첫사랑의 경험은 단순히 사랑의 완결을 실패한 경험이 아니라, 이와 동시에, 기존에 부모를 바라보던 관점 자체가 붕괴한 경험이기도 했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나의 부모에 대해 ‘부모’가 아닌 한 ‘개인’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블라디미르와 같은 충격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한 번 그런 관점을 갖게 되면 부모의 행동과 판단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실수나 흔들림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어른도 하나의 개인이라는 사실을 블라디미르는 아버지의 욕망을 보고 깨달았고, 그것은 어린 소년에게 있어 대단히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점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을 바꾸었다. 이전까지는 사랑 앞에서 풋내기 같은 모습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이 소년은 다른 누구도 겪기 힘든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된다. 그가 조금 더 성숙해졌을 때 그의 아버지로부터 어떤 다른 모습을 우연히 포착하고, 그로부터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겪었다면 그 충격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엇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지 알고 있니?”

 

“무엇이죠?”

 

“의지란다. 자기 자신의 의지. 그게 자유보다 더 큰 힘을 준단다. 무언가를 원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또 다른 사람을 통솔할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살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 <첫사랑> 中

 

 

이 문단은 책을 읽으며 비교적 초반부에서 만날 수 있는 문단이다. 책을 덮고 나니 주인공의 아버지는 정말로 자기 자신의 의지를 강렬하게 관철하며 산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말한 그 의지가 그토록 강렬한 의지였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테지만. 그런 관점에서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는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의 자유가 자신의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과연 그는 깨달았을까.


주인공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주인공에게 이러한 유언을 남긴다. “아들아, 여인의 사랑을 두려워하거라. 그 행복을, 달콤한 독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의 유언으로 미루어보아 아버지도 그 당시 강렬했던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 행동했던 순간을 조금은 후회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만약 이 상황 중 일부를 주인공의 아버지 관점에서 서술한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만약 이 상황 중 일부를 주인공의 아버지 관점에서 서술한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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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아니다. 한 소년이 사랑한 매력적인 여성과의 관계부터, 그 이면의 ‘어른의 세계’를 목격하고 자신의 부모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 충격적인 사건 그 자체였다. 책을 덮으면 강렬했던 사건들에 대해 찜찜하고 답답한 기분을 먼저 마주하게 되지만, 이 책의 내용을 곱씹을수록 책에 담긴 다양한 층위들을 하나씩 뜯어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결국 <첫사랑>은 첫 번째 사랑의 기록이 아니라, 한 소년의 세계가 처음으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순간을 담아낸 이야기였다. 어쩌면 우리가 첫사랑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도, 사랑보다 그때 처음 잃어버린 것들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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