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신을 신으면 멈출 수가 없다. 무언가를 향해, 혹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춘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채로.
마이클 파월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의 1948년작 <분홍신(The Red Shoes)> 속 발레 장면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처럼, 발레의 주인공 비키 페이지는 분홍신에 홀려 쉬지 않고 춤을 춘다. 처음엔 기쁨으로, 설렘으로, 여러 곳을 신나게 누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춤은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원치 않는 곳으로 이끌리고, 멈추지 않는 발걸음 끝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의 서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젊고 유망한 발레리나 비키는 냉혹하지만 천재적인 단장 레르몬토프의 발레단에 입단해,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한 신작 발레 <분홍신>의 주연으로 발탁되며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다. 그러나 비키는 작곡가 줄리안과 사랑에 빠지고, 레르몬토프는 "예술가는 오직 예술에만 헌신해야 한다"며 두 사람의 관계를 가로막는다. 예술에 대한 열망과 평범한 행복 사이에서 방황하던 비키는, 마치 의지를 가진 듯 멈추지 않는 분홍신에 이끌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는 사람은 비키뿐일까?
얼마 전, '생산성 없는 하루가 왜 쓸모없게 느껴지는가'를 주제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이유를 말했다. 뒤처질까 두렵다고. 끝없는 경쟁 속에 살다 보니 잠시 멈추는 것조차 불안하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분홍신을 신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보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무한한 경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원하지 않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자기다움'을 잃어가면서도, 발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분홍신은 아름답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한번 신으면 멈추기가 어렵고, 욕망이 쌓일수록 춤은 더욱 멈추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 욕망이 충분히 커졌을 때, 우리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영화 속 비키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조용하고, 그래서 더 무서운 것, 바로 '자기다움'의 소멸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곧 또 다른 의미의 죽음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홍신의 결말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에 스스로를 살피는 일이 아닐까. 지금 내가 추고 있는 이 춤이 진정 내가 원해서 추는 것인지, 아니면 멈출 수 없어서 추고 있는 것인지를 묻는 일. 그리고 내 욕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
분홍신은 오늘도 아름답게 빛난다. 그 아름다움에 홀리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