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은 사소한 편린들로 이뤄져 있다. 키스, 미소, 다정한 눈빛, 진심으로 하는 칭찬, 유쾌함과 상냥함이 깃든 작은 행동 같은 곧 잊힐 소소한 것들로.”
세뮤얼 테일러 콜리지, 《즉흥시인》
《타샤의 기쁨》을 변역한 옮긴이 공경희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중에 ‘왜 책을 읽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한다고 한다. 마음을 따스한 온도로 달구는 그림과 글을 지나 책장을 덮기 전에 이 질문을 나에게도 해보았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쫓아가려면 처음 책이라는 물질을 깊이 사랑하게 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순수한 어린 날의 나에게 물으면 꾸밈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재밌으니까.’
어릴 적 내가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수십 번 읽었던 책은 지경사에서 나온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축축한 런던의 거리를 수도 없이 상상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세라를 응원했다. 한 권의 책은 그렇게 나의 하루에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었다.
이 책에는 타샤의 행복과 기쁨이 모여있다. 한 송이의 꽃이 되어 타샤의 그림 위로 피어난 문장들은 《타샤의 기쁨》의 사소한 편린 조각들이다. 타샤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모아 각각의 기쁨을 자신의 그림으로 영원히 붙들어두었다.
그녀가 사랑한 문장들과 그녀의 그림 속에서 타샤 튜더의 삶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타샤의 그림에는 꽃과 나무,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주 나온다. 보고만 있어도 순수한 기쁨을 안겨주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표현하는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의 수채화는 잔잔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타샤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맨발로 흙으로 덮인 땅을 디디고 자연과 어울려 놀거나 동물들과 교감을 나눈다. 인물들이 건너가고 있는 계절 또한 생생하게 느껴진다.
타샤의 그림 속에는 그녀가 삶 속에서 사랑한 것들이 살아 숨쉰다. 대단하지 않은 것들,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문장들은 삶을 향한 그녀의 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타샤는 항상 ‘꿈’을 꾼다. 하지만 타샤의 ‘꿈’은 미래를 향해 있지 않다. 우리가 꾸는 꿈은 바로 우리의 일상이며,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향해 진정으로 살아가는 오늘은 그대로 나 자신의 기쁨이 되고, 살아가기 위한 활력이 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자연이 있다.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눈이 두껍게 쌓인 겨울 풍경이 있고, 수초를 갉아 먹는 토끼와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은 새가 있다. 아이들은 강아지와 함께 숲속을 탐험하고, 검은 하늘에 아스라이 비치는 무지개를 바라본다.

타샤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일상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왔다. 그녀가 사랑한 문장과 그녀의 섬세한 그림을 통해 그녀의 삶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안정감을 주는 녹색 표지의 책을 펼치고, 녹음이 가득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19세기 런던 장작나무들이 버적버적 타고 있는 거실 벽난로 앞에서 담요를 두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수채화 그림을 보며 생략된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오려내고 싶은 문장을 곱씹어보아도 좋다. 인용된 문장들이 영어로도 적혀있으니 번역되기 전 문장의 맛을 느껴보는 일도 좋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소유주가 바뀌게 된다. 《타샤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내가 사랑하는 문장들과 내가 사랑한 타샤의 그림들로.
“이전에는 세상을 보지 못하다가 문득 여름 풀밭 한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나 여자를 본다면 얼마나 빛나 보일까? 빛깔과 형태, 새들의 노래와 삶, 햇살 위로 숨 쉬는 하늘이 그곳에 잠시 머무른다. 경의로 가득 찬 마음은 이것들이 단지 물질뿐이라고 하기 어렵다. 요정 나라의 꿈처럼 나타났다가 손대면 흩어질 듯한, 너무 아름다워 오래 바라보면 아스라이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 소년 시절, 그렇게 세상은 매일 아침 달콤하고 새로웠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마에 주름이 새겨진 지금조차도, 여름 풀밭은 잔디에 첫발을 내딛던 그 순간처럼 환하고 싱그럽게 빛난다.”
리처드 제프리스, 《바깥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