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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말할 수 있는 시대의 우리의 외침 [공연]

‘말할 수 없는 시대’를 그린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

by 송민주 에디터
2026.04.26 20:15

 

 

우리 이 시대에 진정 자유롭게 말하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검열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질문 앞에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누군가의 시선, 관계 속의 균형, 분위기를 읽어야 하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금지는 사라졌지만 말하지 못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감각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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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작품 속 조선은 ‘시조’가 금지된 사회다. 이곳에서는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표현이 통제된 세계에서 개인의 내면은 점점 사라지고, 결국 ‘말하지 않는 상태’가 일상이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억압 속에서 ‘외침’은 더욱 강하게 태어난다.

 

‘골빈당’의 일원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저자에 나가 몰래 시조를 읊고, 그것을 랩과 리듬에 실어 터뜨린다. 그들에게 시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자 세상의 부조리를 외치는 당당한 저항의 언어이다. 금지된 것을 말하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이 설정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법적으로 말을 금지당하지 않지만, 여전히 수많은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고, 때로는 아예 입을 열지 않는 것으로 말을 삼킨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생각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마음속에 그리고 머릿속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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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우리의 언어들은 어디서 모이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예술이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예술의 다른 방식을 찾아왔다. 직접적인 발화가 막힐 때 은유가 등장하고, 음악이 감정을 대신 전달하며, 리듬이 얹어진 춤은 억눌린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 작품이 힙합과 전통적인 악기와 소리를 결합한 방식 역시 단순한 고전의 현대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말할 수 없는 시대’라는 설정 속에서, 시조의 형식을 따르는 랩과 리듬 그리고 격렬한 힙합의 몸짓은 가장 직관적인 외침의 도구가 된다.

 

이 뮤지컬은 우리의 말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예술을 통해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라도 더욱 열정적이고 강렬하게 반드시 말하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나아가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싶다.

 

지금 우리의 외침은 과연 얼마나 진짜에 가까운가. 우리는 SNS와 콘텐츠를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 표현은 종종 안전한 방식 안에 머문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된 말들을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던지는 “외쳐라.”는 메시지는 곧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꿋꿋한 외침으로 얻어낸 자유를 보여주며 당당히 외칠 것을 격려하기도 한다. 외친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를 넘어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며, 때로는 관계와 안전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외치지 못한다. 하지만, 외침이 필요한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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