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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기울어진 기둥이 더 오래 버틴다 -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도서]

아르만드 푸치의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를 읽고

by 최은파 에디터
2026.06.26 10:00



가우디 본문 이미지, 책 표지.jpg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나는 가우디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곡선, 자연을 닮은 기둥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알았던 건 건물의 생긴 모습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 아르만드 푸치는 가톨릭 사제이자 신약학자다. 가우디가 태어나고 자란 레우스 인근에서 나고 자랐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신학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고 한다. 건축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이렇게까지 건물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신기했다. 추천사를 쓴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감독 호르디 파울리, 철학자 프란세스크 토랄바까지, 모두 이 책이 가우디를 신화화하지 않고 인간으로 되돌려놓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는 건축으로만 말했다

나는 평소에도 설명을 많이 하는 글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말로 다 해버리면 뭔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설명은 작가나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디는 그 반대편 끝까지 가버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거의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서른 살 이후로는 정말 아무것도. 그 대신 건물을 통해서만 말했다.


1936년, 무정부주의자들이 그의 작업실과 공방을 습격하면서 메모와 도면, 모형이 거의 다 불타거나 부서졌다. 한 사람이 평생 쌓아온 사유의 기록이 한순간에 사라진 셈이다. 남아 있는 건 건물 그 자체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건축이 유독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증거가 없으니, 우리는 건물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다.


맥락 없는 상징은 위험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은 사실 가우디의 건물 이야기가 아니라, 상징을 다루는 태도였다. 같은 벌이라는 도상이 마타로 협동조합 깃발에서는 근면과 공동 노동을 뜻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탄생 파사드에서는 아들의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고통을 뜻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같은 그림이 맥락이 바뀌는 순간 완전히 다른 말을 한다는 것.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그건 해석하기 나름이잖아요’다. 나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석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맥락을 충실히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의 저자도 같은 입장이다. 가우디에게 의미를 함부로 부여하기 전에, 먼저 그 맥락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 엄격함이 오히려 가우디를 더 신비롭게 만든다는 게, 이 책의 아이러니다.


건물들 사이를 걷다

책에 실린 여러 작품 중 몇 채를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었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과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멈춰 서게 되는 곳들이 있었다.


[구엘 저택] (1885~1889)

책에서 가장 자세히 설명된 건물이라 그런지, 가장 또렷하게 그려졌다. 127개의 기둥, 원뿔형 첨탑, 쌍곡포물선 돔. 그런데 내 눈을 가장 오래 붙잡은 건 빛이었다. 가우디는 첨탑 주변에 포물선형 창문을 네 개나 두어, 자연광이 대연회실까지 곧장 떨어지도록 설계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빛. 그 표현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이 건물은 127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지는데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책은 설명한다. 똑바로 서서 누르는 기둥이 아니라, 적절한 각도와 위치로 흩어진 기둥들이 무게를 나눠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완성될 기울어진 기둥의 원리가, 이 저택에서부터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카사 바트요] (1904~1906)

뼈를 닮은 발코니, 비늘처럼 덮인 지붕. 이 건물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용의 등'이라 부른다고 한다.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무찌른 전설을 건물 전체로 옮겨놓았다는 해석이다. 나는 이 건물에서 뼈 모양의 발코니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구조를 떠받치는 골격을, 굳이 감추지 않고 그대로 장식으로 드러낸 셈이다.


가우디에게는 아름다움과 기능이 다른 말이 아니었다. 카사 바트요는 그 생각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뼈는 원래 숨겨진 채로 무게를 견뎌야 하는 부분인데, 이 건물은 그 뼈를 바깥으로 끌어내 가장 화려한 자리에 세워둔다.


[구엘 공원] (1900~1914)

깨진 타일 조각을 모자이크로 이어붙인 벤치,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사람들. 트렌카디스라 불리는 이 기법도, 결국은 버려진 조각들을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버려진 것으로 성스러움을 지었던 콜로니아 구엘의 방식이, 이번에는 일상적이고 공공적인 풍경으로 옮겨온 셈이다.


이 공원은 땅의 원래 경사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라간다. 직선의 길도, 평평한 광장도 거의 없다. 자연이 만들어둔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건축을 얹은 것.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자연의 원리를 빌려 썼다는 책의 설명이, 이 공원에서는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마지막으로, 결국 이 책의 모든 길이 닿는 곳. 첨탑은 나무처럼 위로 뻗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마치 숲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처럼 바닥에 흩어진다고 한다. 가우디는 평생 빛의 적절한 양을 고민했다고 책은 말한다. 이 성당은 그 고민의 마지막, 가장 큰 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성당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언젠가 그 빛 아래에 직접 서보고 싶어졌다. 사진으로는 절대 다 담기지 않을 것 같은, 흩어지는 빛의 모양이 궁금하다.


버려진 것들로 지은 성스러움

가우디의 재활용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콜로니아 구엘 성당 지하 소성전의 나무 벤치는 근처 방직 공장에서 쓰다 버린 자동 방적기의 포장재로 만들어졌다. 그냥 아끼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참나무와 쇠가 만나면 탄닌 성분 때문에 나무가 부식된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나무못과 황동못만을 썼다. 다리는 참나무보다 단단한 털가시나무로 따로 짰다. 재활용이 절약이 아니라 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나온 선택이었다는 것.


우리는 보통 버려진 것을 귀하게 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약하다. 누군가는 그걸 궁핍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미학이라고 부른다. 가우디는 그 둘을 같은 말로 만들어버린 사람이었다.


한 번도 끝나지 않은 성당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죽었다. 1926년의 일이다. 그리고 정확히 100년이 지난 지금, 성당은 마침내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시작한 일을, 한 세기 동안 다른 사람들의 손이 이어받아 끝낸 셈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묘하게도,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약속을 끊고 떠난 사람도 있고, 끝내지 못한 일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다. 가우디는 후자였다. 다만 그가 남긴 건 비밀이 아니라 청사진이었고, 그걸 이어받은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라 100년에 걸친 타인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이어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집과 고독 사이

가우디는 결혼해야겠다는 소명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점점 더 성당 하나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대목에서는 존경과 약간의 서글픔이 동시에 들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하나의 일에 자신을 다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그 헌신의 대가로 그가 포기했을 평범한 다정함들이 자꾸 떠올랐다.


가우디의 건축에서 가장 놀라운 건, 기둥이 똑바로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기둥을 일부러 기울였다. 똑바로 선 기둥은 무게를 그대로 받아내야 하지만, 적절한 각도로 기울어진 기둥은 무게를 흘려보낸다. 버티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 그게 그가 평생 고민한 구조의 원리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원리가 건축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기도 가우디를 똑바로 세워서 설명하지 않는다. 신화도, 천재라는 단어도, 종교성도 어느 한쪽으로만 똑바로 기대 세우지 않는다. 대신 맥락과 자료라는 여러 방향으로 무게를 흘려보내며, 결국 가장 안정적인 모습으로 가우디를 다시 세운다. 똑바른 기둥보다 제대로 기울어진 기둥이 더 오래 버틴다는 걸, 가우디는 건물로 증명했고 이 책은 글로 증명한 셈이다.


나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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