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 오고 있다. 쨍한 햇빛 아래 나시를 입다가, 내리는 비에 우산을 피고, 쌀쌀한 밤에 대비해 바람막이를 챙겨다녀야하는 계절. 초여름답게 변덕스런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를 봤다.
홍상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는 영화제작기초 교양 교수의 말에, 홍상수를 잘 알진 못하지만 슬쩍 틀어봤다. 러프한 카메라와 즉흥적인 대사들 그리고 여름빛의 색감 사이에서 빛나는건 역시나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지독히 현실적이고 어딘가 답답하고 눅눅찝찝한 그러나 절대 부정할 수 없는 본질적인 우리들의 모습에서 홍상수의 냄새가 난다. (정확히는 에릭로메르의 냄새겠지만)
<녹색광선>의 주인공 델핀은 함께 여름 바캉스를 가기로 했던 애인과 틀어지자 외로움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함께 휴가를 떠나지만 델핀은 알 수 없이 여전히 괴롭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결국 일찍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녹색광선을 만나게 되는데…
녹색광선은 해돋이 직후나 해넘이 직전에 대기의 빛 굴절 현상으로 인해 태양의 윗부분이 짧은 시간동안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자연 현상이다.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에서 녹색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하고 자신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한 달 전 나의 왓챠피디아 감상평
델핀이랑 내가 너무 비슷해서 좀 더 냉정하게 보게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녹색광선을 전혀 희망 따위로 해석하진 않았다.
항상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있다고 말하는 델핀은 다가오는 남자들과 제대로 대화해보지도 않는다. 본인이 원하는 무언가를 이미 정해놓고서는 나는 열려있다고 까다롭지 않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내면의 나를 자꾸 숨기고 내가 원하는 나로 포장하여 드러내려니 삶이 항상 고달프다. 하염없이 터져나오는 눈물도 그렇다.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육식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델핀은 채식을 존중받고 싶어하지만 육식을 존중하진 않는다. 적극적으로 해보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들을때면 무작정 울어버린다. 듣고 싶은 말, 자신만의 정답을 정해둔 사람은 스트레스 받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고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마음처럼 되는게 아니니까. 내가 정해놓은 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괴리감은 괴로운 외로움이 되어 어딜 가도 따라온다.
마지막 순간에는 남자가 목을 조를까봐 숨 죽이며 봤다. 누군가는 녹색광선이 비추는 그 순간에 희망과 기적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공포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델핀은 또 다시 그렇게 녹색광선 안에서 살아가겠구나. 굴절이 가장 잘 되는 파란색 옆에 있는 녹색 속에서만…….
이 남자가 ’좋은‘ 사람이고, 만남을 잘 이어간다하더라도 델핀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델핀의 괴로움은 그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이기에 누굴 만나도 어딜 가도 따라올 것이다. 그때 그 녹색광선이 비추지 않길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한 달 전 나의 왓챠피디아 감상평을 본 감상평
자기 전 깜깜한 방 침대에 누워 작은 핸드폰에 불타는 타자로 쉼 없이 내려 적었던게 기억난다. 꾹꾹 눌러담은 감정이 느껴진다. 이건 마치 내가 나에게 보내는 어떠한 각오 같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 눈물샘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자주 울고, 작은 것에 쉽게 상처 받는다. 외로움이 괴롭지만, 먼저 누구를 만나러 나서진 않는다. 실제로 델핀이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말은 내가 정말 많이 듣던 말이고, 나는 델핀의 행동이 그 누구보다 이해된다. 그래서 저렇게나 비장한 감상평을 남겼던 것 같다.
한 달 전의 내 생각을 부정할 마음은 아니다. 지금도 나에겐 녹색광선이 공포영화고, 그저 잠깐의 무통주사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저 비장한 감상평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다정한 감상평들을 보다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니까 아주 아주 생략하여 비약해보자면 이런거다. 델핀이 사회에 맞춰야하는가 사회가 델핀에 맞춰야하는가. 델핀이 지나치게 예민한가 아니면 사회가 지나치게 혹독한가. 질문부터가 이 모양이니 당연히 대답은 아주 다양하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일단 나는 한 달전 감상평에서도 보시다시피, 델핀이 힘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델핀이 나라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인데. 타인(사회)을 바꾸기 보단 나를 바꾸는 것이 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나를 바꿔버리는 이유는 내가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더 편해지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바꾼다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다. 행동을 바꾸거나 생각을 바꾸거나.
사회와 조금 다른 결을 가져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 다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게 정답이다. 하지만 델핀은 괴롭다. 그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쨌든 델핀은 괴롭다. 그렇다면 되돌아봐야한다. 이미 먼 길을 잃어버린 내 속을 해체해서 차근차근 되짚어 봐야한다. 행동과 생각을 화해시켜주어야 한다.
괴로움은 선택
괴로움은 델핀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델핀이다. 그러려면 자신과의 숱한 대화를 나눠야한다. 일단 내가 정해놓은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무의 상태로 돌아가야한다. 그 후 벌거벗은 상태가 된 나와 마주하고 그 모습의 나를 내가 원하는 나로 정하는 연습을 해야지만 이유없는 울음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델핀의 눈 앞에 녹색광선이 나타났을 때 나는 절규했다. 녹색광선을 보는 그 엔딩 장면의 스산한 배경음악을 들은 자는 아마 다 그럴 것이다. 녹색광선이 델핀에게 잠시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델핀에게 바뀌어보라고 이야기할 때, 녹색광선은 유일하게 델핀에게 잘 하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델핀이 더 긴 시간 동안 편해졌으면 좋겠다. 이 녹색광선 찰나의 순간이 델핀을 벌거벗기고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면 정말 좋았겠으나. 아마 델핀은 앞으로도 친구들의 말에 상처받으면서 흰색광선, 노란광선.. 델핀에게 확신을 주는 다른 어떤 것들을 찾아다녀야하지 않을까?
더 무한한 시간의 델핀이 편안함을 얻었으면 한다. 녹색광선 없이도 델핀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미 녹색광선을 봐버린 델핀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건 기도 뿐이다. 델핀이 녹색광선에 안주하지 않고 힌트삼아 나아가길. 나의 행동과 생각의 모순을 인정하고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길.
여름 바캉스를 앞두고 있거나, 노을을 즐겨 보거나, 울음이 많거나, 원인 모를 괴로움에 시달린다면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을 보자. 따듯한 위로를, 따끔한 경고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