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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타투; 서사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가벼움

사회가 노리는 건 타투가 아닌 타루를 새긴 사람이다.

by 김상준 에디터
2026.05.08 23:47

 

 

타투는 공격받지 않는다. 타투를 새긴 존재의 가벼움이 공격받는다. 이건 마치 인간의 몸이 지닌 항상성의 작동과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 몸은 어떤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도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그 나름으로 확립한 가치관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사회라는 신체의 시스템이라는 혈관을 따라 흐르는 가치관이라는 백혈구가 변화라는 바이러스를 발견하면 이걸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타투를 몸에 새긴 사람이 공격받는 건 그 행위가 사회가 유지하려는 가치를 위협하는 일종의 바이러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타투는 사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타투 그 자체로서는 충분한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투는 몇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화다. 여러 정의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 과정’과 ‘총체적 삶의 방식’이다. 타투가 주술적인 행위로 시작해서 부족사회를 만나 하나의 문화이자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사회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모아들은 타타우라는 문양을 몸에 그려 넣는다. 한 땀 한 땀 새겨 넣는 과정과 고통은 인내를 통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한다는 증표이자 부족의 상징을 담은 역사의 일부다. 인디어들의 트라이벌도 이와 같다. 부족사회에서 같은 소속임을 나타내는 신분증이자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온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이렇게 역사로써 쌓여 온 그들의 삶의 축적이 서사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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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as Lenzi via Unsplash

 

 

서사는 존재의 무게다. 사모아가 타타우를 그리고 인디언이 트라이벌을 그린 것을 보고 ‘네 몸이 도화지냐?’, ‘왜 몸에다 그런 걸 그려 넣냐?’ 같은 욕을 하는 사람은 없다. 도리어 그런 발언을 뱉는 사람에게 문화를 존중할 줄 모르는 몰지각한 인간이라는 화살이 쏟아진다. 그들이 지닌 타투에는 한 민족으로서 쌓아 온 역사와 그 문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 온 시간이 서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 서사를 가치로써 인정하고 항상성을 작동시키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타투는 사회가 지닌 가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반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는 그런 서사를 찾을 수 없다. 한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몸에 새기는 타투는 패션, 멋, 혹은 예술 행위 중 하나일 뿐이다. 사모아나 인디언만큼의 서사는 가질 수도 없고 허락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왜 예술은 공격받는가. 예술 행위가 인간의 신체와 그에 부여된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인간의 몸을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인간의 온전한 신체는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고, 그 이후로도 한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결한 것으로 취급됐다.

 

타투라는 예술 행위는 사회가 이토록 소중히 여겼던 신체의 피부를 뚫고 잉크를 넣어 훼손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 신체의 존엄성, 불변성, 그리고 태어난 당시 그 상태로의 고유성이라는 가치의 파괴가 수반된다. 시스템이라는 백혈구가 보기에는 가치를 훼손하는 바이러스로 판단할 근거가 차고 넘치니 자연스럽게 항상성이라는 메커니즘에 작동 신호를 보낸다.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가치가 서사의 부재에서 오는 가벼움이 몰고 오는 위험에 노출되기 전에 차단하고 처단하려는 항생 작용이다.


충분한 서사를 쌓는 순간 공격은 사라진다. 타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면전에 비난을 퍼붓거나 그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타투를 거부하는 것 또한 뭐라 말할 수 없다. 타투를 하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셋 중에 하나다. 사모아나 인디언처럼 충분한 무게의 서사를 가지던가, 업적을 쌓아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 내던가, 혹은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공격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서사를 가지고자 한다면 그 문화의 구성원으로 스며들어야 하고, 업적을 쌓겠다면 최소 몇백 년의 역사가 안겨주는 무게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 제 몸에 타투를 그려 넣을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회가 거부하는 행위를 하고 싶은 사람은 그 공격을 버텨내거나 그 공격 행위를 막아낼 만큼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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