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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방인이라는 암실 속에서 - 사진의 얼굴 [영화]

현상은 늘 서늘하고 또 조심스럽게

by 이다혜 에디터
2026.08.25 12:54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찰나에 감광물질이 반응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게 곧 끝은 아니다. 필름에 맺힌 잠상을 우리 눈에 보이는 실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현상이 필요하다. 현상 과정에서 필름에 약품 처리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절대 빛이 들어가선 안된다는 것이다. 사진에 담으려고 한 것 이외의 빛이 들어가면 엉뚱한 데 색이 입혀져 결과물이 뿌옇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록된 상을 인화지에 옮겨야 사진이 완성된다.

 

일본인으로서 바라보는 한국은 어떨까. 한국인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모르는 이야기들을 이방인이 사진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사진의 언어에서는 다른가보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야만 제대로 맺히는 상이 있는 것처럼, 모르는 채로 마주해야 전부 전달할 수 있는가보다. 알지도 못하면서, 되어 본 적도 없으면서 한국을 이해할 수가 있느냐며 미적지근하게 넘어가기에는 10만 컷의 세월이 너무나 길다. 60년 동안 한반도의 현대사를 기록한 사진 작가 구와바라 시세이. 왜 일본놈이 한국을 찍는가, 라는 물음에 답변하기에는 98분이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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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사진작가는 


 

1950년대 일본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이름 모를 질병으로 사람들이 마비 증세를 겪고, 아이들이 발달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방류한 폐수  메틸수은이 중독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968년이었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1956년부터 이곳에서 미나마타병을 취재하며 환자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메인 포스터의 주인인 토모코는 태중에서 수은에 노출되어 시력과 언어 기능을 잃은 채 태어났다. 1977년, 그가 성인이 된 것을 기념하며 가족들과 사진을 찍은 그해, 토모노는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에서 가족처럼 동고동락하며 미나마타병의 참상을 담아낸 사진집으로 일본사진비평가협회 신인상을 거머쥐며 포토저널리즘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캄보디아, 베트남, 러시아 등 세계 각지의 정치사회적 현장을 기록했지만, 가장 관심을 가진 국가는 한국이었다. 개발 전 청계천 서민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 동두천 미군 기지촌, 베트남 한국군 파병, 문경의 도공 문화 등 굵직한 한국사를 관통하는 작품 활동을 보여왔다. 90세에 가까운 시점에서도 계엄령과 탄핵 찬반 시위를 취재하고자 한국행 비행기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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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하고 힘들고 아팠던 한국의 모습까지 빠짐없이 담은 그에게 어떤 관람객이 물었다. 왜 이렇게 가난한 한국의 모습을 찍어서 전시하느냐고, 그것도 일본인이. 이에 그는 보도사진은 찍히는 대상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며, 그러나 사라져가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동두천의 소요산 성병관리소는 군사정권 하에서 미군 주둔지에 성매매업소를 방조하고 매춘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삼아 정책적으로 장려한 역사의 증거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들은 길을 가다가 끌려가거나 기지촌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강제 구금된 후 페니실린 과다 투여로 쇼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름 없는 기지촌 여성들은 상패동 공동묘지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공원화 사업으로 모두 파묘된 상태다. 이름만, 혹은 숫자만, 여러 명을 한꺼번에 묻은 자리까지. 60년 뒤 공동묘지를 다시 찾은 구와바라는 묵묵히 기도하고 자리를 뜬다.

 

문경의 도자기 마을을 취재하고 있을 때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구와바라는 아내의 걱정을 업은 채 현장에 뛰어들었다. 사망한 학우를 기리며 행진하는 대학생들, 시위 현장을 담았다. 그는 8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신의 사진에 나온 대학생, 지금은 백발의 노인을 만나 당시의 회포를 풀기도 한다.

 

 

티저 포스터.jpg

 

 

포토멘터리 <사진의 얼굴>은 제17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첫 선을 보였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사는 역사책에서 본 것과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북한과 남한을 모두 취재할 수 있었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포토멘터리에서 노동자, 시민, 학생, 아이들, 군인, 시위대 등 한국의 얼굴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담고 그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방을 정리할 때면 자꾸만 어디서 옛날 사진이 튀어나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멀어진 친구, 촌스러운 패션은 물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그 장면을 다시 마주했을 때 함께 깨닫게 되는 것도 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 성장했다는 것. 그때보다 나아졌다는 안도감과 자신감, 기대. 사적인 영역에서 종종 겪곤 하는 이 현상을, 구와바라의 필름으로 다시 현상하여 인화해본다.

 

지금도 한반도의 역사는 영화관이라는 암실에서 서늘하게 보존되어 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을 9월의 관객들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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