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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굴욕하는 인간 - 굴욕 [도서]

웨인 케스텐바움, 『굴욕』(문학과지성사, 2026)

by 차승환 에디터
2026.04.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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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굴욕을 이야기해볼까. 다이어트를 목표로 한창 헬스장에 다니는 요즘, 운동을 마치면 어두운 조명 아래서 거울에 비치는 몸이 괜스레 좋아진 기분이 든다. 엉망진창인 몸이 그리 쉽게 좋아질 리 없으니 그건 물론 나의 착각에 불과하겠지만, 샤워를 마치고 열을 식힐 겸 나의 몸을 당당히 내놓은 채 탈의실을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아뿔싸, 오늘 내 옆으로 다가온 근육질 청년의 크고 울퉁불퉁한 몸이 내 몸을 한껏 초라하게 만든다. 차마 대놓고 쳐다보지 못해 거울로만 흘끗 훔쳐본 청년의 몸은 크고 굵었다. 정말 몸의 모든 곳(!)이 전부 다 크고, 굵었다.


굴욕은 이런 것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생각지도 못한 경우에도 발생하는 것. 굴욕은 가벼운 수치심의 수준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훑어가거나, 혹은 거의 재앙처럼 한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 거의 매일 크고 작은 굴욕과 마주하는 종으로서, 사회 속에 던져진 모든 우리를 굴욕(당)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그러므로 ‘굴욕’이라는 흥미로운 단어 하나로 엮어낸 한 권의 책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굴욕적인 백과사전일지도 모른다.


웨인 케스텐바움의 『굴욕』(문학과지성사, 2026)을 읽는다.


 

굴욕에는 (1) 피해자, (2) 가해자, (3) 목격자의 삼각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당하는 사람이 자기가 당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고, 다른 누군가가 나중에 그 장면을 보거나 이야기를 전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경악감(그 에너지, 찌릿함)은 3과 관계한다. 지옥의 왈츠. - p.16

 

 

우리가 굴욕을 말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은 두 가지다. 누가(1), 누구에 의해서(2) 굴욕을 당했는가. 굴욕은 혼자서 자연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예컨대 몸이 좋아진 듯 착각하고 있는 나(1)와 비교될 정도로 몸이 좋은 너(2)의 낙차에서 발생하는 것이 굴욕의 감정이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서 발생한 굴욕이 끔찍해지는 것은 그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가 존재할 때다. 목격자의 존재는 굴욕의 확장가능성(“다른 누군가가 나중에 그 장면을 보거나 이야기를 전해 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 안과 밖이 바뀌어 접힌 주름처럼 “사적이어야 하고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 하나”(27쪽)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굴욕은 시작되고, 그것이 목격에 의해 널리 퍼지면 굴욕은 깊어지므로, 굴욕은 비밀과 밀접하거나 결코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 그 자체이다.


 

그보다 나는 원치 않는 물질이나 작용력에 의해 무방비의 육체가 침범당하는 것으로 굴욕을 정의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침범당하기가 곧 굴욕인 것은 침범당할 때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갑작스럽고 불가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게 뭐지? 지금 내 안으로 들어오는 이게 어떤 물질이지?). 주체는 주체이기를 멈추고, 작용당하는 대상, 훼손당하는 지형이 된다. - p.45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기본적으로 영역 동물에 속하게 됐다. 오직 나만을 위한 영역을 확보하고, 그것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며 지키는 일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일 것이다(‘내 집 마련’이 거의 모두의 꿈이 되어버린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일 테다). 만약 ‘원치 않는’ 것들이 나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의 힘과 능력으로 그 침범을 막아낼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영역 안에서 구축해둔 나의 주체를 잃어버리는 일이 된다. 타인에게 무력하게 내어주는 것이 공간이든, 몸이든, 혹은 정신이든, 그것을 침범당하는 일은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처절한 굴욕의 형태이다.


문제는 모든 주체가 언제든 다른 이의 영역을 무심히 망가뜨리는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기를 그쳤을 때 인간의 얼굴에 나타나는 어두운 표정, 또는 무표정”(50쪽)을 지을 줄 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며 언제든 타인에게 굴욕을 안길 줄 안다. 물리력을 동원한 끔찍한 폭력부터 감정을 파괴하는 정서적 학대까지, 굴욕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말은 즉 우리는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매일 누군가의 주체성을 박탈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백인의 인종 차별, 하다못해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적에 의한 줄 세우기. 굴욕은 계속된다. 영원한 굴욕의 인간.


굴욕을 가하든 혹은 당하든, 인간인 이상 굴욕을 벗어날 길이 없다면 차라리 굴욕을 승화시킬 방법이 있을까. 굴욕이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일이라면 오히려 굴욕을 통해 주체성을 확보하는 길도 있을 것. 예컨대 종교적인 방법―그리스도의 고난 같은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기―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거나, 혹은 굴욕 그 자체를 쾌락으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어쩌면 타인의 굴욕을 은밀히 기대하면서 나의 굴욕감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역겨운 야수성”(182쪽)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굴욕은 주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토록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다수의 경우 굴욕은 끔찍하고, 여전히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욕에 속한 우리가 수많은 굴욕의 목록을 굳이 살피며 고찰하는 것은 “굴욕이 유익하거나 재미있거나 바람직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점점 가짜로 채워지는 듯한 세상에서”(87쪽) 모두가 평등하게 감각하는 굴욕만이 서로에게 다가갈 유일한 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굴욕(당)하는 세계에서 서로를 굴욕하지 않기, 굴욕하는 인간의 영원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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